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과 택하심을 받은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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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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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66권이 합쳐져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가르쳐준다.(물론 성령님의 인도 속에) 이 말씀은 66권 중 일부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도 없고, 알아도 편중될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 안에도 주님의 은혜로만 구원받는다는 말씀(은혜)과 우리가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율법)이 다 들어있지만 우리가 성경 중에서 갈라디아서만 읽는다면 아무래도 은혜를 깊이 깨닫는 반면 바른 삶의 내용과 중요성을 충분히 알지 못할 위험이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성경 전체를 골고루 알고 묵상해야 한다.

그런데 성경 중에도 은혜와 율법이 특별히 잘 조화된 이 있다. 베드로전서이다. 물론 베드로전서만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비교적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하는 데는 유익하다. 주요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는 식품과 같다.(바나나? 쌀이나 시금치와 비교) 베드로전서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소망이 강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아마도 베드로전서가 새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세상의 박해와 어려움 속에서 신앙생활을 잘하도록 돕기 위해 쓴 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소망이 우리에게 힘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도 베드로전서를 통해 균형 잡힌 신앙과 신앙생활의 힘을 얻기 바란다.

베드로는 본문에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한다. 사도는 보냄을 받은 사람이란 뜻이다. 베드로는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냄을 받은 자라고 하는 것이다. 왜 이런 소개를 하는가? 베드로전서의 말씀으로 각처에 흩어진 성도들을 권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베드로를 소개할 수 있는 다른 표현은 없을까? 베드로는 당시에 교회의 최고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다른 경력이나 지위를 말하지 않고 예수님의 사도라고만 소개한다. 요즈음으로 하면 총회장, 노회장, 박사 등의 호칭을 쓰지 않고 목사라는 칭호만 쓴 것과 비슷하다.(박사표시 가운 때문에 논란이 생긴 교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권위는 오직 하나님이 보내신 사도라는 직분에 있다. 필요한 훈련을 받고 박사 가운을 입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말씀에 권위를 더해준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신 사람만 진정한 말씀의 권위를 가진다.(도올과 아동부교사?) 하나님이 말씀을 성경으로 계시해주셨기 때문에 성경에 맞는 말씀만 권위를 가진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다운 삶의 모습이 말씀전파의 권위를 준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 7:15-16)

사도의 권위는 심부름 받은 일에만 있다. 심부름 받지 않은 일에는 아무런 권위도 없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보냄을 받았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절대적인 권위가 있다.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항하면 안 된다. 그러나 베드로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말을 할 때는 아무런 특별한 권위가 없다. 오늘날 교회의 사역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모습만으로는 아무 권위도 없다. 그래서 항상 겸손해야 한다. 다른 성도를 존중하고 높여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에게 시키신 일은 권위를 가지고 해야 한다. 다른 성도들도 그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다만 이런 권위를 가지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입어야 하고 하나님의 일꾼답게 살아야 한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 지역에 흩어진 나그네에게 전한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지역은 다 지금의 소아시아 지역이다.(아시아는 대륙이 아니라 로마의 주) 그러나 본문의 나그네라는 말은 지상의 고향을 떠나 여러 곳에 흩어진 나그네라는 뜻이 아니라 천국 본향을 떠나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신자들의 모습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나그네로 살고 있다. 이곳은 우리의 본향이 아니다. 영원히 살 곳도 아니다.

나그네는 어떻게 사는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산다. 고향에 갈 준비를 하며 산다.(팔레스틴 회복 전 유대인들이 현금화가 용이한 생업) 그 나라에서 잘 살기 위해 고향에 갈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에서는 지금 죽 한 그릇을 위해 남은 인생의 장자권을 버렸다. 하물며 이생에서 몇 십 년 좋은 것을 누리겠다고 내세의 천국을 포기할 수 있는가? 이생의 삶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버리는 사람은 인생이 나그네라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것이다.

나그네는 괴롭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관습이 다르기 때문이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생각해보라. 둘째, 시민권이 없어서 충분히 보호되거나 권리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주민은 주의 시설 사용에 큰 혜택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느 나라 국민이냐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관습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보호되는 것은 자기 본국의 힘에 따라 달라진다.(강대국 시민들의 거만한 모습?)

천국의 시민이라면 이 세상에서 관습이 달라 괴롭기는 해도 보호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 나라의 세력은 온 세상에 충만히 뻗어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나그네라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빈국에 가면 “내가 이 나라에 태어나지 않은 게 고맙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지 않는가?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하다가 어려움을 당할 때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이런 자부심과 천국의 소망을 되새기면 힘찬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토의문제

1. 오늘 말씀에서 내가 느낀 점을 자유롭게 나누십시오.
2. 나는 교회에서 받은 직분만으로 사역에 자신이 있습니까, 세상적인 다른 모습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까? 내가 다른 사역자를 볼 때는 어떻습니까?
3. 내가 세상에서 부러워하는 것을 말씀해주십시오. 천국 소망이 부러움을 없애줍니까?
4. 교회의 직분은 있어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는 경우를 생각해보십시오.(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사명 받지 못한 사역, 믿음의 상실, 등)
5. 교회의 모든 사역자들이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아 일하는 사역자가 되도록, 천국 소망 속에 힘찬 신앙생활을 하도록, 조원들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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