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과 부활하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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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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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먼저 사도행전에 대해 아는 것을 서로 나누시고 사도행전에서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또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지 함께 찾아보십시오. 

    사도행전에 대해서 회원들이 아는 것을 자유롭게 나누게 한 후에 사도행전의 특징을 간단히 설명해주십시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저자가 누가복음을 쓴지 약 10년쯤 지나서 쓴 누가복음의 후편입니다. 그 내용은 예수님의 승천 후에 사도들이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지를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예수님의 승천 후 교회가 시작되어 발전하며 퍼져나가는 것을 그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특별히 배울 수 있는 것은 교회의 바람직한 모습과 사역입니다. 사도행전에는 성령의 역사 속에 교회가 성립되어 힘차게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수많은 외적 내적 어려움들을 극복하는 모습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다양한 사역도 배울 수 있습니다. 물론 사도행전에 나오는 수많은 사건과 가르침 속에서 우리의 바른 신앙생활에 대한 여러 가지 교훈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대 속에 사도행전을 같이 공부할 수 있기 바랍니다.

2. 사도행전 1:1-5는 인사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인사말에서 저자는 "먼저 쓴 글"이란 말을 하는데 이것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또 이 말은 무엇을 암시합니까?

    먼저 쓴 글이란 누가복음을 가리킵니다. 수신자가 같고 문체나 여러 가지 이유로 그렇게 볼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쓴 글"이란 전편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서로 다른 책인데 저자만 같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하나의 책이라는 뜻입니다. 즉 한 작품의 전편과 후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사도행전의 독자가 이미 누가복음을 읽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을 이해하려면 누가복음을 먼저 읽어야 합니다. 두 권으로 된 하나의 작품에서 두 번째 권을 이해하려면 첫 번째 권을 읽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3. 본문을 누가복음 1:1-4와 비교해보십시오. 수신자가 같은 사람인데 그 호칭에 다른 점이 있습니까? 어떻게 다르며 다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누가복음에서는 데오빌로를 각하라고 불렀는데 사도행전에서는 각하라는 칭호가 없이 그냥 이름만 부릅니다. 이것은 사도행전에서는 저자와 독자가 많이 가까워졌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적인 친근함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친해진다고 쉽게 큰 지위의 차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신자들의 신앙이 성숙하면 한 하나님의 자녀요 형제자매로서 세상적인 차이를 극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 교회에 나오면 사회적 지위로 호칭되지만 신앙생활에 익숙해지면 교회의 직책으로 호칭됩니다. 그리고 형제자매로서 세상의 격차를 극복하고 평등한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것이 교회의 바른 모습입니다. 야고보서 2:1-4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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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상식적으로 예수님은 이 기간에 무엇을 하셔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예수님이 맡기신 사역을 잘 감당하도록 훈련을 시키실 것입니다.

5. 예수님이 제자들을 준비시키신 것이 크게 세 가지 나옵니다. 그것을 찾아보시고 각각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이 제자들을 준비시킨 것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알려주셨습니다.
    2)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3) 성령을 기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것을 믿지 못하면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12사도를 채우기 위해 맛디아를 뽑을 때에도 사도는 부활을 증거할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행 1:22).
    2)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알지 못하면 희망도 없고 힘있게 사역할 수도 없습니다. 물론 복음을 알 수도 없고 전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지상사역에서 가르치신 것도 하나님 나라였고(막 1:14-15; 마 4:23 참조) 제자들이 전파한 것도 하나님 나라였습니다(눅 9:2). 그리고 사도행전은 마지막 부분에서 바울이 하나님 나라를 전했다고 합니다(행 28:31). 특히 사도행전은 처음과 나중에 '하나님 나라'라는 말이 나와서 하나님 나라가 사도행전 전체를 묶어주는 역할을 하며 동시에 하나님 나라가 사도행전의 주제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3) 제자들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기다려야 합니다. 성령을 받고 나서 제자들은 힘차게 복음을 전하며 예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6. 성령을 받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평소에 생각하던 것을 나눠보십시오.

    성령을 받는 것은 성경이 크게 두 가지로 가르쳐줍니다. 고린도전서 12:3은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미 성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예수를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 다. 사도행전에서도 예수를 믿으면 성령을 받는다는 말씀이 나옵니다(행 2:38).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것의 한 가지 의미는 성령의 감동 속에 예수를 믿는 것을 말합니다. 이 경우 믿는 자는 다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다른 부분은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을 성령을 받는 것으로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 성령을 받아 예수를 믿으면 당연히 성령의 역사 속에 능력 있는 삶을 삽니다. 여기에는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도 포함되고 성령의 은사로 기적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특히 성령을 받았다는 기적적인 표적도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런 표적이나 은사는 모든 사람에게 다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필요에 따라 주십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성령 받은 표적이 드러나게 많이 나타났으나 후대에는 그런 표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악에게 이기는 참된 신앙생활은 항상 반드시 나타나야 합니다. 성령은 육체의 소욕을 이기며 참된 신앙생활을 하도록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성령을 한 번 받았다고 항상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새롭게 새롭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고 스스로 성령을 받았다고 하며 성령이 충만하지 못한 상태로 부족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지 않는 것은 잘못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았고 성령의 역사 속에 예수를 믿고 있어도 늘 성령이 충만하여 더욱 힘있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성령의 은사나 표적에만 관심을 가져 그런 것만 사모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진심으로 예수를 의지하고 믿으며 성령의 감동 속에 선하게 살고 또한 악을 선으로 바꿔 가는 승리의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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