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살인 (막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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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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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대학부에서 마가복음을 공부할 때 한 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 "손 마른 사람이라고 하는데 손이 말랐다는 게 뭡니까?" 하필 그 질문을 한 학생은 의대 본과 4학년생이었습니다. 의사가 다 된 학생이 물어보는데 제가 의학적으로 아는 게 없으니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손이 마비되어 전혀 못쓰는 거겠죠. 나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가 정확한 병명을 알고 싶어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학생의 다음 질문은 그런 종류의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면 손 마른 자는 당장 안 고쳐주면 죽습니까?" "아닙니다."라고 대답해 놓고 본문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 손 마른 자를 고치면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옳으냐고 물으시면 될텐데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중 어느 것이 옳으냐고 덧붙이셨을까?

주님은 여기서 단순히 안식일에 선을 행하라는 정도의 교훈만이 아니라 보다 심오한 것을 가르쳐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도와야 할 자를 돕지 않는 것은 바로 살인이니라!" 그 도움이 비록 생명과 직결된 것이 아니더라도 도와줄 수 있는데 돕지 않는 것은 바로 살인과 같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에 살인과 같다고 말한 부분은 이 외에도 몇 가지 더 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분노와 비난은 살인과 같다(마5:21-22). 미워하는 것도 살인과 같다(요일 3:15). 그러면 분노와 비난과 증오가 꼭 남의 생명을 빼앗는 결과를 초래해야만 살인입니까? 아닙니다. 그런 마음 자세 자체가 살인의 마음이고 살인과 같은 죄인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거절하는 거절도 그 거절로 인해 지금 당장 상대방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이미 살인행위인 것입니다. 주님은 여기서 그것을 가르쳐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바리새인들도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도움은 안식일에도 행했습니다. 예컨대 손을 베어서 피가 나면 싸매 줍니다. 출혈로 죽지 않게 묶어줍니다. 그러나 그 상처가 낫도록 약은 발라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일 고쳐도 된다는 것이겠지요. 여하튼 그들도 생명이 위태로울 때는 도와줍니다. 그런 그들이 본문에 나오는 손 마른 자를 고쳐주는 것은 반대합니다. 왜 그런 겁니까? 또한 왜 이 일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공모하는 것입니까? 그들은 그 병이 치명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 병을 고쳐주지 않는 것이 바로 살인과 같다는 진리를 몰랐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도 바리새인처럼 이점을 몰라서 남을 돕는데 소홀한 것 아니겠습니까? 누가 어려움을 겪고 있어도 "저런 사람이 한둘이야? 당장 돕지 않는다고 죽을 것도 아닌데 우선 이것부터 하지 뭐. 교회 치장도 하고 필요한 것도 구비해 놓고, 우리 행사부터 하고…" 이렇게 하는 동안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한국 교회들아, 너희가 그럴 수 있느냐? 지금 고통 당하는 너희 이웃을 돌보지 않는 것은 또 하나의 살인 행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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