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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그때는 듣지 않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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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율법교사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조상들은 자기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죽였다.
지금 너희는 그 선지자들의 무덤을 꾸미고 기념비를 세운다.
그러나 너희도 지금 너희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해주는 메시야를 죽일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정말 무서운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선지자의 말씀을 들을 때는 선지자를 배척합니다.
그러나 그 선지자가 죽은 후에는 기념비를 만들며 높이는 것입니다.

선지자를 죽일 때와 높일 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런 걸까요?
하나님의 벌을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진리를 전하는 참 선지자의 말씀을 듣기 싫다고 거부했습니다.
평강과 축복을 전하는 거짓 선지자의 말만 좋아했습니다.
그러면서 악을 행하다가 벌을 받고 나라가 망했습니다.
벌을 받은 후에야 참 선지자를 인정하고 높인 것입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옛날 선지자만 높이고 지금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는 배척하는데요.

지금 우리에게도 이런 패턴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설교자가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면 성도들이 싫어합니다.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가짜 말씀을 좋아합니다.

그러다가 벌을 받으면 과거에 하나님 말씀을 전한 설교자를 높입니다.
그러나 막상 지금 나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설교자는 배척합니다.

중세의 교회는 종교개혁자들을 박해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중세 종교개혁자들을 기념하며 높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지금 교회를 개혁하려는 사람은 배척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과거의 설교자만 높이고 현재의 설교자를 배척한다면 언제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지금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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