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귀신들린 자의 최후는 파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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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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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본문을 읽으면서 이상하게 느낀 점이 있습니까? 있다면 무엇입니까?

해설: 왜 예수님께서 귀신들이 돼지떼에 들어가게 하셔서 돼지떼를 몰사시키셨는지가 이상합니다.

3) 왜 예수님은 돼지떼에 귀신들이 들어가게 하셔서 돼지떼를 죽게 하셨을까요?

해설: 그 이유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사실을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돼지떼에 들어가게 하시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낼 수 없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일부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어떤 교훈이 있을 것입니다. 돼지떼에 귀신이 들어가서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모습은 그것들이 다 물에 빠져 죽는 모습입니다. 굉장한 장면이었을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볼 때 아마도 예수님은 귀신이 들릴 겨우 그 최후가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려고 하신 것 같습니다.

4) 그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왜 그랬을까요?

해설: 예수님께 떠나달라고 부탁합니다. 예수님이 계시다가는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 돼지떼를 잃거나 혹은 다른 피해를 볼까봐 염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5) 예수님의 행동은 그 마을에 유익이 되었습니까 해가 되었습니까?

해설: 예수님의 행동은 두 사람을 회복시켜주시고 동시에 돼지떼를 죽이신 것입니다. 사람을 중시한다면 유익이 된 행동이고 돼지떼를 중시한다면 해가 되는 행동입니다. 다음 질문을 참고하십시오.

6) 마을사람들의 사고방식을 평가해보십시오.

해설: 돼지떼를 사람들의 재산이라고 생각할 때 마을사람들은 자기 재산을 이웃의 생명이나 인격보다 더 소중히 여긴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혹시 환경이나 생태계를 존중하는 현대인들 중에 돼지를 생명체로서 높이 평가하며 돼지나 사람의 가치에 차이를 두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의 행동을 해로 여길지 모르나 성경의 교훈은 사람을 다른 피조물보다 더 귀하게 여깁니다(마 6:26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돼지나 사람의 가치에 차이를 둘 수밖에 없습니다.

cf) 마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7) 귀신들린 두 사람은 인격을 상실한 채 비참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마을사람들은 올바른 가치관을 잃고 재물에 눈이 어두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의 우리에게 이런 모습들이 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해설: 실제로 악령이 들려 인격을 상실한 사람은 본문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러나 악령에 들려 있지 않더라도 사회의 여러 가지 악에 억눌려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도 이와 다소 비슷하고, 혹은 여러 가지 욕심(권력욕, 물질욕, 등)에 미쳐 이웃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인간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자기의 이권만 알고 이웃의 형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은 마을사람들과 비슷합니다.

8) 악령이 들렸거나 혹은 잘못된 가치관에 빠져 사탄의 노예로 살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의 은혜와 뜻 안에 살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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