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과 성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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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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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문: 어떻게 하여 성례가 효력 있는 구원의 방도가 됩니까?

답: 성례가 구원의 효력 있는 방도가 되는 것은 그 성례 자체에나 성례를 행하는 자에게 어떤 덕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그리스도의 축복하심과 또 믿음으로 성례를 받는 자들 속에서 성령님이 역사하심으로 되는 것입니다.(고전 3:7; 벧전 3:21)


제92문: 성례가 무엇입니까?

답: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거룩한 예식인데 그 속에 그리스도와 새 언약의 유익이 감각적인 표로 나타나며 인쳐져서 신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고전 11:26; 롬 4:11)


제93문: 신약의 성례가 무엇입니까?

답: 신약의 성례는 세례와 성찬입니다.(마 28:19; 고전 11:23)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벧전 3:21)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1. 우리가 성례(聖禮)라고 하는 것을 천주교에서는 성사(聖事)라고 하는데 천주교에는 7개의 성사가 있습니다. 세례(洗禮), 견진(堅振), 성체(聖體), 고백(告白), 병자(病者), 신품(神品), 혼인(婚姻)성사입니다. 여기서 성체성사는 성찬과 비슷하고(같은 것이어야 하지만 신학적 의미와 형식이 좀 달라 비슷하다고 표현했습니다) 병자성사는 과거에 종부성사라고 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개신교에는 2개의 성례만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직접 제정하시면서 계속해서 시행하라고 명령하신 것만을 성례로 정하는데 이런 성례는 세례와 성찬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편의상 천주교의 성사도 그냥 성례라고 표현하겠습니다.


2. 천주교는 성례의 효력에 대해 우리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천주교는 성례가 효력 있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첫째, 성례는 특별한 형식에 따라 집례되어야 하고, 둘째, 올바른 의도에서 집례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례가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면 그 모든 성례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주장합니다. 달리 말하면 성례 자체가 효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 내용은 백과사전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성사란, 그리스도가 우리 인간에게 은총(恩寵)을 베풀기 위한 표적(表蹟)으로서 제정한 것이나 단순히 은총을 주는 표시로서의 상징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은총을 주는 힘을 갖는 것이다.”


3.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천주교의 견해에 반대합니다. 첫째, 성례전이 정당한 의도에 의해 집례되어야 한다면 집례자가 정당한 의도로 집례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집례자의 의도가 성례의 효력을 좌우한다면 아무도 그 성례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둘째, 성경은 성례의 효력이 집례자의 믿음에 좌우된다고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례를 베풀었는데 처음부터 악한 자였던 가룟 유다도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베푼 세례는 효력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요 6:70-71)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준 것이라).”(요 4:1-2) 이것은 12 제자가 나가서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낸 모습에도 암시되어 있습니다. 가룟 유다도 이런 기적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성례의 효력이 참여자의 의도에 좌우된다고 가르쳐줍니다.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함이라.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고전 11:20-22)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전 11:27-29)


셋째,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성례가 정확하게 형식을 갖추었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존중하고 성도들을 사랑하면 성경이 가르쳐주는 것과 교회에서 정한 것과 다른 성도들이 기쁘게 참여하는 성례의 형식을 따르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정당한 형식을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과 사랑 때문에 형식을 지키게 되는 것과 형식을 지키면 자동적으로 효력이 있다고 생각하며 형식을 지키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4. 성례에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그것이 표시(sign)라는 것입니다. 표시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도로표시판은 지금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앞으로 나타날 길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표시판은 앞으로 경사가 나타날 것이라거나 갈림길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혹은 계급장은 눈으로 보고 알 수 없는 어떤 사람의 위치와 중요성을 보여주는 표시입니다. 이런 것들처럼 성례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보여주는 표시입니다. 어떤 표시를 보여주는지는 다음 과에서 살펴볼 것입니다.


5. 그리고 성례는 인침(도장 찍음)입니다. 우리가 어떤 은혜를 입었다는 표시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떤 자격증에 직인을 찍은 것과 비슷합니다. 어떤 사람의 졸업장에 직인이 찍혀 있으면 그 인침은 그가 졸업했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것입니다. 성례는 신자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유익이 진짜라는 것을 확인해줍니다. 어떤 사람이 성찬식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그가 정말 그리스도를 믿고 그 은혜를 입고 산다는 것을 확인해줍니다.


그러나 만일 믿지도 않으면서 성찬식에 참여하면 이것은 인침을 도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직인을 도용하여 가짜 자격증을 만든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래서 진실한 믿음 없이 무의미하게 성찬식에 참여하는 사람은 벌을 받는 것입니다.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고전 11:29-30)


6. 성례는 감각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성례가 참여자의 이해를 돕는다는 뜻이 아니라 오감(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을 자극한다는 뜻입니다. 성례는 메시지를 깨닫게 하기보다 알고 있는 메시지를 더 강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성례의 의미를 배우지 못한 사람은 성례에 참여해도 그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의미를 아는 사람이 성례를 통해 감각을 자극받으면 그 의미를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몸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몸의 기관을 통해 영적인 은혜를 더 깊이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이 성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성례는 일종의 시청각 설교라고 볼 수 있습니다.


7. 성례는 외적인 방편이지만 내적인 은혜와 관계가 있습니다. 계급장은 실제로 그 계급에 해당되는 사람이 달아야 의미가 있습니다. 교통표시판도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실제 상황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습니다. 성례도 내적 은혜와 관계가 있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례를 제정해주실 때 그 외적 방편이 내적이고 영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관련이 있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성례가 외적인 것이지만 믿음으로 참여할 때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성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기 위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례는 하나님의 내적 은혜와 관계가 있는데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기 위해 세우신 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성례는 교회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례는 교회를 통해 적절한 방법으로 시행되어야 합니다. 성례가 교회를 떠나 개인적인 비밀의식으로 시행되거나 하나님의 구원 도구인 예배, 말씀, 기도, 찬양 등과 분리되어 시행된다면 올바른 성례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토의문제


1. 세례를 받으신 분은 ‘내’가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는지 말씀해주십시오.


2. 사람마다 자기가 세례를 받고 싶은 사람이 따로 있을까요? 이런 마음이 있다면 왜 그럴까요? 이런 마음의 장점은 무엇이고 단점은 무엇일까요? 참고로 다음 성경구절을 읽어보십시오.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 1:12-15)


3. 세례를 다시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런 경우가 있다면 이유가 뭡니까? 다시 받지 못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4. 성찬식의 순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이 순서 중에 ‘내’가 가장 감동을 많이 받는 순서는 어느 것입니까? 성찬보를 치우며 성찬식을 시작함, 권면의 말씀, 분병, 기도, 분잔, 기도, 찬송.


5. 성찬식은 표시로서의 의미(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 인침으로서의 의미(나는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다), 감각을 이용하는 의미(위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느낀다)가 있는데 이 중에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6. 성찬식에는 십자가 구속의 은혜에 의지하려는 믿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하나님 사랑, 모든 성도가 주님 안에서 한 몸이 되는 사랑, 천국 잔치를 기다리는 소망, 주님의 몸 바치신 사랑에 감사하며 주님을 위해 몸을 바치려는 헌신, 등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 중에 ‘내’가 많이 느끼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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