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과 직장생활도 신앙의 척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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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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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우리에게 구원과 축복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1) 성경을 읽어야 한다. 음식을 먹어야 몸에 유익한 것과 같다. 2) 성경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한다. 오해하면 모르는 것만 못하다. 이단을 보라. 불신자보다 복음을 더 강하게 거부하지 않는가? 3) 성경의 의미를 바로 적용해야 한다.(성도들이 서로를 향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네 이웃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성경을 바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알아야 한다. 1) 그 말씀을 누가 했는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하셨다. 이 말씀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처럼 제삼자이면서 가르치는 입장의 사람이 해야 한다. 2) 그 말씀을 누구에게 했는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피해자에게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을 가해자가 자기보호의 구실로 삼으려고 이용해서는 안 된다.(교회에 오는 도둑들의 생각?)

오늘 본문도 이것을 잘 이해하며 읽어야 한다. 본문은 근로자와 사용자 중에 누구에게 주신 말씀인가? 근로자이다.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이 말씀대로 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19절) 사실 오늘 본문은 사환에게 주신 말씀인데 사환은 당시에 집안일을 보던 노예를 의미한다.

당시의 노예들 중에 주인보다 학식이나 능력이 뛰어난 자들이 많았다. 특히 그리스인들은 학식과 상업능력이 뛰어났는데 이들이 로마에 패해 노예가 된 경우가 많았다. 이런 노예들 중에는 능력에 따라 주인으로부터 수당을 받아 자기 재산을 불리고 그 돈으로 몸값을 지불하고 자유를 얻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이들이 사보타주를 하는 경우까지 있었다.(사보타주: 맡은 일을 하는 척하면서 제대로 하지 않아 능률을 떨어뜨리거나 심지어 기구들을 망가뜨리는 행위) 그러나 여전히 노예이기 때문에 주인의 모멸이나 박해를 당할 위험이 있었다.

본문은 이런 사람들에게 주신 교훈이다. 내용은 주인의 말을 잘 듣고 열심히 일하라는 것이다. 선한 주인에게만이 아니라 악한 주인에게도 잘하라는 것이다. 억울하게 고난을 당할 때까지도 화내거나 저주하거나 사보타주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일을 잘 하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모든 제도를 지키라는 지난 주의 교훈과도 잘 통한다.

그러나 이 말씀에는 두 가지 난해한 모습이 있다. 1) 노예제도를 인정하라는 것인가? 실제로 미국의 노예시대에 다음 말씀이 노예주를 위해 오용되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 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골 3:22) 하지만 이 말씀은 노예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면 주인에게는 어떤 말씀을 주시는가?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골 4:1) 성도들은 노예로 취급하지 말고 형제로 취급하라고 한다. “이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몬 1:16) 실제로 초대교회에서는 이렇게 했다.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딤전 6:2)

그런데 노예제도는 왜 파괴하지 않았는가? 당시 상황에 적합한 선교를 위해서 그랬을 것이다. “무릇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딤전 6:1) 이것은 예수님이 일시적으로 이방인 선교를 금하고 여인에게 사도의 직분을 주지 않으신 것과 같다.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 10:5-6)

이것이 성경적인 개혁의 중요한 원리이다. 우리는 잘못된 제도를 고쳐야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원칙적으로 사랑과 희생이 투쟁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누룩이 반죽을 부풀리는 것 같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악한 사회에 들어가 속에서부터 조용히 변화시키는 것이지 외적인 폭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요시야의 종교개혁은 내적 변화 없는 제도적 변화여서 실패/ 전도와 헌금은 어떻게 하는가?)

2) 악한 주인에게 순종하면 정의는 어떻게 되는가? 악한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은 악한 명령을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악한 사람도 사랑과 온유로 대하라는 것이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외편도 돌려대라는 말씀과 같은 뜻이다.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갚으며 하나님의 정의에 맡기라는 뜻이다. 선을 행하고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문자적으로 ‘은혜’) 일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칭찬과 은혜를 받는 길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의인의 고난을 당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본을 따라야 한다.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21절) 아울러 예수님의 고난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고 바르게 살게 되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24절) 나음을 입었다는 말씀은 의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의롭게 살아야 하고, 아울러 우리가 이렇게 살면 예수님의 경우처럼 우리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의롭게 살아 사회에 정의가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토의문제

1. 오늘 말씀에서 내가 느낀 점을 자유롭게 나누십시오.
2. 지금 우리나라의 노사문제에 대한 나의 평가와 바람직한 모습을 말씀해주십시오.
3. 지금 우리사회에서 꼭 고치고 싶은 모습을 몇 가지 말씀해주십시오. 이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한국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4. 내가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몇 가지 말씀해주십시오.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겠습니까?
5. 우리가 직장과 사회에서 주님의 뜻을 따르며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하도록, 우리교회와 나라를 위해, 조원들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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