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사역자와 유익한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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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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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호남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원우회에서 발행하는 '남은자'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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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회에 이런 목회자가 있습니다. 맡은 일을 열심히 합니다. 설교도 최선을 다해 준비합니다. 책도 많이 읽고 기도도 많이 하며 담대히 말씀을 전해 성도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리고 심방도 열심히 합니다. 또한 성도들을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합니다. 열심히 목회를 하며 성도들을 사랑으로 친절하게 대하고 또한 말씀도 감동적으로 전하는 이런 목회자는 분명히 유능하고 훌륭한 목회자입니다. 아마 우리는 대부분 이런 목회자가 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목회자에게는 아울러 이런 면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이 목회자는 동역자들보다 더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그가 열심히 일하는 이유도 실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입니다. 성도들을 따뜻하게 대하지만 자기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나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만 그렇고 그렇지 않은 성도들에게는 그만큼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설교를 열심히 준비해서 감동적으로 하지만 설교나 심방 같이 성도들의 눈에 띄는 일만 열심히 하지 교회관리나 행정사역처럼 성도들의 눈에 띄지 않는 일은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가 맡은 일 중에 이런 일은 빈틈이나 오류가 많이 생겨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을 보충해줘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됩니다.


이렇게 양면성을 가진 목회자라면 어떻게 평가해야 하겠습니까?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모습만 볼 때는 이런 목회자도 유능하게 보입니다. 아니 자기 앞가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약삭빠른 사람들은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짜 유능한 목회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목회자가 교회에 얼마나 유익하겠습니까? 열심히 일하지만 자기가 칭찬받고 대접받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눈에 띄지 않는 일은 소홀히 하여 남들에게 부담을 줍니다. 설교나 심방을 성실히 또한 감동적으로 잘하지만 남보다 잘하려는 경쟁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따뜻하게 대하지만 성도들을 편애합니다. 이런 목회자는 결코 교회에 유익하지 않습니다.


목회자가 자기의 명예를 추구하면 교회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발전하지 않고 목회자를 중심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특히 교인들은 목회자를 닮기 때문에 교인들도 자기 명예를 추구하게 됩니다. 명예로운 직분은 서로 맡으려고 다투는 반면 눈에 띄지 않는 일은 서로 피하여 교인들 사이에 불화가 생깁니다. 교인들이 서로 경쟁하며 시기하게 됩니다. 심지어 이런 목회자는 외형적인 업적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교인들을 경쟁시켜 더욱 시기와 불화를 촉진시키기도 합니다.


목회자가 교인들을 편애하면 교인들 간에 반목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외적 업적을 추구하며 교인들을 편애하는 목회자는 외형적 업적이 큰 교인을 더 사랑합니다. 그러면 교인들도 외적인 업적에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평가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외모를 보는 목회자의 평가나 교우들의 평가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자신의 명예와 외형적 업적에 관심이 많은 목회자는 자기 명예를 위해 언제든지 교회를 떠날 수 있습니다. 대체로 자기 명예를 추구하고 유력한 교인들에게 친절하며 업적을 세우기 위해 애쓰는 목회자는 목회 초반에 인기를 얻습니다. 유능해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기를 얻다가 외형적인 조건이 더 좋은 교회로 자리를 옮기면 교인들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이런 목회자는 유능해보여 교인들에게 인기를 얻고 심지어 교회의 외형적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지만 결국은 교회에 유익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해를 끼칩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해를 끼치는 것은 교회를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목회자 중심으로 변질시키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사랑과 평강으로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하여 교회의 본질을 잃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이 마음보다 외형에 관심을 가지게 하여 참된 신앙생활에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쉽게 교인들을 떠남으로써 교인들에게 배신감을 주어 아예 교회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위험까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목회자가 교회의 본질에 상처를 주기는 해도 최소한 목회자 자신은 교인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니, 이런 목회자는 분명히 사역 초반에 인기를 얻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교회가 본질을 잃기 시작하는데 목회자가 변함없이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사람이 오래 사귀면 서로의 본심을 알아차리게 되듯이 교인들도 시간이 지나면 이런 목회자의 본심을 알게 됩니다. 목회자의 노력이 자기 명예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면 존경심이 사라집니다. 친절한 사랑도 유력한 교인들에게 국한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며 목회자의 사랑이 사실은 편애였다는 것을 알면 소외된 교인들은 실망하고 심지어 원망하게 됩니다. 이런 목회자는 교회에 유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도 시간이 지나면 사랑과 존경을 잃게 되어 무능한 목회자로 평가받게 됩니다.


이런 모습을 종합해볼 때 목회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인들을 공평하게 진심으로 사랑하여 열심히 섬기는 목회자입니다. 둘째는 열심히 섬기지만 하나님이나 교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여 열심히 일하는 목회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눈에 띄는 사역만 열심히 합니다. 그리고 교인을 편애합니다. 셋째는 아무런 열심이 없이 그냥 되는 대로 혹은 적당히 사역하는 목회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나 교인이나 자신이나 누구도 열정적으로 사랑하지 않는 목회자입니다.


이런 목회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 유형의 목회자는 처음부터 유능해보일 수도 있으나 처음에는 무능해보일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 무능해보일 수도 있는 것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원칙에 따라 정상적으로 목회하다보면 업적이 빨리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유능한 것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교회에 유익한 목회자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혹시 무능해보여도 시간이 흐르면 유능하고 유익한 목회자로 인정받습니다.


두 번째 유형의 목회자는 처음에는 유능하고 유익한 목회자로 보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유능하지만 무익한 목회자로 보입니다. 하지만 결국은 무능하고 무익한 목회자가 되고 맙니다.


세 번째 유형의 목회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능하고 무익한 목회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며 달리 말하면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사람입니다. 칭찬거리는 전혀 없는 가장 문제가 많은 목회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바르게 응답하는 목회자가 되려면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목회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다 이기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로 우리 자신에게도 가장 유익한 일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믿으면 우리의 이기심마저도 우리를 이런 목회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유능한 사역자가 되려고만 하면 오히려 무능하고 무익한 사역자가 되고 유익한 사역자가 되려고 할 때 진정으로 유능하고 유익한 사역자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그래서 경쟁심이나 튀고 싶은 욕심에서 열심을 품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여 열심을 품고 사역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나 사역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편애하며 사랑을 쏟는 목회자가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공평하게 사랑을 쏟는 목회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의 눈에 띄는 사역에만이 아니라 숨겨진 사역에도 똑같은 관심과 열정으로 사역하는 사역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도 신실한 일꾼으로 칭찬을 받을 것이고 교회로부터도 진정으로 유익하고 유능한 사역자로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귀한 열매를 풍성히 맺게 될 것입니다.




김중곤: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의 모습을 다시 살펴봅니다. 명심하고, 내 자신을 치고 복종시켜 하나님영광위해 최선다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05/25-23:23]-



김대성: 전적으로 동감하고 도전받은 좋은 글에 댓글을 다니 참 부담됩니다.^_^


예전에 어떤 목사님이 저에게, 목회자는 3종류가 있다고 하셨는데, 비슷하면서 논조가 조금 다른 글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의 다시금 마음을 다스리게 됩니다.


어쩌면 요즘은 열정이 약해지니 문제인것 같습니다.

열정이 과하면 유능한 사람으로 오해도 받는것 같습니다.



목사님, 사람이 열정을 가지고 일한다는 것은 무엇에 비유 할 수 있는지요?

열정적으로 일하지 않아야 팀웍이 유지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열정이 없는 사람은 열정이 있는 사람에게 부담되기 때문인가요?

궁금합니다.

목사님은 그런 경험이 없으시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런 비슷한 글을 자주 쓰시는 것을 보면 목사님께서는 누구보다 깊은 고뇌를 많이 하신분이라고 반증하는것은 아닌지 생각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저마다의 임무가 주어지게 마련이잖아요.

그 임무를 실천하거나 성취하는 방식과 절차가 사람마다 다양한것 같습니다.

저도 겸손하지 못? -[05/26-20:02]-



김대성:

사람은 저마다의 임무가 주어지게 마련이잖아요.

그 임무를 실천하거나 성취하는 방식과 절차가 사람마다 다양한것 같습니다.

저도 겸손하지 못하고 남에게 자랑하는 열정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나 회사, 그리고 조직에서 열정으로 일하는것이 많은 사람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불이 있는 사람이 불을 크고 확실하게 일으키잖아요.


그런데, 이것을 지속시키기가 참 어렵습니다. 내적인 건강문제 보다는 외岵?부분도 적지 않거든요.

드라마 대장금이나 허준을 보면 참 열정이 있는 사람인것 같습니다.

이순신 장군도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바울도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하지 않겠다고 했고,

또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십자가 복음만을 전할 열정이 넘치는 사람있지요.

예수님도 생의 목표와 목적이 분명한 열정적인 분이셨다고 생각합니다.

수난을 받을 신앙의 열정이 있으셨기 때문에 십자가의 형틀 조차 두려워 하지 않으셨고 결국 성취하셨잖아요.


그런데 이들은 참 험난하게 살거든요.

-[05/26-20:03]-



김대성: 열정적으로 일하고, 성실한 자세를 가지려고 시도하지만,

사역의 현장에서 보이는 조직보다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열정도 사라지게 되고,

어쩌면 사람에 의해서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평가를 받고,

사회적 낙인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잖아요.


그래서 섬김형 인간이 되어야하는지요?


처음에는 공공의 목표 성취를 위해 열정을 품을 수도 있지만,

목적없이 목표만 달려가는 것은 자칫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고 하는 잘못된 사역일수 있음을 자주 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의 딜레마로 생각이 멈추는 것은

열정이 없는 사람들이 열정이 있는 사람을 매우 두려워 하고 불안해 한다는 것입니다.


설교자의 설교를 들은 사람의 해석은 항상 다르듯이 글을 쓴 사람과 읽은 사람은 다르기 마련인것 같습니다.


저는 왜 자꾸 열정적인 사역자와 비열정적인 사역자, 무관심자로 비춰질까요?


이 글을 복사하여 오랫동안 간직하도록 하겠습니다.

유익한 사람이 되고자 정직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추? -[05/26-20:04]-



오덕호: 김대성 전도사님, 옳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교회를 사랑하면 열정적으로 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남에게는 튀려고 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오해는 시간이 지나면 풀린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성도들을 사랑할 때 참 사랑의 열정이 있으면 100명의 성도들을 각각 100씩의 사랑으로 사랑하며 섬길 겁니다. 그러나 자기 명예를 추구하는 열정이 있으면 100명의 성도 중에 50명은 100의 사랑으로 사랑하지만 50명은 80-50의 사랑으로 사랑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심하면 나머지 50명은 거의 사랑하지 않기도 하구요.

물론 참사랑의 사역자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는 눈에 띄는 사역과 띄지 않는 사역을 다 같이 중요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제가 경험한 한 가지는 자기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은 변명 거리가 있으면 할 일도 안한다는 것입니다. 희생이 없는 거지요.

어쨌든 진정한 사랑은 분명히 열정이 있습니다. 오해의 소지도 있고 시기받을 위험도 있지요. 그걸 피하기 위해 열정 없는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일할 수는 없는 거지요. 하향평준화는 사탄의 평준화이고 상향평준화가 하나님의 평준화니까요! -[05/26-23:31]-


김대성: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다.


-[05/27-06:45]-



이은주: 목사님 요즘 저는 위의 말씀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요 머리가 너무 복잡해요. 이럴땐 이런 결정을 해주세요라는 답이 없기에요. 잠정적으로 저는 유능한, 유익한?생각지 않기로 했어요.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해요. -[05/30-18:45]-



오덕호: 이은주 전도사님, 머리만 복잡하게 하고 정답은 없는 글을 올려 무지무지하게 죄송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간단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시면 최고지요. 그 일에서 내가 명예나 대접을 받으려고 하지만 않으면 다 되는 거구요.

전도사님은 별 문제가 없어서 문제점을 찾으려고 하니 골치가 아픈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니까 우리 모두가 늘 마음을 바로 잡는 사역자가 되기를 빕니다. 마음만 바로 잡히면 대체로 바른 방법을 찾게 되지요. 그러고도 안 되는 부분은 교육이 필요합니다. 성경공부, 교양공부, 예절공부...전에도 말씀드렸지요.

주님의 사랑으로 전도사님을 사랑하며 축복합니다. -[05/30-22:11]-



이인덕: 에고! 거짓을 품으면 하나님이 아시고 위선적인 행동은 사람도 다 알고.....

최선은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나 자신에게 "정직"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 같은데...

이....가려운 귀를 가진 악한 죄성의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경우가 있으니, 그래도...진심을 알아주는 분께는 어떤 것도 아깝지 않을것 같습니다. -[05/31-08:47]-



***: 충분히 공감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모두 완벽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완벽하게 첫번째유형도, 완전히 두번째 유형도, 완전한 세번째 유형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열심을 품고 사역하다보면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 또 실제로 일하다보면 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구요. 그러나 항상 그런것이 아니라 기도하다보면 튀고 싶은 마음, 건강하지 못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지 않을까요? 그런 하나님의 싸인을 받고도 고치지 않는다면 문제이겠지만 대부분 하나님의 싸인이 있다면 시정될것으로 생각됩니다. 문제는 기도하지 않고, 말씀을 들을 귀가 막혀서 하나님과의 통로가 막혀있는 것이 문제겠지요.

궁금합니다. 목사님은 진정으로 첫번째 유형의 목회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또 담임목사님이 부교역자들을 편애하고 평가하여 부교역자간에 화합을 이루지 못하게 하고 는 것은 어떤 유형의 목회자라고 할 수 있는가요?

-[07/08-09:42]-



오덕호: 제가 염려하던 글을 읽게 되었군요. 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누구나 한 가지 모습만 가지고 있지는 않고 여러 가지 모습이 섞여 있을 겁니다. 다만 할 수 있는 대로 나쁜 모습은 줄여가고 좋은 모습을 찾아가는 게 좋겠지요. 그런 방향을 생각해본 글입니다. 님이 처음에 공감이 된다고 하신 것처럼 공감 되는 내용이라면 우리 각자에게 유익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저도 이 글이 지향하는 훌륭한 목회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주 부족한 사람이지요. 이 글은 신학생들에게 알려줘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하여 쓴 글입니다. 제가 부족하다고 제가 하는 만큼만 하도록 신학생들에게 권할 수는 없겠지요. 제가 못해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글을 읽는 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평가하면 이 글에서 도움을 받기 어렵겠지요.

-[07/08-10:14]-




오덕호: 그리고 부교역자를 편애하는 담임목사는 어떤 유형이랄 것도 없이 나쁜 목회자겠지요. 편애는 이 글에서도 계속 문제 삼았던 거니까요.

하지만 이 말씀이 저에 대한 말씀이라면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어느 부교역자든지 처음에는 다양하게 의논하고 일을 맡깁니다. 그러다가 적성에 맞지 않는 분야를 발견하면 그런 일을 맡기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대체로 교회행정과 관련된 업무를 맡은 부교역자와 많은 의논을 하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의논을 많이 하고 적게 하는 것과 부교역자들이 맡은 일이 다르다는 것 외에는 편애라고 볼만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의논과 업무 차이도 저로서는 그 사람이 할만한 일에 맞춘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편애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중의 말씀은 우리교회 부교역자들이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 쓰신 건가요?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저도 원하는 모습이 아니니까 보다 좋은 모습을 갖추도록 노력하겠습니다.

-[07/08-10:21]-


김대성: 신학생 여러분, 편애지향적인 목회자를 두려워 하십시오.

제가 10여년 파트타임 하면서 배운것은,


편애하는 지도자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지도자가 나를 편애하는것이 제일 두려운 것이더군요.

이 말은 좀 오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만,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준다는 것은 기쁜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순수하지 않은 목적을 띄는 경우가 있다면,

오염된 칭찬입니다.


진실된 격려는 없고 모두가 어떤 이용가치에 목회활동이 지속되다보면,

아부하게 되고, 정치적인 언행이 습관화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덕호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늘 반성하고, 좀심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은 일종의 강자와 약자의 구조가 끊임없이 이어지더군요.


제가 열정을 가지고 의욕있게 하려는 마음과

이것 마저도 다른 부교역자들의 시선에는 바리새인이 될수가 있어 염려가 됩니다.


누구의 기준에서 일해야 하는지 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10/13-17:36]-



정종원: 독일에 온지 어느새 1년 6개월이 지나갑니다.

아마 목사님의 홈피에 다녀간 기간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 오랜만에 들어왔는데....귀한 글에 도전과 깊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목사님의 답글 중에 "하향평준과 상향평준"에 관한 표현.....

음.... 목회를 하다보면 수많은 선택의 고민들을 하게 되었는데....그 때 옳은 판단을 위한 좋은 기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04/11-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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