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과 향유를 부은 여인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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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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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본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토의


1. 본문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요한복음 11:53-57을 읽으십시오. 예수님의 입장이 어떻습니까? 예수님 주위 사람들의 입장은 어떻겠습니까?


지금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피해 다니셔야 할 입장입니다. 특히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있는 곳을 알면 고발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예수님 주위 사람들도 입장이 난처했을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어디로 가십니까? 이곳은 전에 무엇을 하신 곳입니까? 요한복음 11:1, 43-44를 보시고 12:1을 보십시오.


베다니로 가십니다. 이곳은 전에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곳입니다.


3. 베다니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대합니까? 이들의 믿음을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위해 잔치할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합니다. 이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을 영접했으니 예수님을 상당히 잘 믿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4.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가 한 행동을 그려보십시오. 각각 어떤 입장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있습니까?


     가. 나사로


나사로는 여러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을 모시고 식사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는 모습입니다.


     나. 마르다


마르다는 잔치의 일을 봅니다. 음식을 준비해서 대접하니 예수님을 육신적으로 영접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했을 것이므로 단순히 육신적인 영접만은 아닙니다.


     다. 마리아


마리아는 비싼 향유를 가져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씻었습니다.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고 존중하며 대접하는 모습입니다.


     라. 마리아는 특별히 값진 것을 바쳤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신 것은 나사로와 마르다가 다 경험했지만 마리아만 특별한 행동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예수님에 대해 남다른 믿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겸손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지금 위험에 직면해 계십니다. 예수님도 마리아의 행동을 당신의 죽음과 연관시키십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예수님을 어떻게 믿고 있는 걸까요?


마리아가 남달리 예수님을 높이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남달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극진히 모시는 것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메시야로 생각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특히 마리아의 행동이 예수님의 죽음과 연관된다면 마리아는 예수님이 자기를 비롯한 여러 사람을 위해 죽으신다는 것을 믿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신다는 것은 몰랐다 하더라도 예수님이 자기들을 위해 죽으신다는 것은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자주 말씀하셨으므로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그래서 마리아는 남달리 극진한 섬김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5. 마리아의 행동을 보고 가룟 유다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가. 가룟 유다의 논리는 무엇입니까?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드리지 말고 팔아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런 논리로 마리아의 행위를 낭비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나. 가룟 유다의 본심은 무엇입니까?


자기가 돈 궤를 가지고 다니며 거기서 돈을 빼 썼으므로 이 돈도 궤에 넣어두었다가 훔칠 생각이었습니다.


6.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반응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가. 예수님은 마리아와 가룟 유다 중에 누구를 두둔하십니까?


마리아를 두둔하십니다.


     나. 가룟 유다의 논리에서 옳은 점을 생각해보십시오.


가룟 유다의 논리는 물품을 사치스럽게 사용하는 것보다 그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게 더 낫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려운 이웃을 도우라는 주님의 가르침과 잘 맞습니다. 그러므로 가룟 유다의 논리는 이 점에서 옳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 가룟 유다의 논리에 어떤 문제점이 있습니까? 왜 마리아의 행동이 가룟 유다의 말보다 더 옳습니까?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만일 예수님이 공생애를 3년 동안 하지 않으시고 30년 동안 하셨다면 좋은 점은 무엇이고 나쁜 점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최적의 시간 계획을 세우신다고 믿어야 합니다.


가룟 유다의 논리에서는 예수님을 섬기는 것의 중요성이 무시되고 있습니다. 이점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이웃을 많이 도와도 예수님의 은혜를 모르고 믿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고 또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공생애를 30년 동안 하셨다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고 도와주신 반면 십자가의 복음은 긴박하게 가르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의 공생애 초반에 죽는 사람은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을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많이 가르치고 도와주시는 것은 좋은 점이지만 복음을 긴박하게 전하지 않으시는 것은 단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짧은 기간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가르치고 돕는 시간보다 복음 전파의 시간을 더 긴급하게 가지신 것은 사실 우리에게 더 유익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님의 공생애 시간 계획을 그렇게 세우신 것입니다.



II. 우리 삶에 적용하기 위한 토의


1. ‘내’가 손해를 무릅쓰고 예수님을 섬긴 경험을 나눠주시고 그때 왜 그렇게 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베다니 사람들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을 영접했겠습니까?


베다니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을 영접한 것은 자기들이 큰 도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헌신적으로 주님을 섬긴 경험을 나누며 왜 그렇게 헌신했는지 찾아보려는 것입니다.


2. ‘나’는 평소에 예수님을 어느 정도로 대접해드립니까?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에 비춰서 나의 모습을 생각해보십시오. 또 우리교회 성도님들은 대체로 어떤 것 같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대접하는 방법과 정도를 한번 점검해보려는 것입니다.


3. 우리 주위에서 본심을 숨기고 겉으로만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자기가 원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나’는 그런 적이 없습니까?


가룟 유다가 겉으로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는 체하면서 실제로는 자기 이권을 추구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에게는 이런 모습이 없는지 생각해보려는 것입니다.


4. 이웃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은 지극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차선이 최선의 최대의 적이 되는 것처럼 이웃을 돌보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를 생각해보시고 또 지금 우리는 교회의 힘을 어떻게 배분하는 게 좋을지 생각해보십시오.


구제에 전심전력하다가 복음전파에 소홀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찾아보고 또한 우리 교회는 교회의 힘을 어떻게 분배하는 게 좋을지 생각해보기 위해서입니다.


5.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제대로 안다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할 것 같습니까? 우리가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는 태도, 헌금하는 태도, 사회에서 정직하게 살고자 하는 태도가 많이 바뀔까요? 또 ‘나’에게 값진 향유와 같은 것은 무엇입니까?


마리아는 예수님이 자기를 위해 죽으신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극진한 헌신을 한 것 같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은혜를 알면 지극히 헌신적인 자녀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변화될 때 우리는 어떤 헌신을 하게 될지 찾아보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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