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원합니다"(저자: 오덕호)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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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인덕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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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목적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중요하고, 받고 싶고, 듣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사랑임에도 참사랑을 하며 사는 사람이 많지 않음을 안타까와하여, 독자로 하여금 성경이 말하는 참 사랑의 의미를 알고 많은 사람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저자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힘은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주어진다고 한다. 성령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고린도 전서 13장은 우리에게 사랑할 수 있는 힘을 능력을 준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이다. 아카페는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는 것이다. 에로스가 가치를 추구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반면, 아가페는 상대방의 유익을 추구하며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신자가 ‘의’를 추구하여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그 사랑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것도’ 아니다.

사랑은 고통이나 속상하는 것에 대해 화내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며 반복되는 잘못에 대해서도 끝까지 참는 것이다. 그러나 오래 참는 것이 악행을 방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그 악행을 중지시키고, 선한 일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사랑은 혈기를 부리지 않고 부드러운 것이다. 온유한 자세는 다른 물건과 부딪쳐도 충격을 흡수하여 부드럽게 받아주는 것이다. 예리하고 날카로운 것을 감싸다 보면 자신이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한 상처를 각오하고 온유하게 살 때, 그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 속에 이 땅에서와 저 세상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게 된다.

사랑은 이웃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지도 말아야 하고 다른 사람의 시기심을 일으키는 행동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자신을 자랑하지 말아야 되며 심지어 자랑할 마음이 전혀 없어도 남들이 그렇게 생각할 위험이 있으면 조심해야 하는 것이 이웃에게 유익을 주는 사랑이다.

사랑은 이웃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자녀라는 표지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 대하여 그 사람의 신분이나 입장에 적합한 대우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임의로운 사람이나 무시하기 쉬운 부하직원, 손아래사람들에게 인격적으로 대하고 무례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 뿐 아니라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도 구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사랑이 있지만 그 사랑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다. 하나님과 함께 생각하고 하나님의 관점을 가질 때, 다른 사람, 다른 집단의 유익을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 나라 전체의 유익을 위하게 된다.

사랑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를 늘 기억하며 겸손한 마음을 가짐으로 이웃에게 성내지 않는 것이다. 화는 조급한 판단으로 인한 것이 많으므로 우리 이웃의 특별한 형편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랑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행한 악을 다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내가 앞으로 남에게 악한 짓을 하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당한 악행을 자신이 갚으려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려는 것과 같다. 오직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사랑은 특정한 사람에게 유익을 주어,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폭이 넓은 사랑이며 상대방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을 해 주는 것이 ‘의’이다. 정의는 사랑의 다른 모습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

사랑은 진리 즉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뜻인 율법들을 남에게 적용하는 것처럼 자기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사랑은 남의 잘못을 보호하기 위해 덮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좋은 마음을 가져야 하며 “언제나”와 “전부”와 같은 과장된 말을 조심해야 한다. 남의 허물을 과장해서 말하는 것은 사탄의 역사이다.

사랑은 지금 나타난 모습과 앞으로 나타날 모습까지 믿어주는 것이며, 앞으로 하나님의 은혜 속에 그가 잘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또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육체적이며,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도 꾸준히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우리의 힘으로 견딜 수 없을 때 하나님의 상급을 기대하고, 징계를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믿음을 얻는 게 가장 시급하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을 얻고 영생의 소망을 가진 사람에게 은사도 중요하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영원하고 은사는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는 사랑의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저자에 의해 새롭게 조명된 참 사랑의 의미는 그 동안 우리가 부분적으로 잘못 알고 있던 성경의 본문을 다시 읽어보도록 한다. 추상적이며 만져지지 않는 신기루같은 사랑이란 단어들이 손만 뻗으면 닿을 만한 곳에 있음도 알게 한다.

무엇보다도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고 자신이 규정한 의를 추구하는 것일 때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은 사랑이란 가면을 쓰고 오늘도 무수한 업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의 심장을 멈추게 할 만큼의 추상같은 대선언과도 같다.

또한 우직하리만큼, 자신의 유익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일관된 주장의 저자는 어쩌면 보통 사람이 찾지 못하는 좁은 문과 가기를 즐겨하지 않는 협착한 길을 걷는 외로운 선지자가 아닐까?



222.102.62.83김순옥: 이 글을 읽으면 우리가 감히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김니다.
이런 사랑의 힘은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성령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역사하신다고 하셨는데 고린도전서 13장이 바로 그런 말씀임에도 우리는 그 말씀을 읽어도
머리에서는 이해가 되지만 내 몸과 마음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때는 이런 사랑이 아가페적인 사랑인가 싶은데,내 자신이 아주 작은 관심을 베풀면서 엄청난 일을 한것처럼 나 스스로가 흐믓해 할때는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는것을 깨닫게 됩니다. 참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말이 쉬운 사랑이지 행함에 있어서는 예수님의 사랑처럼 우리가 감히 흉내조차도 낼 수 없고 이목사님의 표현처럼 좁은 문과 협착한 길을 걷는 외로운 선지자의 흉내도 낼수 없는 의지없고 나약한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03/09-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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