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가슴에 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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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인덕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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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우리 작은 아이가
작년 여름방학 집에 왔을 때
금발을 나부끼며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겨울방학에는
그 금발이 흑발로 바뀌어져 왔습니다.
머리색은 괜찮았는데
이제는 그 머리를 몽땅 다 위로 치켜올려
마치 폭탄 맞아 들쑤셔진 모양이었습니다.
금방 만화책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그 모양새는
영낙없이 거지 왕초 김춘삼과 그 조무래기들이
다리 밑에서 자고
떡 된 머리 긁적거려 쭈뼛쭈뼛해진 몰골이지 뭐겠습니까?

남편과 저는 그 꼴을 보고
어디서 데려온 자식이라면
도저히 못 봐주겠다고 혀를 끌끌 찼습니다.
그런데 자식이 뭔지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런 모습마저도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웠습니다.
보수적인 것이 골동품인 남편 역시도
"그래 고슴도치도 지 새끼 털은 밍크라더라..." 하며
얼굴 가득히 번져있는 웃음은 감추지 못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행복한 순간들 중의 하나는
바로 자신의 자녀를 바라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부모도 중요하고 배우자도 귀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녀만큼은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 전국에서는 작년 오늘 미군의 장갑차에 의해 숨진
여중생 효순이와 미선이의 촛불 추모 집회가 열렸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고 잊혀지지만
자녀를 먼저 보낸 부모에게 있어서 그 기억은
더 커지고 또렷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가슴에 묻은 자식은
그 또래 아이들과 똑같이 나이를 먹고 장성해 가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가 살아 있다면 저만큼 컸을텐데..."라고 한숨 지으며
가슴에서 떨구어 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그 부모들의 삶이
어디 사람 사는 것이겠습니까?
앞으로 그 부모에게 설사 좋은 일이 생긴다해도
자녀로 인한 기쁨을 능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극심한 상실의 고통 가운데서
그나마 우리가 한 가지 위로 받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부활의 산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독생자를
인류의 속죄제물로 내어 주신 그 분께서는
자식을 먼저 보낸 이 세상 부모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며
그 독생자를 살리셨듯이
마지막 날 주 안에서 잠든 자들을 또한 다 살리실 것입니다.

그 주님의 능력과 위로가
추모 1주기를 맞은 두 여중생 부모들과
홍수처럼 범람하는 슬픔의 강둑 옆에
자그마한 무덤하나 품고 사는
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넘치기를 기도해 봅니다.

◀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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