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성경공부

제28과 더 풍성한 삶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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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효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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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0:1-21에 대하여

 

10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목자와 양의 관계를 비유로 표현하신 예수의 가르침(1-21절)과 수전절 솔로몬 행각에서 발생한 유대인들과의 논쟁(22-42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10장의 전반부에 해당하며, “양의 문”과 “선한 목자”로서의 예수님의 자기 선언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Ⅲ. 말씀과 대화하기_________________________


1. 양의 목자는 강도나 절도와 어떻게 다릅니까?(1-5절)

 

첫째, 양의 목자는 양의 우리에 들어갈 때 문으로 들어가지만, 강도나 절도는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갑니다(1-2절). 그들은 양들을 훔쳐서 그 생명을 해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이 아닌 다른 곳으로 몰래 들어갑니다. 여기서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예수를 거부하는 모든 이들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구원의 문이신 예수를 거부하는 종교 지도자들이나 가르침은 강도나 절도와 같습니다.

둘째, 문지기는 양의 목자만을 위하여 문을 열어줍니다(3절). 문지기의 역할은 밤 동안에 우리에 있는 양들을 보호하고 아침에 목자에게 양들을 인계해 주는 것인데, 문지기가 따로 있는 경우도 있으나 보통 목자들 가운데 한 명씩 교대로 이 일을 하기도 합니다.  칼빈(J. Calvin)은 문지기를 ‘하나님’으로 보고 있으며 그밖에 ‘성령’, ‘세례요한’, ‘모세’ 등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셋째, 양의 목자는 양들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부르고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습니다(3절).  이 말은 목자가 자기에게 속한 양들을 개별적으로 하나 하나 세밀하게 알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양의 생김새나 울음소리, 약한 부분, 취향 등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양들도 자기 목자의 음성을 구별하여 알고 그 음성만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강도나 절도는 이와 같은 것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양들은 그 음성이 낯설어서 오히려 도망갑니다.


2. 예수께서 자신을 무엇이라고 비유하십니까? 두 가지를 찾아서 그 의미를 말해보십시오(7-15절).

 

예수께서는 자신을 “양의 문”(7절)이며 “선한 목자”(11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절대적인 강조의 형식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 마음은 호수처럼 맑고 잔잔하다”는 표현보다 “내 마음은 호수다”라는 표현이 훨씬 더 강하게 의미부여를 하는 것처럼, 예수께서는 자신을 비유하실 때 이와 같은 표현법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문”은 특정한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과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오직 자신만이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임을 의미하고 계십니다.  이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는 절도요 강도라고 말씀하십니다(1절). 또한 예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선한 목자의 특징은 양들을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도 기꺼이 버린다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의 관심은 양들의 생명에 있으므로 자기 양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지불합니다. 그러나 삯군은 양들의 생명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므로 이리가 오면 양들을 돌보지 않고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도망가 버리며, 또한 자신의 삯에만 관심이 있으므로 삯군은 목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양들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선하신 목자이십니다.      


3.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무엇입니까?(10절)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도적이 오는 목적과 정반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도적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오는데 반해, 예수께서는 생명을 얻게 하려고 오십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신 것은 단순히 생명을 얻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풍성히’로 번역된 헬라어 ‘페리손’는 ‘필요한 것 이상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 단어를 ‘충분한 만족’으로 번역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실 뿐만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얻을 수 없는 만족도 충분히 얻게 하시고자 오신 것입니다(롬 5:17, 20; 엡 1:7, 8; 고후 8:2, 32 참조). .


4. 16절의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의미입니까?(16절)

 

먼저 이 말씀은 예수님의 모든 양이 다 이스라엘 가운데 속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의 양들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이미 예정하셔서 주시기로 약속하신 자들로서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엡 1:4, 5).  이 말씀은 한편으로는 유대인들의 선민 의식과 배타적인 자세를 교정시켜 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방인들에게 소망을 주고 있습니다.  바울식으로 설명하자면,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미치므로 차별이 있을 수 없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입니다(롬 3:22; 엡 2:11-22).  즉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하나의 무리가 되어 함께 구원의 은혜를 누릴 것입니다. 


5. “양의 문”과 “선한 목자”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유대인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19-21절)

 

늘 그렇듯이 유대인들 사이에 또다시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귀신이 들려 미쳤다”고 비난하면서 예수의 선포를 무시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귀신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합니다.  이들은 예수께서 소경을 고치신 사건을 생각하면서 “귀신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어쨌든 유대인들 사이에 다소 견해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두 부류 모두 결국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기만 하고 깨닫지 못하는 차원에 머무르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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