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과 주기도의 네 번째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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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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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문: 주기도의 네 번째 기원에서 우리는 무엇을 구합니까?


답: 주기도의 네 번째 기원, 즉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구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이생의 좋은 것들 중에서 충족한 분깃을 받고 그것과 함께 주님의 축복을 누리게 해주시기를 구합니다.(잠 30:8; 민 6:22-2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 6:22-27)


1.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두 가지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에 대한 지식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고 거룩하며 사랑이 많은 분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얼마나 추하고 연약한 존재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이 둘 중에 하나만 알아서는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키가 210cm의 거인을 봐도 내가 보통 사람일 때 그가 거인으로 보이는 것이지 나도 200cm 정도 되면 그 사람이 별로 거인으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와 비교도 될 수 없이 위대한 분이지만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모르고 자신을 과대평가하면 하나님의 위대함을 잘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비천한 모습을 바로 알 때 하나님의 위대하심도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의 모습을 바로 알아야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2. 주기도의 첫 세 간구는 하나님 중심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또한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장 사모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기도를 드리려면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당연히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물론 인간의 부족함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인간의 연약함을 알아야 주기도의 첫 세 간구를 바로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인간의 부족함을 알면 또 어떤 기도를 드리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은혜와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을 부탁하는 간구를 드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드린 후에 우리에게 도움을 달라는 기도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 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기도에서 처음 세 간구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고 다음의 간구들이 우리를 도와달라는 부탁인 것은 당연한 모습입니다.


3. 우리를 위한 간구 중에 첫 번째로 나오는 것은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간구입니다. 우리를 위한 간구 중에 첫 번째 것이 영적인 것이 아니라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이라는 사실은 좀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를 가르쳐주신 것은 그만큼 육적인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이고 또한 이것의 중요성을 아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간구가 알려주는 것을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육적인 문제까지도 관심을 가시고 돌봐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전인적으로 사랑하십니다. 영적으로만 사랑하시고 육적으로는 관심이 없으신 게 아닙니다. 육적인 문제도 아주 중요한 문제로 보시고 관심을 가져주십니다. 사실 육적인 문제에 어려움이 생기면 영적인 문제도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흘 굶어서 도둑질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육적인 문제를 도우시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영적인 유익도 주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렇다면 우리도 이웃을 대할 때 그 인생의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지며 그를 사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영혼구원에만 관심을 가지고 복음만 전하는 게 아니라 그의 육적인 삶에도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는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유익이 되기도 하고 바르게 살도록 도울 수도 있어 영적인 도움도 주게 됩니다.


셋째, 우리는 영혼만이 아니라 육적인 것이나 물질적인 것으로도 주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거나 먹으면서도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술이나 마약은 물론이고 사치스러운 식생활도 주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합니다. 또 이웃에게 시험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먹는 문제를 조심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넷째, 우리는 일용할 양식, 즉 빵 한 조각도 받을 자격이 없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 기도하여 주님이 은혜로 주시는 것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풍요로운 세상에 살기 때문에 우리가 어느 정도 이상의 수준으로 살 자격은 있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 기도를 제대로 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감사가 아니라 불평을 하기 쉽습니다. 이것은 진리를 몰라서 저지르는 잘못입니다.


다섯째, 항상 주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일용할 양식이란 매일의 몫입니다. 그래서 이 기도는 우리가 끊임없이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특히, 빵 한 조각도 주님의 도움 속에 얻는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삶의 모든 분야를 주님의 은혜에 의지하며 참 신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실 자연재해를 당했을 때 정말 빵 한 조각 물 한 모금을 얻지 못해 고생하는 사람들이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에서도 있지 않았습니까?(미국에서 태풍 피해 때 있었던 일을 말합니다.)


여섯째, 한 끼의 식사에도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늘 먹는 음식, 심지어 지겹다고 짜증내는 음식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정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곱째, 물질적인 욕심을 극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물질적인 축복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없이 많은 양식을 구하는 게 아니라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은 물질적인 욕심을 버리고 적절한 것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간구는 우리가 물질에 매달려 사는 게 아니라 감사와 만족으로 살 수 있도록 이끌어줍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8)


4. 우리가 기도에 대해 조심해야 할 것 중에 하나는 기도를 내 소원을 이루는 도구로 쓰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주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달라고 간구하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러는 것인지 하나님은 안중에 없고 자기의 욕심만 채우기 위해서 그러는 것인지 구별해야 합니다. 만일 후자라면 잘못된 기도입니다.


많은 사람이 기도에서 자기의 욕심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졌다고 자랑합니다. 성경에 비춰볼 때 인간의 욕심이 성취된 것은 기도의 응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욕심으로 구하는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3) 그러면 욕심의 성취는 무엇입니까? 악한 방법으로 그것을 얻도록 하나님이 버려두신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악인들이 죄를 지으며 우상에게 자기의 소원을 비는데도 성취되는 것은 하나님이 악한 세상에서 잠시 그렇게 되도록 버려두셨기 때문인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도 욕심의 기도가 응답된 사람들은 자기가 기도의 능력이 있는 것처럼 교만한 자세로 살아갑니다. 극히 잘못된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기중심으로 기도하며 그것이 이루어졌다고 자랑하거나 영적으로 교만해져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겸손하게 주님의 영광을 추구하며 작은 것 하나라도 우리는 받을 자격이 없지만 주님께서 은혜로 허락해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받으면 감사하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5.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적인 축복도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적인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축복은 그에 적합한 사명과 함께 주어집니다. 그래서 그 축복을 잘 사용함으로써 진정한 축복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물질의 축복에 맞는 사명은 무엇일까요?


물질의 축복은 소유와 소비로 나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소유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내가 맡아서 운용한다는 마음으로 사용하는 재물입니다. 소비는 나를 위해 사용하도록 허락하신 것으로 생각하여 나와 가족을 위해 사용하는 재물입니다. 이렇게 나눌 때 소유가 많은 것은 달란트가 많은 것이므로 축복으로 생각하며 잘 운용해야 합니다. 여기서 소유는 집이나 자동차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런 것은 소비입니다. 소유는 농부의 땅이나, 기업주의 공장 같은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것은 많아도 됩니다. 그러나 소비가 많은 것은 사치스러운 삶이므로 많으면 안 됩니다. 


물론 소유가 많아도 우리가 하나님 대신 그 소유를 의지하거나 사랑할 위험이 있어 몹시 위험합니다. 그러나 바른 마음으로 관리하면 그것은 큰 축복입니다. 하지만 소비가 많은 것은 일시적인 특별 잔치가 아닌 한 몹시 조심해야 합니다. 재물의 축복을 받고도 소비를 적게 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6. 네 번째 기원은 나에게만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 중에 양식이 부족한 사람을 위해서 우리가 많이 받은 양식을 나눠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치스러운 소비생활을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성숙은 사랑으로 나타나며 사랑은 신자다운 인품으로도 나타나고 사치를 피하는 모습으로도 나타납니다. 앞에서 육적인 축복이 영적인 시험거리를 피하게 해준다고 했는데 육적인 축복이 많아지면 오히려 영적인 시험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네 번째 기원을 바로 이해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토의문제


1. 나의 기도에는 영적인 문제와 육적인 문제 중에 어느 것이 더 많습니까? 영적인 기도 중에 대표적인 것과 육적인 기도 중에 대표적인 것을 하나씩 말씀해주시겠습니까?


2. 나는 내가 전도하고자 하는 이웃의 육적인 문제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3. 나는 주기도를 드릴 때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까? 특히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기도를 얼마나 간절히 드립니까? 오늘과 내일과 모레 먹을 양식이 집에 있으므로 별다른 간절함이 없지는 않습니까? 내가 이 기도에서 구체적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 취업, 사업체의 안정과 발전, 건강, 인류의 복지 등.


4. 내가 가장 절실히 감사하며 식사기도를 한 경험을 말씀해주십시오. 지금은 식사기도 때 얼마나 간절히 감사합니까? 혹시 식사기도를 두 번 한 적은 없습니까? 이게 간절한 감사기도라고 볼 수 있을까요?


5.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를 드릴 때 내가 생각하는 우리는 누구입니까? 이 기도를 다시 생각하며 이웃에 대한 바른 자세를 말씀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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