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를 대접하면 복을 받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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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주 요약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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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목사를 대접하면 복을 받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도 되고 "아니오"도 된다. 목사를 물질적으로 대접한다고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대접해야 복을 받는다

많은 신자들이 목사를 대접하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여 목사를 대접하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신자들 대다수가 목사를 '물질적'인 대접을 하려는 데 문제가 있다. 목사를 대접한다고 하면 대개 식사를 대접하거나, 옷을 해드리거나, 여러 가지 선물을 준비하여 갖다 드리는 일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복을 받는 행위라고 볼 수 없다. 물론 우리가 이웃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복 받을 일이다. 자기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사랑으로 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목사에게 물질적인 대접을 하는 것도 복 받을 일이다. 그러나 그런 복은 굳이 목사를 대접해야 받는 복은 아니다.

불신자든 타종교를 가진 사람이든, 끼니를 거르는 자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 굶주리지 않는 목사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보다 더 복 받을 일이다.

목사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 복 받을 일이 될 때도 있다. 그 식사가 목사에게 꼭 필요한 도움이 되는 경우에 그렇다. 예를 들어, 그 식사 대접으로 낙심한 목사가 격려를 받고 활력을 얻게 되거 나 혹은 시장하던 목사가 새 힘을 얻게 될 경우이다. 그렇지 않다면 목사에게 식사를 대접한다고 해서 그것이 별다르게 복 받을 일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물질적으로 이웃을 대접하여 그것이 복 받을 일이 되는 것은 바로 그 이웃이 궁핍을 겪고 있을 경우다. 여기서 그 이웃이 어떤 사람인가에는 아무런 제한도 없다. 인종, 나이, 성별, 종교, 사상 등 어떤 것에도 차이가 없다. 다만 궁핍하기만 하다면 그 이웃은 우리가 보살피고 대접해야 하는 존재이며 우리는 그런 대접을 함으로써 복을 받게 된다.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마25:44)

이 말은 고통당하는 자가 주님인 줄 알았더라면 도왔을 것이라는 뜻이다. 주님인 것 같지 않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그 사람이 바로 주님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주님을 대접한다는 것은 전혀 주님같이 생각되지 않는 사람들을 대접하는 일이다. 주님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대접하는 것이 주님을 대접하는 일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주의 종을 대접하라는 말씀도 많이 있고 또한 그렇게 해서 복을 받은 사례들도 적지 않다.

주의 종을 대접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본문은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를 대접하고 복을 받은 기사(왕상17:8-16)와 예수님의 제자에게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면 결코 그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마10:40-42)이다.

엘리야 사건을 보자. 여기서 엘리야와 과부 중에 누가 더 부자인가? 지금 엘리야는 아무것도 없어 굶어 죽을 형편이고 과부에게는 한 끼 먹을 정도의 양식밖에 없었다 물론 가난한 과부가 엘리야를 돕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과부는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도운 것이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살아남아야 하는데, 그가 생존할 수 있도록 음식을 제공할 사명이 과부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과부는 먹을 것이 있는 주의 종을 대접한 것이 아니라 먹을 것이 없는 주의 종을 대접하여 그가 하나님나라를 위해 살 수 있도록 도왔다. 더욱이 엘리야가 과부에게 떡 한 조각을 요구한 것은 과부의 양식을 가로채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엘리야는 그 과부에게 계속해서 양식이 주어지리라는 걸 알고 그렇게 부탁했다. 이것은 가난한 성도가 자기보다 더 부유한 목사를 대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생활이 넉넉한 목사를 대접하라고 가르치고 있지는 않다. 성도들이 대접해야할 목사는 가난하고 어려운 분이다.

목사를 물질적으로 대접하는 것이 복 받을 일이 아니라면 과연 어떻게 대접하는 것이 복 받을 일인가? 목사를 영적으로 대접하면 복을 받는다. 목사가 하나님의 사역을 할 때 영적인 지도자로 그를 존중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목사님이 하나님의 종으로 설교를 할 때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 영적인 문제를 목사님과 상의하고 목사님의 지도를 잘 받는 것 등이 목사를 영적으로 대접하는 일이 된다.

목사를 영적으로 대접하기보다 육적으로 대접하는 일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은 그만큼 육적인 대접이 복 받는 길이라고 믿는 잘못된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면 왜 우리에게 이런 잘못된 신앙이 생겼을까?

한가지 원인은 목사 자신이 육적인 대접과 영적인 대접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성도들을 잘못 그르친 데 있다. 그런데 이렇게 된 좀더 근본적인 원인은 우상숭배의 성격을 띠는 신앙이다. 우상 숭배의 특징은 그 신(우상)의 뜻을 행해야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신에게 무언가를 갖다 바쳐서 그 신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야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우상숭배의 영향을 받은 신자는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서 축복을 받으려고 한다. 이때 신자들이 하나님께 무엇을 바칠 수 있는 통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목사다. 즉 신자들은 목사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하면서 은연중에 하나님께 좋은 음식을 대접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신앙관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은 우상처럼 무엇을 해주면 기분이 좋아지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하나님께 물질은 많이 바치는 것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 나은 것처럼, 하나님의 종으로 사역하는 목사를 물질적으로 잘 대접하는 것보다 목사의 영적인 교훈에 순종하는 것이 더 복된 길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보상받을 수 있는 물질의 사용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이다. 어려운 사람이 복사든 평신도든 상관없다. 우리에게 복이 되는 대접, 진정한 목사 대접은 물질적인 대접이 아니다. 목사를 영적으로 대접해주는 일이다. 목사를 영적으로 대접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 분이 하는 사역을 존중해야 한다. 또한 목사가 물질적으로 어려우면 최선을 다해 도와주어야 한다. 하지만 어렵지 않은 목사를 대접하는 것보다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진정으로 복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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