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성경공부

제15과 스데반의 설교 해설

작성자 정보

  • 오덕호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1) 스데반의 설교를 읽으면서 받은 인상을 나눠보십시오.

    이 설교는 성경에서 소개하는 다른 설교에 비해 특별히 깁니다. 이것은 이 설교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또한 구약성경의 내용을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설교를 할 때 구약성경을 많이 인용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는 구약성경을 거의 인용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설교의 대상에 따라 다른 내용으로 설교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을 대상으로 했고 스데반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했으므로 이렇게 서로 다른 접근방법으로 설교한 것입니다.

2) 앞에서 스데반이 고발당했던 내용을 정리해보십시오.

    사도행전 6:11-14를 보면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하며 또한 성전(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했다고 고발당합니다. 이것은 7장에 나오는 스데반의 설교가 이런 고발에 대한 변호를 포함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사람들을 가르쳐 말시키되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 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행 6:11-14)

3) 성전을 거스려 말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범죄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룩한 곳을 범하는 것을 무척 싫어하였고 성전의 거룩한 경계를 무시하는 것을 아주 큰 범죄로 쳤습니다. 예수님도 고발당할 때 성전을 헌다는 말을 했다고 고발당하였고(막 14:58-59) 바울도 성전의 거룩함을 범했다고 고발당했습니다(행 21:27-30).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오히려 그 증거도 서로 합하지 않더라.(막 14:58-59)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 이는 저희가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저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일러라.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행 21:27-30)

4) 스데반이 인용한 구약의 인물 중에 누가 특별히 중요합니까? 그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모세가 특별히 중요합니다. 설교의 많은 부분이 모세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특징은 이스라엘의 구원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를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7:25, 35-36을 보십시오. 이 뿐 아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인도할 때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에게 순종하지 않고 온갖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행 7:25)

저희 말이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을 의탁하여 관원과 속량하는 자로 보내셨으니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행 7:35-36)

    그리고 모세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실 것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한 것입니다. 이 예언은 예수님으로 인해 성취됩니다. 신명기 18:15를 읽어보십시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신 18:15)

5) 이스라엘 사람들은 또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의 말만이 아니라 선지자들의 말도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핍박하였습니다.

6) 스데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어떻게 표현합니까? 이것은 스데반이 율법을 거스려 말했다는 고발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스데반은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리라고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 하였도다."(7:52-53)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실제로 율법을 거스리는 사람은 유대인들이고 스데반 자신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세가 예언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므로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라고 변호하는 것입니다. 스데반의 변호는 일종의 '정면돌파'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다음의 내용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7) 스데반은 성전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광야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가 하나님의 명을 받아 만든 장막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이 성전 역할을 하였습니다. 장막은 광야에서 이동하는 것이었고 이것은 특별한 장소가 거룩한 것이 아님을 암시합니다. 이어서 스데반은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을 때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곳에 계시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성전 자체가 절대화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을 요한복음 2:19-21; 4:21-24와 비교해보십시오. 스데반의 설교는 성전의 절대성을 부인하며 이제 예수님이 성전을 대신함으로써 예수님을 통해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것도 고발에 대한 정면돌파식의 설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2:19-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1-24)

8)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마음에 찔려 스데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것을 사도행전 2:37과 비교해보십시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은 마음에 찔려 어찌할꼬 하다가 베드로의 권고를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러나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마음에 찔려 스데반을 죽이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 설교를 들었을 때 나타나는 두 가지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둘 다 마음에 찔립니다. 그런데 하나는 회개하고 다른 하나는 오히려 설교자를 박해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행 2:37)

9) 스데반이 죽는 모습을 살펴보고 이것이 누구의 죽음을 연상시키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스데반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자기 영혼을 예수님께 맡기고 또한 자기를 죽이는 자들이 용서받기를 빌며 죽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많이 닮았습니다. 그런데 차이점은 예수님이 당신의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신데(눅 23:46) 반해 스데반은 예수님께 맡깁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하나님만큼 높이는 모습입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눅 23:46)

10) 스데반이 죽는 장면에 누가 등장합니까? 이것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요?

    바울(사울)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스데반의 사역이 바울에게 이어질 것을 암시합니다. 둘 다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복음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여 과격한 설교를 하였고(다른 사도들도 있었는데 스데반이 첫 순교자가 된 사실과, 바울이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은 박해와 목숨의 위협을 받은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하지 못하는 헬라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을 위한 선교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스데반은 참된 복음을 이해하고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다가 일찍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역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바울을 통해 더욱 발전하고 큰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볼 수 있습니다.

11)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참뜻을 잘 알고 지킵니까? 혹은 유대인들처럼 외형적인 것만 가지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의 관습이나 규범을 가지고 쉽게 다른 사람의 신앙생활을 정죄한다면 이런 위험이 있을 것입니다. 항상 복음의 진리와 사랑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12) 우리는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까? 그런 경우에 어떤 반응을 합니까?

13) 스데반이 죽어도 하나님의 역사는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또 다른 사람을 준비시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며 신실하고 담대하게 오늘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에 충실하도록 합시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443 / 1 Page
번호
제목
이름

성경공부


최근글


새댓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