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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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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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정착한 땅은 광야지대입니다. 그런데 광야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릴 때입니다. 아무리 척박한 환경일 지라도 젖과 꿀이 흐르게 할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가 광야처럼 메마르고 척박할지라도 우리가 담당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계속해서 약속하셨고, 그 약속된 땅에 도달하기까지 수없이 많은 기사와 이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백성들은 그 땅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을 완전히 무찌르지 않고 이방인들과 함께 살게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그 땅을 완전히 차지하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단순하고도 확실합니다. 바로 순종과 불순종의 차이 때문입니다.

결론은 단순하고도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음에도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신뢰하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심을 신뢰하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싶어하시는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니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실패와 절망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늘 확신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어떤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아는 지식은 믿음의 가장 기초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능력이 있으시고, 권세가 있음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지식은 귀신이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압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어느 마을에 들어가시면 가장 먼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밝힌 존재는 바로 귀신이었습니다. 귀신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다고 구원을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믿음은 전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분이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고, 하라면 하고, 중지하라면 중지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믿음을 오해하여 예수님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한 가지 사실만 믿고 세상에서 어떤 짓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그러한 크리스챤이 많기 때문에 세상이 변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순종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오늘 본문이 말해주는 것이 바로 순종에 대한 부분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이방인이 남게 됨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4절을 읽겠습니다. “남겨두신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서두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얻지 못하고, 이방인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동일하게 이방인을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살게하신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백성이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 순종하는지를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나안땅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하고 그 이방 거민들이 남게 되었고, 반대로 생각하여 이방거민을 남겨두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명령들을 순종하시는지를 알고자 하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 곁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신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고 세상 방식으로 살고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겠습니까? 그 사람들 속에서 네가 신실하게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가를 보시기 원함이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름길을 찾습니다. 어떻게 하면 인생길을 덜 고생하고, 빨리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가를 찾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삶에 지름길은 오직 하나님말씀에 순종하는 것 뿐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면 세상에서 제대로 살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또한 순종하며 살았던 선배들이 순종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순종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었고, 앞으로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택하여 쓰실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셉의 삶을 보십시오. 요셉이 애굽에 팔려진 종이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소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처참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가정총무가 되어 집을 돌보는데 집주인의 아내가 유혹했습니다. 어쩌면 그 유혹에 넘어가면 노예의 자리에서 해방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거짓말하지 않고 순전하게 하나님말씀에 순종하다가 결국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실패했습니까? 아닙니다. 감옥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결국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권리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말씀대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두라평지에 높게 세워진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상에서 절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말씀에 순종하려다 풀무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끝장났습니까? 아닙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을 시기하던 사람들이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렸습니다. 기도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도 다니엘은 사람들의 말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그래서 끝장났습니까? 아닙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골리앗이 하나님을 저주할 때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골리앗에게 죽임을 당했습니까? 사울왕이 계속 죽이려고 했지만 그를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사울은 죽임을 당하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끝까지 순종하지 못한 사람들의 뒤안길을 보십시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서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에 모래알처럼 자손을 허락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끝까지 인내하지 못하고 하갈이라는 종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현재 세계적인 분쟁, 아랍과 이스라엘 사이에 일어나는 분쟁, 갈등과 미움의 뿌리를 제공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이었던 사울왕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작은 자였던 사울을 왕으로 삼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 순종하기 보다는 자기 생각대로 제사 드리고,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자신의 생각에 좋은대로 행했습니다. 결국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지혜의 왕인 솔로몬을 생각해 보십시오. 처음에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 구했던 것은 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지혜롭게 인도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지혜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이방신을 섬기는 수백의 여성과 혼인하여 이방신상을 끌어들였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한 다윗의 자손이 영원하리라했는데, 그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나라가 반쪽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이방사람을 남겨두신 이유가 세상사람들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가를 보시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굳건한 믿음으로 순종하는가를 테스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내 곁에 믿음의 요소가 아닌 여러 가지 힘든 상황이 있을지라도 타협하지 않고 100%순종하면서 주님의 뒤를 따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시는가 알아보시려 하셨는데 5-6절 말씀처럼 이스라엘백성들은 그 거주민과 통혼하고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숭배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는 8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팔았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년동안 섬겼더라”

순종하지 않은 이스라엘백성은 이방인의 노예가 되어 비참한 삶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말씀대로 순종하는가 살펴보셔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함에도 대충대충 살고, 세상 사람들의 방식대로 따라 살게 되면 이스라엘을 메소보다미아의 손에 넘겨버린 것처럼 우리도 세상의 노예처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다가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노예가 되어서 세상을 섬기는 삶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8절 말씀을 주목해야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팔았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년동안 섬겼더라”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팔아버렸다는 표현을 합니다. 우리가 세상속에서 세상의 것을 탐하고 눈에 보이는 것에 주목하며 살다가는 우리도 세상에 팔려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합니다. 우리의 삶은 이 세상에서의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새벽이슬 같음을 잊지 마십시오.

제가 귀국해서 추종범형제의 죽음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청년예배에 와서 은혜받고 믿음으로 살고 싶어했던 형제입니다. 30세의 젊은 나이에 금융계의 지점장으로 승진하였습니다. 그가 차 뒤편에서 잠을 자다가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누가 우리의 내일을 장담할 수 있습니까? 누가 우리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습니까? 누가 나는 아무런 해도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어차피 짧은 인생 우리 주님위해 마음껏 살다가 주님만나서 영원히 살아야합니다.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못하여 실패를 경험하다가 승리를 경험한 내용이 9절 이하에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실패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옷니엘을 세우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셨을 때 옷니엘이 순종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그 순종의 결과를 10절에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다고 표현합니다. 옷니엘의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께서 “너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고 부르시자” “아멘”하고 순종했고, 그 순종으로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충만케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의 충만함은 결국 우리에게 승리를 의미합니다. 승리를 주시는 성령님의 역사는 내가 주님의 부름앞에 순종하며 나아갈 때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부족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강할 수 있는 것은 내안의 성령께서 나를 통해서 역사하실 때입니다. 옷니엘 한 사람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자 메소보다미아 구산리사다임을 이겼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수의 논리로 행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만 제대로 되어진다면 세상이 변합니다. 소금을 보십시오. 4%의 염분만 있어도 바닷물이 썩지 않습니다. 홍차에 레몬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홍차 색깔이 레몬 색깔로 변합니다. 소수로 다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합니다. 언제 예수믿는 사람이 다수였던 적이 있습니까? 항상 소수였지만 전체를 이끌어 가는 능력, 그 짠맛에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진짜 짠맛을 내는 왕 소금 크리스챤이 되시기 바랍니다.

짠 맛은 영적인 능력을 회복함으로써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공을 키워야합니다. 영적인 능력을 회복해야합니다. 짠 맛을 다시 회복해야합니다. 요즘 가까 소금이 많습니다. 크기는 왕소금처럼 큰데, 짠맛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진짜 짠맛을 내는 왕소금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페스티벌은 4500명의 젊은이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그중 1200명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수 십대의 차로 참석했습니다. 누가 그들은 동원했는지 아십니까? 바로 지하교회에서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살아가는 한 고려인 목사에 의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다는 것은 성령충만을 의미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님으로 충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성령충만은 받아도 되고 받지 않아도 괞찮은 성격이 아닙니다. 성령충만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성령충만 없이 능력 있게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매일 우리의 기도제목중의 한 가지는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입는 것이어야 합니다.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순종하십시오. 100%순종하십시오. 주님의 기쁨이 되어주십시오. 세상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십시오. 그러기 위해 성령충만을 간구하며, 사모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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