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더러운 그릇

작성자 정보

  • 섬김이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우리나라 목사님으로서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선교사역을 하신 분이 있습니다. 나중에 대구에서 목회하신 홍대위 목사님으로 기억됩니다. 홍 목사님이 미국인 선교사님을 도와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실 때 있었던 일입니다. 하루는 미국인 선교사님과 같이 중국인 장로님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 중국인 장로님 집은 산길을 한참 가야 하는 외진 곳에 있었습니다. 먼 길이라 서둘렀지만 밤늦게 도착했습니다. 몹시 피곤하고 배가 고팠습니다. 중국인 장로님은 두 분을 반갑게 맞으며 저녁을 차려왔습니다.


저녁 식사는 죽이었는데 목사님은 저녁상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릇이 너무 더러웠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식사를 하는데 중국인 장로님이 지저분하게 식사를 했습니다. 목사님은 기름때가 덕지덕지 붙은 그릇에 정이 떨어진데다가 장로님마저 지저분하게 먹으니 참 먹기가 거북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을 보니까 아주 맛있게 잘 먹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먹기 싫었지만 장로님 체면도 있고 또 자기도 배가 고팠기 때문에 억지로 다 먹었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목사님은 미국인 선교사님과 함께 중국인 장로님 집을 나와 산길을 걸어 내려왔습니다. 좁은 길이라 선교사님이 앞서 가고 목사님은 뒤에서 걸어가는데 문뜩 어제 저녁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교사님, 어젯밤 어쩌면 그렇게 죽을 잘 잡수셨습니까?” 선교사님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그냥 배도 고프고 죽도 맛있어서 잘 먹었다고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은 노골적으로 말하지는 못하고 이렇게 저렇게 둘러서 음식이 더럽지 않았느냐고 암시해줬습니다. 결국 미국인 선교사님도 목사님의 말뜻을 알아챘습니다.

 

선교사님은 잠시 말없이 걷더니 이런 성경구절을 말해줬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사랑은 허물을 덮어준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듣고 목사님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당시 한국은 아직 낙후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자기에게 더러웠다면 그보다 더 위생적인 생활을 하던 미국인 선교사님에게는 얼마나 더 더러웠겠습니까? 그런데도 선교사님은 중국인 장로님의 음식이 더러운지 몰랐습니다. 장로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허물이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장로님에 대한 사랑이 없어서 음식이 더러웠고 장로님의 모습이 역겨웠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허물을 덮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의 집 자식은 콧물만 흘려도 더럽지만 자기 자식은 기저귀도 안 더러운 것입니다. 여러분, 가족이나 친구가 못나 보이면 사실은 그가 못난 게 아니라 내가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사랑이 있으면 이웃의 허물이 가려지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사랑이 가득하여 서로 허물을 덮어주고 화목을 이루는 행복한 곳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546 / 15 Page
번호
제목
이름

성경공부


최근글


새댓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