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과 제10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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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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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문: 제10계명이 무엇입니까?

답: 제10계명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라고 하신 것입니다.(출 20:17)


제80문: 제10계명에서 명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제10계명에서 명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며 이웃과 그의 모든 것에 대하여 의롭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히 13:5; 롬 12:15; 고전 10:24)


제81문: 제10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제10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처지에 대한 모든 불만과 이웃의 행복을 시기하거나 좋지 않게 여기는 것과 이웃에게 속한 것에 대한 모든 부당한 행동과 감정입니다.(고전 10:10; 벧전 2:1)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 10:10) 


1. 제10계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당한 목적을 추구하는 것과 탐심을 구별해야 합니다. 탐심은 부당한 욕심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게 탐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추구하는 게 탐심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관계없이 전혀 다른 것을 사랑하며 추구하는 게 탐심입니다. 그래서 ‘탐심을 없애는 것’과 ‘아무 목적도 없이 사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 그리고 제10계명을 이해하려면 하나님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마음의 무엇을 보실까요? 하나님을 믿는 것을 가장 먼저 보십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보십니다. 그리고 이웃 사랑을 보십니다. 사실은 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편의상 구별하여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신뢰하면 불만이나 염려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실제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계십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이 불만이 있겠습니까? 또 하나님은 가장 적절할 때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으로 믿는 사람이 염려가 있겠습니까?


불만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무언가 주시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불만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을 내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부당한 욕심이 있는 거지요. 염려가 생기는 것은 하나님이 내가 필요할 때 주시지 않을까봐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염려가 있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역시 부당한 욕심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면 불만과 염려가 없고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을 내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탐욕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탐내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있는 사람은 원하는 게 있을 때 어떻게 할까요? 탐내지 않고 그냥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3.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어도 불만이 없습니다. 어떤 분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분이 하는 것을 따르게 됩니다.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든지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불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탐욕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탐내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4. 이웃을 사랑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웃의 유익을 추구합니다. 이웃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거나 이웃이 잘 되는 것을 내가 가로채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오직 이웃이 잘 되는 것만으로 기뻐합니다. 그러나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에게 해를 끼치게 됩니다. 특히 나의 유익을 위해 그에게 해를 끼칩니다. 이런 행동으로는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말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그가 잘 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특히 이웃이 잘 되는 대신 내가 잘 되고 싶기 때문에 이웃의 것을 가로채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이웃의 것을 탐내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웃을 사랑하면 이웃의 것을 탐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5. 사실 탐욕은 모든 죄의 근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 탐욕은 단순히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만 하게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게 합니다. 탐욕을 품는 만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침식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탐욕은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않고 다른 것에 탐욕을 품으면 비록 그것이 작은 탐욕이라고 해도 하나님을 100%의 마음으로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갉아먹습니다. 이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게 우상이 아니라 아무리 작아도 하나님의 사랑을 갉아먹는 게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1년에 51주는 하나님을 섬기고 1주만 우상을 섬겨도 우상숭배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6. 탐욕은 눈에 보이는 죄가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처벌도 받지 않습니다. 또한 마음으로 탐욕을 품는 것은 실제로 이웃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탐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탐욕이 모든 죄의 근본이고 우상을 숭배하는 아주 무서운 죄인 것입니다. 우리는 탐욕을 극복하기 위해 각별히 노력해야 합니다.


7. 이런 탐심을 이겨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탐심 자체가 완전히 없어지려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지금 내가 가지고 싶어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라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내가 100원을 가지고 싶었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10,000을 주시면 아까 가지고 싶었던 100원에 대한 탐욕은 없어질 것입니다. 혹은 내일 100원짜리 물건을 사고 싶어 오늘 100원을 구하려고 했는데 구하지 못해도 내일 아침에 하나님이 10,000원을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으면 오늘 100원에 대한 탐욕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을 비교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것이라는 것을 알면 탐심을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 세상에는 우리가 가지고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가지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도 탐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게 필요한 것이면 하나님께 기도하며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도 하지 않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탐심이 일어날 위험이 있습니다.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2-3) 우리가 불필요한 것을 구해도 탐심이 생기지만 좋은 것을 원하면서 기도하지 않아도 부당하게 욕심만 부리는 탐심이 생깁니다. 우리는 막연히 욕심만 제어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도 해야 합니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 10:4) 물론 욕심을 품고 기도하거나 노력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위해 필요하다는 바른 목표를 가지고 기도하며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바른 목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게을러서 이루지 못하고 탐욕만 부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노력해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그것이 불필요하거나 심지어 해롭기 때문에 주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주시지 않음으로써 우리의 영적 축복을 지키시고 내세에 더 큰 상급을 주십니다. 이런 주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탐욕에 빠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어떤 학생이 1억원의 장학증서를 받은 게 아니라 큰 부자의 양자가 되었다는 것과 같습니다. 찬송가 498장의 1절 가사를 생각해보십시오.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은사 원한 내게 은사의 주님, 신유 구한 내게 신유의 주님, 나의 마음 속에 지금 오셨네. 나의 생명 되는 내 주 예수님 영원토록 모셔 내 기쁨 넘치네.” 내가 주님께 무엇을 달라고 구했는데 그 모든 것을 소유하신 주님 자신이 내게 오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이런 것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우리를 탐심에서 구해주고 아울러 죄를 벗어나게 해줍니다. 그래서 성경은 눈이 몸의 등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마 6:22-23)


8.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알면 모든 탐심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웃의 것을 탐내지 않기 위해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이웃을 사랑하면 이웃의 것을 보며 나도 저런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기도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내가 탈취하고 싶어지지는 않습니다. 부당한 욕심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웃의 것을 탐내지 않기 위해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은 이웃과의 경쟁심입니다. 경쟁심이 특별히 이웃의 것을 탐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웃과 경쟁하면 이웃이 잘 되는 것도 싫고 이웃이 좋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도 싫습니다. 오히려 이웃에게 이기기 위해 내가 그것을 탈취하고 싶거나 혹은 지기 싫어서 나도 그것을 가지고 싶어집니다. 모두 부당한 욕심이며 탐욕입니다. 그래서 경쟁심을 극복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것을 위해서도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게 필요합니다.



토의문제


1. ‘내’가 지금 가장 얻고 싶은 것(영적, 정신적, 육적, 물질적, 어느 분야든지 상관없습니다)을 5 가지 말씀해주십시오.


        가. 이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기도하며 노력하셨습니까?

        나. 이것이 좋은 목적인지 탐욕이 될 위험이 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다. 이것이 탐욕이라면 어떻게 탐욕을 없앨 수 있습니까?

        라. 오늘 성경공부를 하고 나서 새롭게 얻고 싶은 게 생겼습니까?


2.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는데 결과적으로 나중에 더 큰 복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까? 그 경험을 나눠주십시오.


3. 남이 ‘나’에게 경쟁심을 가지고 있어 어려움을 겪으신 적이 있습니까?


4. ‘내’가 이웃의 것을 탐낸 적이 있습니까? 해결되었습니까? 어떻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까? 혹시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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