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과 부끄러운 일과 자랑스러운 일

작성자 정보

  • 오덕호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오래 전에 영국에서 큰 돈을 습득하여 주인에게 전해준 사람이 많은 전화와 편지를 받았는데 그 중 90%가 “너는 바보다.”라는 내용이었다. 불의한 이득을 포기했는데 욕을 먹은 것이다. 반면에 많은 사람이 불법으로 이득 얻은 것을 자랑한다.(학생은 부정행위, 운전자는 과속, 등) 세상의 윤리를 지켜도 욕을 먹는다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히 고난을 받는다.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마 5:30)는 말씀도 악을 버리면 얼마나 큰 고통이 오는지를 암시한다.

여기에는 최소한 세 가지 고통이 따른다. 1) 손을 찍을 때의 고통이다. 담배를 끊는 것 자체가 힘들다.(아버지의 흡연으로 아들이 불치의 병에 걸려도 담배 끊기가 어렵다) 과속이나 부정행위를 중지하는 것도 힘들다. 이런 것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을지 염려가 되어 결단을 망설이게 된다. 2) 손 없이 사는 게 불편하다. 과속에 익숙한 사람이 규정 속도를 지키려면 답답하다. 뇌물로 해결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 그것 없이 살려면 불편하다. 3) 조롱과 비방을 받게 된다. 비정상이거나 무능하다고 낙인찍힌다. 그래서 소외당하게 되는 것이다.

본문이 기록될 당시에 성도들이 당한 대표적인 고난이 사회의 조롱과 비방이었다.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의 악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조롱과 비방이 얼마나 무서운지 본문은 불시험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불시험은 무서운 시험이라는 뜻만 있는 게 아니라 불로 연단하는 것 같이 우리를 강인하게 만들어주는 축복의 훈련이라는 뜻도 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14) 그래서 성도들은 이런 고난을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4:13a)

운동경기에서 상대팀 응원단이 가장 많이 야유하는 사람은 상대팀에서 잘하는 선수인가, 못하는 선수인가? 잘하는 선수이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조롱과 비방을 많이 받는 사람도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비방과 조롱 속에서 기뻐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악행으로 비방을 받아서는 안 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벧전 4:15) 우리가 받는 비난은 믿음 때문에 받는 것이어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벧전 4:16)

한국교회는 어떤가? 진리의 교리 때문에 비난받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며 당당하게 진리를 지켜야 한다. 진리는 다수결이 아니다. 인기투표도 아니고 여론조사도 아니다. 성령님의 감동을 받지 못한 사람은 진리를 거부한다. 그래서 불신자들은 진리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복음의 진리를 비방하는 말 때문에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a)

그러나 한국교회가 악행 때문에 비난받는 경우도 많다. 사회의 악행에 성도들이 연루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성도들의 일반적인 악행에 대해서는 쉽게 생각해볼 수 있으므로 오늘은 악행 중에 ‘남의 일을 간섭하는’ 모습을 좀더 살펴본다. 전도를 해보면 교회 다니다가 상처를 받아서 안 다니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특별히 강하게 전도를 거부한다. 이런 사람들이 어디서 가장 상처를 많이 받았을까? 기존교인들이 쓸데없는 말 때문이다.

남의 일에 간섭한다는 것은 자격도 없으면서 감독하려고 한다는 뜻이다. 한 성도가 실수를 하면 그것을 감독하고 심판하실 분은 하나님이시다. 다른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2) 여전히 그를 내 형제자매로 받아들이면서 잘못을 고치도록 권해야 한다. 이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지극히 조심해야 한다. 반면에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다른 사람 앞에서 그 성도를 비방하는 것이다. 비방이 아니라도 덮어줘야 할 것을 드러내어 말하면 쓸데없는 간섭이 된다.(걱정해주는 척하며, 기도해주자고 하며 남의 치부를 말하는 모습) 교회에 이런 모습이 특히 많다고 한다.(다른 성도가 나의 은밀한 문제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옮긴 사람)

교회적으로 사회의 구체적인 정에 간섭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교회는 사회의 정의를 무너뜨리는 모습에 대해서는 경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의 효율성에 대해서는 성도들 사이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 마치 어떤 것이 신앙의 절대가치를 지닌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개인의 의견으로 말하는 것은 좋으나 교회의 이름으로 말할 때는 신앙의 확고한 가치만 주장하는 게 바람직하다.(환경, 생태계, 교육방법, 등)

끝으로 베드로는 격려와 경고의 말씀을 준다.(17-18절) 이 말씀은 믿는 자들에게 이런 고난을 통해 구원이 온다면 믿지 않는 자들이 멸망당할 때는 얼마나 큰 고통을 받겠느냐는 것이다. 이 말씀은 두 가지로 우리를 격려한다. 1) 믿는 자들이 결코 쉽게 구원을 성취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생활에 고난이 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고난을 극복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2) 불신자는 더 큰 고통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지금 불신자의 길이 편해 보여도 절대 그들을 따르면 안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구원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하며 구원의 성취를 소망해야 하는 것이다.

토의문제

1. 오늘 말씀에서 내가 느낀 점을 자유롭게 나누십시오.
2. 세상에서 악행을 통해 이익 얻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혹시 교회 안에서도 보신 적이 있습니까?
3. 나는 교회에서 남의 일에 간섭하는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4. 현재 우리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교회의 이름으로 말한다면 어떤 내용의 말을 하는 게 좋겠습니까?(쇠고기파동, 촛불집회, 정치권 인사문제, 등)
5. 우리가 악행으로 비난받지는 말고 참된 믿음으로 비난받을 때는 담대히 이겨내며 신앙생활을 잘하도록, 교회와 나라를 위해, 조원들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
Total 102 / 1 Page
번호
제목
이름

성경공부


최근글


새댓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