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신앙생활의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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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빌립보서 3:7-8a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바울이 자기에게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종교적인 의였습니다. 예를 들어,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은 것,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인 것,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나쁜 겁니까? 아닙니다. 좋은 겁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이런 것들을 해로 여겼을까요?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종교적인 의가 예수님을 바로 알고 예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데 방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인 의가 왜 예수님을 아는 데 방해가 되었을까요? 당시 유대인들은 종교의식을 잘 지키고 율법을 잘 지키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종교적인 의로 구원을 받는다면 예수님이 필요하겠습니까? 자기의 종교적인 의로 구원을 받는데 왜 예수님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종교적인 의가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자기의 종교적인 의로는 구원을 받지 못하니 예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종교적인 의가 크면 예수님을 덜 믿게 되고, 종교적인 의가 적어야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종교적인 의가 예수님을 믿는 데 방해가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종교적인 의를 해로 여긴 것입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도 종교의식을 지키며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도 하나님 뜻대로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기 전보다 더 바르게 삽니다. 이런 것이 우리의 종교적인 의입니다.

우리도 종교적인 의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덜 의지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혹시 매주 예배를 드리니까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십일조도 하고 전도도 많이 하니까 작은 죄 쯤 하나님이 용서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만일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만큼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덜 의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종교적인 의가 없으면 더욱 예수님만 의지할 텐데 이런 의가 있어서 예수님을 덜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교적인 의가 예수님을 믿는 데 방해가 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바울처럼 나의 종교적인 의를 해로 여겨야 합니다. 종교적인 의 때문에 예수님의 은혜를 덜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목사니까, 나는 장로니까 구원을 받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의 신앙생활에는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목사나 장로라는 직분을 해로 여겨야 합니다. 세계를 선교한 업적도 해로 여기고, 교회를 개척한 업적도 해로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 때문에 예수님의 은혜를 덜 의지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예배에 출석해야 합니다. 전도해야 합니다. 헌금해야 합니다. 직분을 받고 열심히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나의 의라고 생각하면 예수님의 은혜만 믿고 의지하는 데 방해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의를 해로 여기며 그런 의 때문에 교만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예수님만 의지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항상 주님의 은혜 안에 살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의 축복을 풍성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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