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받고 살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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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인덕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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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눅 6:38)

우리나라에 ‘품앗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노동력을 서로 주고받는 것으로서
인간관계를 끈끈하게 맺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품앗이’의 기본 성격이
상호성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저명한 문화인류학자인 리키(Leakey)는 상호성의 법칙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원천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 법칙은 여러 가지로 변형되고
악용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예가 바로
설득의 심리학 제1법칙이라는 것이다.
상호성의 법칙은 남의 호의, 선물, 초대 등등이 결코 공짜가 아니라
분명 미래에 당신이 갚아야 할 빚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리하여 이 법칙은 상대방의 승낙을 얻어내는 도구로
가장 요긴하게 사용된다.
즉 이 법칙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일종의 빚진 상태로 만들어 놓으면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도
‘그렇게 하시지요’라는 상대방의 승낙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원하지 않는 호의라 할지라도
일단 접수되면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상호성의 법칙이 빚어낸 갖가지 영향력들을
넘쳐 나는 뉴스에서 날마다 보며 살아가고 있다.
정경유착은 차제에 두고라도
타사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리려고
애매한 서민들에게 갖가지 선심을 퍼붓는
고래들의 치열한 싸움판 속에
언제 등이 터질지 모르는 새우처럼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상호성의 법칙을
기업들의 이윤 추구를 위한
어떤 부정적인 설득의 도구로만 볼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것은 예수님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상호성의 법칙을 적용하여 어떤 이익을 얻으라는 것이 아니였다.
목적을 배제하고 동기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예수님의 정신으로서의 황금율(마7:12)을 말씀하신 것 뿐이다.

그런데 머리 좋은 사회과학자들이
이 예수님의 정신을 차용하여 이론을 만들고
기업들은 이 이론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목적한 바를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 속에서 우리 신앙인들은
상대방이 나를 설득하기 위해 던진 갖가지 미끼를 덥썩 물고
어쩔 수 없이 대롱대롱 끌려가는 모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와는 반대로
내가 후에 혹시 하게 될 지도 모르는
“예수님께로의 초청”을 부탁하기 위한 작업(?)으로서의
이 상호성의 법칙을 선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계절이 깊어간다.
이른 봄부터 사람이 노력과 시간을 ‘준’ 결과로
수확물을 ‘받는’ 계절은 분명 기쁘고 풍성하다.
수확이 끝나가는 들판은 텅 비어간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항상 수확의 기쁨이 끊이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오늘 내가 ‘주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오늘 내가 주면, 내일은 내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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