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과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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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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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문: 세례가 무엇입니까?

답: 세례는 물을 가지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씻는 성례인데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임 되는 것과 은혜 계약의 여러 가지 유익에 참여하는 것과 주님의 사람이 되기로 약속하는 것을 의미하며 인치는 것입니다.(마 28:19; 갈 3:27; 롬 6:4)


제95문: 세례는 어떤 사람에게 베푸는 것입니까?

답: 세례는 교회 밖에 있는 자들에게는 베풀지 않으며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그에게 복종하겠다는 고백을 할 때 비로소 베풀게 되며 입교한 자의 자녀들에게도 베풀게 되어 있습니다.(마 28:19; 행 2:3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4)


1. 세례는 물로 씻는 예식인데 그 시행방법에 있어 침례를 하는 경우와 물을 뿌리거나 붓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먼저 생각해보겠습니다. 침례교회에서는 몸을 완전히 물에 잠그는 것(침례)이 세례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침례는 성경에 나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마 3:16) 이 말씀은 침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침례도 세례의 한 방법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성경에 나타난 세례가 반드시 침례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바울은 모세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 모습은 구름 아래 있고 바다를 통과한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1-2)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보여준 모습은 물에 잠긴 것이 아닙니다. 만일 바울이 세례식은 철저히 침례여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이런 표현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의 세례는 우리에게 부어지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 1:5)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 성령님의 세례가 부어지는 것이라면 물세례도 물을 부음으로 이루어지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41에서 3,000명의 사람이 세례를 받았는데 이들이 다 침례를 받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6:31에서 한 밤중에 간수의 식구들이 모두 세례를 받은 사건도 비슷합니다. 더욱이 세례는 물로 씻는 예식이지만 그 물이 실제로 죄를 씻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시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세례식에서 온 몸을 잠그는 게 필수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2. 유아세례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유아는 자신이 공적으로 신앙고백을 하지 못합니다. 이것 때문에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침례교회). 우리는 두 가지 이유로 유아세례가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세례와 할례의 유사성에서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은혜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가 되고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인해 복을 받을 것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 12:3) 그리고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 메시야가 태어날 것입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그러니까 아브라함에게 주신 은혜의 약속 안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을 확증하는 표시로 할례라는 예식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메시야에 대한 약속 포함)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예식은 할례입니다.


반면에 신약에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은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그런데 신약에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 얻은 것을 확증해주는 예식이 세례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는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고 아브라함이 받은 할례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할례와 세례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만 구약에서는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을 믿고 할례를 받았다면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예수님이 세우신 구원의 약속을 믿고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할례와 세례의 유사성은 다음 말씀에도 잘 나타납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1-12)


할례는 하나님 백성의 아들인 경우 난지 8일 만에 받습니다. 물론 이방인이 개종한 경우에는 성인도 받지만 대부분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할례를 받으므로 할례는 아기 때 받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린이들을 부모의 믿음에 포함시키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면 성경에 유아세례를 베풀라는 명령이 없어도 신자의 자녀라면 유아세례를 받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성경에서 세례를 베푼 모습에는 아이들도 포함되어있음에 틀림없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행 16:33-34) 여기서 간수의 권속이 다 세례를 받았고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표현은 그 집안의 어린이도 세례를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신자의 자녀가 거룩하다는 표현을 통해 신자의 자녀는 성도임을 가르쳐줍니다.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고전 7:14) 자녀가 성도라면 세례 받을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유아세례가 정당하고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아세례는 어린이가 부모님의 신앙고백을 통해 어렸을 때부터 주님의 은혜 속에 자라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해줍니다. 다만, 자기가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자기의 신앙고백으로 이것을 받아들이고 교회 앞에서 입교식을 합니다. 이때 세례는 베풀지 않고 그가 교회에서 세례교인의 의무와 권리를 가질 수 있게 해줍니다.


3. 이런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례의 의미입니다. 세례는 죄 씻음을 받고 의롭다고 인정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보여주는 표입니다. 전에 배운 대로 구원의 단계는 효력 있는 부르심, 회심, 칭의, 양자, 성화, 영화인데 이 중에 첫 네 단계는 동시에 일어납니다. 세례는 우선 이것을 보여주는 표입니다. 세례는 죄 씻음의 표시지만 단순히 죄만 용서해주는 표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표시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성화의 삶을 삽니다.


또 세례는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보여주며 앞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존재가 되었다는 표시입니다. 이것은 성화와 영화까지 보여줍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 6:3-5)


4. 세례는 인치심입니다. 세례는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역사를 인쳐주시는 것입니다. 성인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자기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게 됩니다. 또 자기가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며 하나님이 구원해주신 은혜를 확신하게 됩니다. 그래서 세례로 인침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 잘 받게 됩니다.


어린이가 자신의 신앙고백을 하지 못하고 부모의 신앙고백으로 세례를 받아도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가 그 어린이에게 인쳐집니다. 그래서 어린이가 자라면서 자기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는 것을 더 쉽게 확신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도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래서 유아세례를 받은 어린이는 자라면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감동과 역사를 힘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가 표시해주는 하나님의 내적 은혜가 세례를 통해 사람에게 끼쳐지는 것입니다. 단 이 효력은 세례 순간에 제한되어 나타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믿은 후에 세례를 받기 때문에 이 은혜가 세례 전에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세례가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인쳐주는 것이므로 세례 후에도 계속해서 세례의 축복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토의문제


1. ‘나’는 세례를 받을 때 물을 얼마나 많이 느꼈습니까? 또 물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까?


2. 유아세례를 받는 것과 자신이 장성하여 세례를 받는 것의 장점과 단점을 생각해보십시오. 빨리 인침을 받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 감각적인 느낌을 받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


3. ‘나’는 세례교인이라는 말에서 어떤 느낌을 받습니까? 초신자, 아직 직분도 없는 자,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 죄 씻음을 받은 자, 죄에 대해 죽은 자,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 광주서석교회에 소속된 자, 등. 이 중에 내가 실제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4. 세례를 받으려면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양적인 정도를 숫자로 표시하거나 일반 사회인들과 비교하여 기준을 말씀해보십시오.

        가. 신앙생활 기간

        나. 나이

        다. 사회생활에서 바르게 사는 정도: 친절, 정직, 성실, 평판.

        라. 교회생활에서 섬기는 정도: 예배참석, 봉사, 전도, 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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