매일 성경공부

13. 보아스의 신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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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인덕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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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2절에 의하면 나오미에게는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나오미가 보아스를 '기업 무를 자'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나오미가 더 가까운 친족이 있음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까운 친족보다는 보아스가 인품이나 사회적 지위 등 모든 면에서 더 낫다고 판단한 까닭에 룻을 기업 무를 제1순위의 친족에게 보내지 않고 보아스에게 보냈을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나오미가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제일 먼저 의뢰해야 할 1순위 기업 무를 분이십니다.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 같은 요소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친구, 명예, 재물, 미모, 자녀....
이러한 것들도 물론 부분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하지는 못합니다. 내가 어떤 위치와 환경에 처하든 우리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3) 13절에 나타난 보아스의 성품은 무엇입니까?

본문에서 보아스는 자기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다는 사실을 룻에게 일러줌으로써 그에게 먼저 '고엘'의 의무를 물어야 함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보아스의 이러한 행동은 율법을 어기지 않으려는 신중하고도 분별력 있는 행동의 소유자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보아스는 인간적인 이해 관계에 얽매이기보다는 하나님의 율법을 성실하게 지키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멸시하기보다는 그것을 해결해 주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지켜야 할 법과 질서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천국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지켜야 할 법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법을 잘 알고 있어야 하며 또한 잘 지켜야 할 것입니다. 신앙인의 삶은 하나님께서 평가하시지만 인간 사회 속에서의 옳은 평가없이 하나님께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우리 신앙인들의 삶이 "하나님 앞에, 세상 앞에"(Coram Deo, Coram Mundo)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하였습니다.

4) 룻이 새벽까지 보아스의 밭에 머문 까닭은 무엇입니까?(14절)

계대결혼의 권리를 이행코자 취한 룻의 행위를 부도덕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이 보아스의 말대로 타인의 눈길을 피해 새벽 미명 어둑어둑할 때에 보아스 곁을 떠난 것은 단지 그녀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자들로 하여금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룻이 보아스와 함께 밤을 지새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변명할 겨를도 없이 이방여인 룻은 물론이요, 보아스의 평판에도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충분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보아스는 기업 무르는 모든 절차가 끝날 때까지 매사에 신중을 기하여 자신과 룻 사이에 부도덕한 일이 발생했다는 인상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5) 13절에서 보아스는 야훼의 이름으로 맹세를 합니다. 이러한 맹세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보아스가 야훼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은 자신의 굳은 의지를 표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맹세가 금기시되지 않았고 또한 맹세하는 자는 야훼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이 관례였으므로(신 6:13, 10:23)이러한 맹세 행위는 상대방에게 확신을 심어 주기 위해 보편적으로 행해졌습니다(출 22:7, 10, 11).그러나 일단 맹세를 했을 경우에는 무심코 행했거나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심지어 자기에게 해롭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것을 성실히 지켜야 했습니다(신 23:22, 23 ; 시 15:4). 이러한 의미에서 맹세는 계약을 파기한 자가 거기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는 구약의 계약 행위와도 유사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반드시 형식적인 의식을 행했던 계약 행위와는 달리 맹세는 말로써만 행해졌다는 것입니다(창 15:10,17 ; 롐 34:18).

6) 예수께서는 "아무것으로도 맹세하지 말라"(마 5:33-37)고 하셨는데 구약시대 자주 행해졌던 맹세와 어떻게 조화될 수 있습니까?

구약시대에는 맹세의 이행이 강조되었으며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니는 경건함과 신실성을 가름하는 척도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이 시대를 거듭하면서 변질되어 신약의 히브리인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신앙과 경건함을 만인 앞에 드러내는 도구로 맹세를 사용하였습니다. 즉 그들은 맹세의 이행 여부와는 무관하게 맹세를 남발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께서는 이러한 외식적인 경건을 질타하시면서(마 15:3-9 ; 막 7:9-13) 차라리 아무것으로도 맹세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마 5:33-37).

한편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잘못된 지식이나 정보에 의해 어리석은 맹세를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겠다고 맹세한 40명의 유대인들도 실상은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열심에서 어리석은 맹세를 했던 자들의 표본입니다(행 23:12, 14). 즉 그들의 맹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막는 어리석은 맹세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매사에 진실되이 행동함으로 굳이 말로 맹세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진실이 항상 상대방에게 전달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시적인 감정에 치우쳐 맹세하여 그 뒤를 감당치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7) 예수께서 친히 세상의 법을 지키신 성경 구절을 찾아 보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잘 지키지 못하는 공중도덕법은 어떤 것이 있는 지 나누어 보십시오(마 17:24-27)

8) 근거없는 소문 때문에 어려움을 당한 경우들을 나누어 보십시오.


9) 우리 스스로 부끄러울 것도 거리낄 것도 없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것은 신앙인다운 행동이 아닐 것입니다. 비록 내 스스로는 거리낄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지를 깊이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지혜롭게 행동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조용히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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