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과 박해 속에 선교하는 사도들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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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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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사도가 이고니온에 가서 복음을 전하니 어떤 현상이 일어났습니까?

해설: 많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선동하여 믿는 자들에게 악감을 품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그 성 사람들은 사도들을 따르는 사람과 불신 유대인들을 따르는 사람으로 나뉘게 됩니다. 이렇게 복음이 전파되면 사람들이 나뉘는 것은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2:51-53에서 예언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악의 세력과 나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따르고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눅 12:51-53)

2) 이고니온에서 사도들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관원들과 함께 사도들을 돌로 치려고 하자 사도들은 어떻게 합니까?

해설: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교로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이것은 위험이 닥칠 때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것을 전에 예루살렘에 박해가 있을 때 성도들이 피한 것이나 바울이 위험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간 모습에서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단, 위험을 피하기 위해 믿음을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키기 위해 피할 수 없을 때는 위험이나 박해를 맞이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피할 수 있을 때는 위험을 피하여 사역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3)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지체장애인을 고쳐줍니다. 지체장애인에게 무엇이 있었다고 강조되어 있습니까?

해설: 믿음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사도의 능력으로 장애인이 치유 받은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치유 받은 것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현실화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4) 지체장애인을 고치자 루스드라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해설: 바울과 바나바를 신이 인간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하며 그들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이것은 이들이 잘못된 신관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들이 진리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기적을 보자 금방 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진리에 서지 못한 모습은 유대인이 선동하자 금방 바울과 바나바를 죽이려고 한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5) 자기들을 신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두 사도는 어떻게 행동합니까?

해설: 철저하게 자기들은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것은 아주 모범적인 행동입니다. 인간의 명예욕을 따르자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서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의 무지를 이용하여 악하게 영화를 누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하나님께 큰 죄를 짓게 됩니다. 이런 모습은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갔을 때 고넬료가 자기에게 절하는 것을 말린 모습과 유사합니다(행 10:25-26). 반면에 이것은 아그립바 1세가 신으로 추앙될 때 마치 자기가 신인 것처럼 방자하게 굴다가 죽은 모습과 대조됩니다(행 12:21-23).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행 10:25-26)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행 12:21-23)

6) 얼마 후에 유대인들이 안디옥으로부터 와서 무리를 선동하자 무리가 바울에게 어떻게 합니까?

해설: 바울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합니다. 실제로 그들은 돌로 쳐서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성밖으로 내다 버립니다. 이것은 진리에 서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신이라고 했던 사람을 이번에는 돌로 쳐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지도자는 무리의 무지를 이용하여 존경받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무리는 언제 지도자를 돌로 칠지 모릅니다. 오히려 어렵더라도 진리를 가르쳐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고 바르게 지도자의 인도를 받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쉽게 마음대로 하려고 무리의 무지를 이용하면 더 위험해집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이 진리를 알고 바울을 바로 대했다면 선동에도 흔들리지 않고 바울을 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진리에 서지 못했기에 이런 극단적인 실수를 두 번이나 하는 것입니다.

7) 바울은 살아나서 루스드라를 떠났다가 다시 루스드라로 돌아와 복음을 전합니다. 여기서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해설: 얼마 전에 죽임을 당할 뻔한 곳으로 다시 가서 복음을 전한 것은 대단한 용기입니다. 동시에 아주 위험하면 피했던 모습을 볼 때 지금은 전의 위험은 어느 정도 가라앉은 것 같습니다. 위급한 경우에는 피하지만 어떻게든지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하여 다시 전도하는 귀한 모습을 배울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것은 자기가 전도한 사람들의 신앙생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도우려고 하는 바울의 목회적 열정도 보여줍니다.

8) 루스드라, 이고니온, 안디옥(비시디아의 안디옥)의 성도들에게 바울은 무슨 말로 권면합니까?

해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당신을 따르려면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과 통합니다. 박해시기에 믿음을 지키려면 고난을 겪어야 합니다. 그러나 박해시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려면 마음을 굳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9) 바울과 바나바는 그곳을 떠날 때 무엇을 하고 떠납니까?

해설: 각 교회에 장로들을 세우고 떠납니다. 이것은 교회의 조직을 갖추었음을 의미합니다. 사도들이 떠난 후에 교회가 제대로 사역하기 위해서는 이런 지도자와 조직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제 교회들은 이런 지도자의 도움을 받아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10) 두 사도는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가서 무엇을 합니까? 이것은 무엇을 가르쳐줍니까?

해설: 수리아의 안디옥 교회는 두 사도가 파송을 받은 교회입니다. 두 사도는 모교회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들은 온 교회를 모아 보고를 합니다. 이 모습은 교회가 두 사도의 선교사역에 관심이 있었음을 의미하며 동시에 두 사도가 교회를 존중한 것을 의미합니다.

11) 우리는 진리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왜곡된 신앙관으로 조급하게 남을 판단한 적이 없습니까?

해설: 누구나 이럴 위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의 행동을 볼 때 조급하게 판단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특히 그에게 큰 해가 될 판단인 경우에는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판단은 항상 개인적인 것이고 그것은 잘못된 판단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2)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때 ‘내’가 정말 그런 칭찬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며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립니까? 모든 일에 겸손히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13)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신앙인이 되고 그것을 통해 더욱 힘차게 선교할 수 있기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14)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 중에 어떤 일이 박해받을 일인지 생각해보십시오. 바른 신앙생활과 선교에는 박해가 따르기 쉽습니다. 박해를 각오하고 그 일을 할 수 있기 위해 기도합시다.

15) 하나님은 교회에 지도자를 세우십니다. ‘나’는 교회의 지도자를 얼마나 존중합니까? 지도자에 대한 바른 자세를 생각해보십시오.

해설: 지도자는 하나님이 교회의 유익을 위해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공식적으로 교회의 사역을 할 때는 높여주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도자가 개인적인 사역을 할 때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 대해주면 됩니다. 이 때는 공식적인 하나님의 종으로 대우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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