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성경공부

13. 하나님의 그 사랑이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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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인덕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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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니느웨의 거국적인 회개에 대하여 요나의 반응은 어떠합니까?(1절)

심히 싫어하고 노하였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그대로 직역하면 "그것이 요나에게 악했으니 큰 악이었다"입니다. 요나는 다시 큰 악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요나가 니느웨의 회개에 대하여 단순히 불만스럽게 느낀 정도가 아니라 극렬한 분노의 감정을 나타낸 것으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나가 이토록 분노한 이유는 니느웨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것 외에도 예언자인 자신의 선포가 수포로 돌아가 선민과 예언자라는 특권의식이 손상당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니느웨를 멸망시키는 것보다 자신이 보내신 예언자의 심판 선고를 뒤엎는 쪽을 택하셨습니다.

3) 요나가 첫 번째 소명을 거절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2절)

요나가 진심을 말하는 장면입니다.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알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즉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게 되면 분명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을 것이 때문에 그것이 싫어서 다시스로 도망했다는 것이며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베푸시는 그 사랑이 싫다는 것입니다.

요나의 이러한 성품은 아벨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가인의 죄성을 이어받은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4) 요나가 야훼께 요구하는 사항은 무엇입니까?(3절)

차라리 죽여주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거부하는 요나의 마음 속에는 완전한 어리석음과 자기 파괴적인 격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멸망받아 마땅한 니느웨가 구원받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죽어서 보지 않겠다는 완악한 마음입니다. 요나에게 있어서 니느웨에 대한 적개심은 꺼질 줄 모르는 불길이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려는 이와 비슷한 경우가 엘리야에게도 있었습니다(왕상 19:4). 그러나 엘리야는 힘써 노력했음에도 자신의 사역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데 대한 낙담을 표현했던 반면 요나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데 대한 분노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요나의 이런 분노는 비단 요나 뿐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때때로 피어오르는 지옥의 숨결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요나의 분노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무엇입니까?(4절)

분노의 불길에 사로잡혀 펄펄 뛰는 요나에게 하나님께서는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공격적이거나 비난조로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온화하면서도 단호하게 응답하십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시 15:1) 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분에 못 이겨 날뛰고 있는 요나가 이성을 찾도록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인내심 때문에 우리가 오늘도 살아있는 것입니다.

6) 5절에 나타난 요나의 행동은 어떤 점에서 잘못되었습니까?

요나는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 대신 성에서 나가서 그 성 동편에 초막을 짓고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가 그 모습을 보려 하였습니다. 이러한 행동의 잘못된 점은 첫째 요나가 자신의 사명을 중도에서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향한 사명을 그만 두라는 명령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요나는 그 성에서 '나가' 초막을 짓고 그 아래 안주하였습니다. 또한 자신의 사명을 마무리하는 대신 구경꾼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니느웨의 죄악과 닥쳐올 심판 앞에 방관자로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멸망받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돕는 사명자로 부름을 받았음에도 도무지 그들의 구원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7) 2장에 나타난 요나와 오늘의 본문에 나타난 요나를 비교해 보십시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진심으로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가던 길을 되돌려 하나님께 돌이켰습니다. 니느웨로 가라는 두 번째 명령에 순종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모든 부분에서 완전하게 돌이킨 것은 아니였습니다. 자신의 선교 결과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행하실 모든 일에 진심으로 찬성한 것은 아니였다는 것입니다. 니느웨에 관한 한 자신의 뜻을 끝까지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죄성이 한 번의 회개로 완전히 뿌리뽑히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단 한 번의 회개가 우리의 몸에 죄의 항체를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우리의 몸을 쳐서 복종케해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8)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기도와 '이해할 수 없어서' 드리는 기도와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받아들일 수 없는 기도'는 하나님의 뛰어나신 지혜로 결정하신 일들이 잘못되었다고 항변하는 오만한 기도입니다. 반면에 '이해할 수 없어서' 드리는 기도는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마음의 혼란과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나아와 지혜와 인도와 위로를 구하는 겸손한 기도입니다. 나의 뜻을 하나님 뜻에 맞추려 하지 않고 자신의 견해를 고수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견해와 충돌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경우 요나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항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9) 4장에서는 요나의 신앙이 급격히 후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시적으로는 성령충만 할 수 있으나 그것을 계속적으로 유지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성도가 성령충만하지 않을 때 어느 정도까지 완악해질 수 있는 지 요나의 분노를 보고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의 삶이 항상 성령충만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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