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이 경험할 수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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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인덕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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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애 3:22)


야훼께서 여자를 만들기를 원하셨을 때 아담의 신체 가운데 어떤 부분으로 만들어야 될지 고민에 휩싸였습니다. 여러 날을 고민하신 후 야훼께서는 드디어 결단하셨습니다. 


“그녀가 우쭐대지 않도록 그의 머리로부터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가 호기심이 강하지 않도록 그의 눈으로부터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가 잡담에 귀기울이지 않도록 그의 귀로부터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가 질투심이 강하지 않도록 그의 심장으로부터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가 탐욕스럽지 않도록 그의 손으로부터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가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않도록 그의 발로부터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에 나는 그녀를 인간의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만들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가 비록 옷을 벗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야훼께서는 아담의 갈빗대 하나에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럼에도 야훼의 놀라운 계획은 빗나갔습니다. 여자는 우쭐대며, 호기심이 많고, 잡담에 귀 기울이며, 수다쟁이며, 질투심이 많고, 탐욕스럽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를 좋아합니다. 아마도 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야훼의 사랑이 여성들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으로부터 근거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야훼의 대표적인 속성에는 긍휼과 공의라는, 마치 타원형의 두 중심점과 같은 팽팽한 추가 있습니다. 


호세아서를 보면 야훼의 팽팽한 두 속성인 “긍휼”과 “공의”가 늘 힘 겨루기를 합니다(호 11:8). 범죄한 이스라엘을 버릴 것이냐? 또는 용서할 것이냐? 하는 갈등입니다. 그러나 번번히 “긍휼”이 “공의”를 이기고 맙니다. 그 긍휼이 극대화된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긍휼은 히브리어로 ‘라훔’이라고 하는데 이 ‘라훔’은 진통을 통하여 새 생명을 창조해내는 여인의 “자궁”, 또는 “모태”를 가리키는 말, ‘레헴’에서부터 기원되었다고 합니다. 


날마다 옛날 악습을 반복하며 사는 우리가 오늘 한 생명 부지하고 사는 것은 바로 야훼의 이런 해산하는 고통의 갈등 속에 그래도 모태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야훼의 여성적인 속성, 즉 ‘긍휼’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야훼의 구원행동 양식이 “고난받는 자의 부르짖음”으로부터 야훼의 “모성적 긍휼의 응답”으로 이어지는 형식이라는 것입니다. 


모태 안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과 그 생명의 발육을 위해 자신의 뼈 속에 있는 마지막 칼슘까지 빼내어 생명체의 골격을 만들어내는 헌신, 생살이 찢기는 아픔을 견디며 생명을 빛으로 나오게 하는 숭고한 모성적 사랑이 야훼의 속성으로부터 기인하기에 비록 우쭐대며, 호기심이 많고, 잡담에 귀 기울이며, 수다쟁이며, 질투심이 많고, 탐욕스럽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여도 여성은 위대합니다. 그러나 야훼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위대하십니다.


이은주 요약: 왜 제목을 이런식으로 해 -[10/27-12:27]-
탁용환: 제목을 그런식을 해야 하나 000이 할수 없다는건가 그가 애를 낳을수 없다는 말에는 동의 할수 있지만 그가 수술을 했기 때문에 긍휼을 가질수 없다고 단정짓는것 같아 매우 씁습하다. 어떻게 보면 한사람의 인격을 모독한것 같은 느낌도 든다. -[10/27-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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