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과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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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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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문: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지도하시기 위해 어떤 법칙을 주셨습니까?


답: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우리의 기도를 지도하는 데 유용하지만 기도를 지도하기 위한 특별한 법칙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의 양식으로 보통 ‘주기도문’이라고 부릅니다.(요일 5:14; 마 6:9)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


1. 예수님이 주기도문(혹은 주기도)을 가르쳐주실 때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이 기도문대로 기도하라는 뜻입니까, 아니면 이 기도의 양식을 모범으로 삼아 기도하라는 뜻입니까? 예수님은 주기도를 가르쳐주시기 직전에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즉, 의미 없이 형식적인 말만 반복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기도는 그대로 반복하라고 가르쳐주신 것이라기보다 이것을 모범으로 하여 올바른 기도를 드리라고 가르쳐주신 것일 것입니다.


이것은 주기도가 누가복음 11:2-4에서는 마태복음 6:9-13과 조금 내용이 다르다는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이 서로 다른 주기도를 소개하고 있는 것은 초대교회 시절에 주기도가 이미 교회마다 조금 다르게 전달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된 것은 초대교회가 주기도를 문자 그대로 따라하는 게 아니라 주기도에서 기도의 모범을 배워 바르게 기도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기도를 그대로 드리느라고 외우다시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물론 주기도를 그대로 드리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다만 행여라도 우리가 무의미하게 주기도를 외우기만 하고 진심의 기도를 드리지 못하거나 주기도만 외우면 된다고 생각하며 미신적으로 기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 그러면 주기도가 가르쳐주는 기도는 어떤 것입니까? 우선 하나님 중심의 기도입니다. 우리의 참 신앙이 하나님 중심이고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이 전 생활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듯이 참 기도도 하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주기도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먼저 나오고 다음에 인간에 대한 관심이 나옵니다. 이런 모습은 십계명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십계명도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생활을 먼저 가르치고 다음에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가르칩니다.


물론 인간에 대한 내용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인간 중심으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내용이 하나님 중심입니다. 인간의 행복을 간구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고 인간의 용서를 간구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주기도나 십계명에 인간에 대한 관심도 나오는데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 다음에 나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이 기도가 인간의 본성을 따르는 기도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급하면 기도가 나옵니다. 그래서 “참호에는 무신론자가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도는 다 자기를 위한 기도입니다.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기도는 자신을 앞세우고 자기의 안위와 만족을 위해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입니다. 그러니까 주기도는 우리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찾아 기도하는 모습과 다른 기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생각대로 기도하지 말고 주기도의 모범을 따라 기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생각대로 하면 잘못된 기도를 드릴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타락한 후에 이렇게 잘못된 기도를 드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후에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후에 하나님을 피해 숨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럴 때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신자들도 언제든지 이기적인 기도를 드릴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른 기도를 드리기 위해 부단히 바른 기도의 모범을 생각하며 지각과 열정과 의지를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기도를 하면 몹시 피곤해지고 진이 빠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분들은 흔히 기도의 빚이 가장 큰 빚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기도의 힘이 크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그만큼 기도가 사랑과 힘을 쏟는 것이기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3. 주기도는 언어가 소박합니다. 추상적이거나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중언부언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특별한 칭호를 가지고 상대방을 움직이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도 있습니다. 미신적인 사람들은 신을 부를 때 적절한 칭호를 붙여줘야 응답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점점 더 여러 가지 명예로운 칭호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천지를 창조하시고 세상을 주관하시며 머리에는 존귀와 영광의 관을 쓰시고 손에는 권능과 거룩함의 홀을 드신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 이런 식으로 경칭을 붙이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과 경외심으로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래야 응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게 아니라 사탕발림으로 하나님을 움직이려고 하는 무례한 자세입니다. 자기의 기도를 믿는 율법주의적인 자세입니다.


4. 주기도는 간결합니다. 어린이도 쉽게 배우고 외울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말을 많이 해야 들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진심으로 주님께 아뢰는 것이라면 기도의 길이에 관계없이 들으십니다. 또 무슨 내용의 기도인지도 다 아십니다. 심지어 주님은 기도하기 전에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이런 생각은 불신자들이 가지는 생각입니다.


5. 주기도는 중요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와 뜻을 위한 기도도 포함하고 있지만 우리 자신을 위한 중요한 기도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필요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죄의 용서, 이웃과의 화목, 바른 삶 등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기도할 때 포함해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를 잘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기도해도 자기의 이기적인 목적만을 위해 기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특별한 형편에서는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항상 그렇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주기도가 가르쳐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 우리의 삶, 이웃과의 화목, 영적인 은혜 등을 다 포함하는 균형 잡힌 기도여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십계명이 중요한 교훈을 다 포함하는 것 같이 주기도도 중요한 기도를 다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기도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주기도를 기도드리는 마음이 아니라 그냥 외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율법주의적이고 미신적인 자세인 것처럼 무조건 주기도의 양식대로만 하면 된다거나 주기도처럼 짧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역시 율법주의적이고 미신적인 자세라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주기도가 짧은 말을 이용하여 포괄적으로 기도한다고 해서 구체적으로 기도하며 길어진 기도는 나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올바른 기도의 정신을 이해하고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제 길이가 긴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6. 주기도는 정말 사람 앞에 보이려는 의도가 없는 기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기도와 같은 기도가 남들 보기에 무엇이 대단해 보이겠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기도가 사람들이 높여주지 않는 기도여도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하는 기도라면 그 기도가 말로는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다만 공적인 기도는 다른 사람이 알아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공기도를 혼자 탄식하는 것처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방언의 기도가 좋은 기도지만 공기도로는 부적당한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공기도라고 해도 허식과 사람에게 보이려는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라면 기도한 사람에게는 아무 은혜도 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그 기도에 동참한 청중에게는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토의문제


1. ‘나’의 기도를 한번 되돌아보십시오. ‘나’의 기도에 나오는 모든 간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까? 예를 들어 설명해주십시오.


2. ‘나’의 기도에서 하나님에 대한 기도와 나와 이웃에 대한 기도가 각각 차지하는 비율을 말씀해주십시오. 여기서 나와 이웃에 대한 기도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라고 해도 직접적으로 이웃을 대상으로 하는 기도면 이웃에 대한 기도로 보십시오.


3. ‘나’는 중언부언의 기도를 많이 드리는 편입니까, 별로 그렇지 않습니까? 뜻 없이 반복하는 기도,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미사여구를 남발하는 기도, 길어야 응답되는 것처럼 길게만 하려고 하는 기도가 중언부언의 기도입니다.


4. ‘나’는 기도를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적이 있었습니까? 언제 그랬습니까?


5. ‘내’ 기도는 중요한 내용을 다 포괄하는 편입니까, 대체로 한쪽으로 치우치는 편입니까? 치우친다면 어떤 내용에 치우칩니까?


6. 기도를 해야 하는데 기도가 되지 않아 애를 태운 적이 있습니까? 언제 그랬습니까? 왜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까? 기도가 되지 않아 어떻게 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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