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의 일곱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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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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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보면 예루살렘의 초대교회에서 과부들을 구제하는 데 문제가 생겼다. 그러자 사도들은 모든 교인들을 모아 놓고 교회의 구제금을 관리하는 일까지 자기들이 맡아서 하느라고 말씀 전하는 일에 소홀해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며 재정관리를 맡길 사람을 뽑으라고 한다. 그래서 온 교회가 일곱 사람을 뽑는데 이들을 우리는 일곱 집사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부르는 것이 꼭 잘못되었다고 할 필요는 없겠으나 과히 좋은 표현도 아니다. 우선 성경은 그 일곱 사람을 집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일도 오늘날 교회에서 집사가 하는 일과 다르다. 그들은 집사들의 사역을 넘어서 교회 관리 전반을 맡아서 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 동안 그런 일들을 하던 사도들은 이제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곱 사역자를 집사라고 하는 것은 그들의 직분에 대해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우리가 그들을 흔히 집사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사도행전 6:2에서 사도들이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할 때 “공궤한다”는 헬라어 단어 때문이다. 이 단어가 영어로 집사를 의미하는 단어(deacon)와 같은 어원이어서 사람들이 그들을 집사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원래 그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섬기다”라는 뜻으로서 그들은 집사라기보다 “섬기는” 일을 하는 자들이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처음에는 사도들이 모든 것을 지도하고 관리하였다. 그들은 말씀도 가르치고 재정관리도 하였다. 그러나 교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그들의 힘으로 재정관리를 정확하게 하기 어렵게 되자(행 6:1) 그들은 말씀과 기도에만 집중하기로 하고 교회의 제반 관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게 된다. 그들이 바로 이 일곱 사역자이다. 아직은 교회가 그만큼 조직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직분에 적합한 이름이 없다. 그들의 사역 내용에 비춰보면 그들은 오늘날 교회의 장로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들을 장로라고 부르는 것도 부적합하다. 왜냐하면 성경은 아직 그들을 어떤 직분으로도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들은 사도 못지 않게 권능을 행하며 선교 사역을 한다(스데반과 빌립을 보라). 그들의 사역에는 직분 명이 없었고 아울러 경직되게 제한되지도 않았다.

우리는 본문에서 두 가지를 배울 수 있다. 하나는 교회의 규모가 커지면 업무를 분담하는 조직적인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가 지나치게 조직화되어 직분에 얽매이며 경직되어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정신에 맞춰 각 교회는 자체에 적합한 조직과 직분을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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