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과 헤롯 아그립바 2세와 바울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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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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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울은 지금 베스도와 아그립바 2세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는데 그 내용은 결국 선교적인 설교입니다. 바울은 이 설교에서 자기가 무엇을 믿는다고 강조합니까?

해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을 특별히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 신앙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줍니다. 동시에 이것은 바울이 공회에서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사이에 분쟁을 일으키기 위해 말한 것과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비록 바울이 그 때는 분쟁을 일으키기 위해 이런 말을 했지만 그것이 거짓말도 아니고 단순히 분쟁만을 위한 것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부활은 복음의 핵심인 것입니다.

2) 바울은 자신이 전에 율법을 철저히 지키던 바리새인으로서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바울의 변호에 어떤 역할을 합니까?

해설: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기독교인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기독교를 반대하던 사람이었으므로 지금 그가 기독교에 대해 내린 판단은 보다 합리적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박해자였던 자신이 변했다는 사실을 통해 기독교가 그만큼 능력이 있는 종교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3) 사도행전에 바울의 회심 사건이 세 번 나오는데 바울 자신이 말하는 게 두 번입니다. 그런데 이 두 번의 말은 서로 조금 다른 내용을 강조하여 새로운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오늘 본문에서 특별한 내용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엇을 보여줍니까? 사도행전 22:3-21과 비교해보십시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줄 저희도 아나이다.”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행 22:3-21)

해설: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라는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이 주인의 채찍에 거역하며 뒷발질하는 모습입니다. 이 말씀은 교회를 핍박하는 것이 주인을 거역하는 말의 행동처럼 잘못된 반역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줍니다. 말이 반항한다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고생만 하다가 결국 주인의 뜻대로 하게 됩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해서 하는 모든 수고는 헛고생일 뿐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4) 베스도는 바울에 대해 뭐라고 합니까? 왜 그랬습니까?

해설: 베스도는 바울이 미쳤다고 합니다. 베스도가 바울을 미쳤다고 한 것은 바울이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함부로 남을 미쳤다고 하는 사람들의 편견을 볼 수 있습니다.

5) 베스도는 특별히 무슨 내용을 듣고 바울이 미쳤다고 합니까?

해설: 부활의 내용입니다. 이것은 부활이 베스도가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음을 암시합니다. 사람은 남들이 믿을 수 없는 내용을 말하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부활은 헬라 철학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스도는 믿지 않고 바울이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6) 베스도는 바울이 어쩌다가 미쳤다고 말합니까? 이것은 무엇을 암시합니까?

해설: 베스도는 바울의 많은 학문이 바울을 미치게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많은 학식을 쌓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총독으로 온지 얼마 되지 않은 베스도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볼 때 바울이 공부를 많이 한 것은 소문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이 이런 학문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쓰시기 위해 이렇게 훈련시키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7) 아그립바는 바울의 말에서 어떤 것을 느꼈습니까? 이에 대한 아그립바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해설: 아그립바는 바울이 자기를 전도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아그립바는 바울이 짧은 말로 자기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려고 한다며 반발합니다. 여기서 아그립바는 자기가 이런 죄수의 말에 의해 설득당하는 것을 싫어했을 것입니다. 그것도 짧은 말에 설득당하는 것을 싫어했을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명예가 있는 석학의 긴 강론을 통해 전도를 받으면 좀더 마음이 편할 텐데 죄수의 몇 마디 말에 전도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느낀 것 같습니다.

8) 이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해설: 말이 짧든지 길든지 모든 사람이 다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만 원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아그립바와 바울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그립바는 인간의 자존심을 중히 여기는데 반해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자존심은 아무것도 아니며 누구든지 예수님만 믿게 되면 좋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9) 심문을 끝내고 아그립바가 바울에 대해 한 말은 무엇입니까? 이 말은 무슨 뜻을 가지고 있을까요?

해설: 아그립바는 베스도에게 만일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하지 않았더라면 놓을 수 있을 뻔하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전혀 로마에 반역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음을 알려줍니다. 선교에 큰 도움이 되는 표현입니다.

10)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그러나 베스도는 믿지 않고 오히려 바울을 미쳤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부활을 얼마나 확고하게 믿고 있습니까?

해설: 현대인들은 부활을 잘 믿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학적인 사고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학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이나 거기서 유추되는 것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보다 크신 하나님의 행동은 과학의 테두리 안에 들어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으려면 과학 이상의 것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11) 우리는 설교를 들을 때 설교자나 설교의 외적인 모습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까?

해설: 우리가 설교자의 인간적인 경력이나 지위, 혹은 그 설교가 어느 예배의 설교였느냐에 따라 말씀을 듣는 자세가 달라진다면 외형에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올바른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말씀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권위보다 인간적인 모습을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2) 바울은 학문이 깊기로 소문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어떤 소문이 났습니까? 우리도 주님이 쓰시기에 적합하도록 자신을 훈련시켜야 할 것입니다. 학문도 좋고 여러 가지 기술을 익히는 것도 좋습니다. 그것이 선교에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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