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과 교회의 박해와 가말리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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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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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왜 사도들을 잡아 가둡니까? 이 모습과 앞에 나온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과 유사성이 있습니까?

    시기심 때문에 잡아 가둡니다. 이것은 종교지도자들이 자기들의 영광을 중히 여겼고 또한 사도들에 대해 경쟁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경쟁심과 허영심 때문에 헌금을 실제보다 더 많이 한 것처럼 거짓행동을 했습니다. 이점에서 두 부류의 모습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종교행위나 교회의 지위에 대해 허영심과 경쟁심을 가진 것은 그것을 명예로 생각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혹시 오늘의 교회에서도 종교행위가 명예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까?

    종교행위가 명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종교행위는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보시고 기뻐하시고 응답해주시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종교행위가 명예가 되면 신자들이 자기 명예를 위해 종교행위를 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위배됩니다. 마태복음 6:1을 읽어보십시오. 오늘의 교회에도 헌금, 교회봉사, 심지어 예배출석(특히 새벽기도회 출석)이 신자들의 종교적 명예가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피해야 할 일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마 6:1)


3) 경쟁심이 생길 때 상대방을 이기려고 하는 모습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모습이겠는지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주위에서는 정치인들의 선거전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사용한 방법과 종교지도자들이 사용한 방법을 생각해보십시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사람들은 흔히 상대방을 깎아 내리거나 자신을 부풀립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기들을 과대포장 하고 종교지도자들은 사도들을 잡아 가두어서 활동을 못하게 합니다. 선거 때 우리가 흔히 보는 흑색선전은 상대방을 비방하는 것이고 자기의 이력을 과장하는 것은 자신을 부풀리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런 자세를 갖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4) 감옥에 갇힌 사도들을 천사가 풀어주는데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나가서 성전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사도들이 천사가 자기들을 풀어준 목적을 거역하고 자기들의 안전을 위해 숨어버렸다면 심히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을 것입니다.

5) 사도들은 무엇 때문에 옥에 갇혔습니까? 옥에서 나와서는 무엇을 합니까? 이것은 무엇을 보여줍니까?

    사도들은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옥에서 풀려나자 다시 복음을 전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들의 순종과 용기를 볼 수 있습니다.

6) 사도들이 용기 있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보십시오.

    우선 천사가 풀어주며 명령했기 때문에 담대히 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천사가 풀어주었으므로 언제든지 하나님이 보호해주신다는 확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사도들 중에 둘은 전에 잡혀갔다가 능력 있게 복음을 전하고 나왔었습니다. 이런 경험도 그들의 믿음을 강하게 하는 데 유익했을 것입니다.

7) 은혜를 입은 사도들은 희생을 각오하고 그 은혜를 주신 목적에 맞게 사역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에는 어떤 목적이 있겠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감옥에서 풀려나지는 않았어도 세상에서 많은 은혜를 입고 삽니다. 예를 들면, 건강, 재물, 재능, 세상의 지위와 권력 등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것을 허락해주신 목적을 깊이 생각하시고 그에 합당하게 살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8) 이 사건 외에 사도들이 감옥에서 풀려난 사건을 찾아보십시오. 사도행전 12:5-10을 보십시오. 풀려난 것과 비슷한 사건으로는 사도행전 16:25-35를 보십시오.

    베드로가 감옥에서 천사의 도움으로 풀려났습니다. 바울가 실라는 감옥문이 열렸으나 도망가지 않고 간수의 대접을 받은 후 다음날 정상적으로 풀려납니다.

9) 사도들 중에 감옥에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도 있습니까? 여기서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사도 야고보는 헤롯(헤롯 아그립바 1세)에게 잡혀 죽었습니다. 사도행전 12:1-2를 보십시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도들의 목숨을 구해주기도 하시지만 죽게 두기도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하시는 것이며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모든 신자에게 유익이 됩니다. 이런 순교를 통해 기독교가 로마의 박해를 이기고 오히려 로마를 정복하기에 이릅니다.

10) 본문을 보면 사도들이 종교지도자들의 박해에서 구원받는 모습이 두 가지 나옵니다. 하나는 천사가 감옥에서 풀어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입니까?

    다른 하나는 가말리엘의 발언에 의해 풀려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구원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적으로 구원하기도 하시고 다른 사람을 이용하여 구원하기도 하십니다.

11) 가말리엘의 발언은 결과적으로 교회에 유익을 끼쳤습니다. 또한 그의 발언은 논리적으로 맞습니다. 그러면 그의 행동은 우리에게 모범이 됩니까? 그는 구원을 받았을까요? 가말리엘과 대조되는 스타일의 사람을 생각해보십시오.

    모범이 되지 않습니다. 가말리엘의 말은 "하나님 뜻대로 될 테니까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뜻입니다. 이것은 신자들의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선과 악이 분명할 때는 구별하여 선에 속해야 합니다. 이 경우에는 종교지도자들의 행동이 악한 것이므로 그런 짓을 하지 말자는 가말리엘의 행동이 교회에 유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선행을 하자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오히려 해를 끼치게 될 것입니다.

    가말리엘은 누군가를 메시야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가 정말 메시야인지 판단하여 믿고 따르든지 거짓 메시야로 배척하든지 결단을 해야 합니다. 특히 그가 존경받는 종교지도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본문에서 그는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는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아 구원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말리엘과 대조되는 사람으로 우리는 사도 바울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거짓 메시야라고 믿을 때는 교회를 심히 박해하였고 참 메시야라고 믿게 되자 목숨을 걸고 선교하였습니다. 바울은 뜨거운 사람이었고 그에 반해 가말리엘은 미지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일 가말리엘이 예수님을 거짓 메시야로 믿으면서도 심판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라면 좋은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 맞을지도 모르고 틀릴지도 모르니 가만 두어 안전을 도모하자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가라지 비유에서 가르쳐주는 "가만 두어라"는 가르침과 혼동하면 안 됩니다. 가라지 비유가 가르쳐주는 것은 남을 심판하지 말라는 것으로서 잘못을 분별하고 말씀으로 권하되 우리가 심판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 복음과 진리를 전하는 데 있어서 미지근하게 행동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선악이 분명할 때 우리는 옳은 것에 속하고 그것을 따르는 데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12) 사도들은 채찍에 맞고 협박을 당한 후 풀려 나왔습니다. 그후 그들은 어떤 행동을 합니까?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능욕받는 것을 기뻐하고 또한 계속해서 복음을 전합니다.

13) 박해를 명예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민주화 운동 때 박해받은 것을 명예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 희생하고 어려움 겪는 것을 기뻐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명예로 생각하며 다투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14) 주님 안에서 항상 올바르게 판단하여 담대하게 사역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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