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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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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를 찾습니다.

(행11장 19 - 26절)  바나바를 찾습니다.    제가 양림교회에 오기 전에 사역하던 곳은 배를 타고 동남아시아 태평양을 순회하며 복음전도사역을 하던 한나호입니다. 2001년 하나님의 은혜로 1800톤의 커다란 배를 일본으로부터 인수하여 지금은 남태평양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에는 배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단체가 몇 군데 있습니다.  예수전도단에는 머쉬십이라고 하여, 가는 곳마다 환자들을 돌보는 사역을 하고, O.M이라는 선교단체에서는 둘러스, 로고스라는 배를 통해 복음전도와 서적판매 등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나 선교회의 대표목사님께서도 O.M에 속한 둘러스에서 처음 선교사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한국교회에서 목사로써 선교사로 파송 받았을 때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많은 환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둘러스 배에서 하던 사역은 식당에서 감자 깎는 일이었습니다.  배가 정지해 있을 때는 해볼만한데 항해를 하면, 멀미 때문에 도저히 식당에 들어가는 것이 쉽질 않았다고 합니다.  그 날도  항해가 힘이 들어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을 만큼이나 힘이 들고  쉴 새 없이 구토가 나와서 견딜 수가 없어서 침대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얼마 후 식당에서 함께 일하는 아프리카의 한 청년이 욕설을 하면서 빨리 와서 네 임무를 감당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도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어서, 침대에 있는데 두 번째로 침실로 온 이 흑인 청년은 목사님의 멱살을 잡아끌면서 식당으로 끌고 가더랍니다. 그리고는 산더미처럼 쌓인 감자를 빨리 깍으라고 감자더미에 던져버렸습니다.        베드로처럼 설교할 때마다 3000명 & 5000명이 회개하고 돌아올 줄 알았던 선교현장은  하루에 3천개의 감자를 깎는 일을 해야 한다는 설음과 고된 일로 날마다 눈물과 슬픔으로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자를 깎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속에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지금 누구를 위해 감자를 깍고 있느냐?”  그 음성을 듣는 순간 그는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됨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감자를 깎을 때마다 찬양이 절로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는 모든 일에 기쁨으로 사역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 영어 이름이 바나바입니다.    그렇게 감자를 깍던 선교사를 훈련시키셔서, 하나님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복음 선교선의 대표로 일하게 하셨고 현재는 남태평양 팔라우라는 조그만 나라에서 70여명의 선교사를 책임지고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바나바에 대해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바나바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곳은  사도행전 4: 36-37입니다.  [사도행전4장 36-37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그 이름의 뜻이 “위로의 아들”이라고 풀이되어있는데, 바로 그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위로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즉 다른 사람의 권위를 세워주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바나바는 당시 유무상통하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밭을 팔아서 사도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5장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통해 잘 알 듯이 초대교회 모든 사람이 자신의 것을 다 내어놓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바나바는 자신이 가진 것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알았습니다. 바로 청지기 정신을 소유했다는 것입니다. 청지기 정신이란 내가 소유하고 있다고 내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또한 철저하게 청지기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의 건강도, 사역도, 돈도 지식도,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주심을 그것을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도록 기쁨을 주신 것입니다.   바나바처럼 우리도 자신의 것을 나눌 수 있는  청지기 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바나바가 나오는 곳은 행 9: 27입니다. [9장27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바나바가 사도들에게 사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울이 누구였습니까?  몇일 전까지 예수 믿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고, 죽이고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기가 예수를 만났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접근을 합니다.  이럴 경우 대개는  그런 사람을 의심하면서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습니다. 당시에 예수님의 사도들도 그를 의심하였습니다.  사울이 다가 갈수록 제자들은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빈 라덴이 예수를 믿겠다고 다가온다면 그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어제 우리 집에 도둑질을 했던 사람이 오늘 나에게 예수님을 믿는다고 접근한다면 그를 믿어줄 수 있겠습니까?  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그런 것처럼 갑자기 그렇게 핍박하던 사울을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게 보입니다. 그럼에도  바나바는 사도들에게 사울을 데리고 가서 소개합니다.      바나바는 사람의 가능성을 믿는 순수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 바나바의 소개로 핍박자였던 사울이 사도들에게  인정받는 기회가 되었고, 사울이 바울로서 복음전하는 최전방에 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사도행전 15장 36-40은 제 2차 선교여행을 떠나기 전에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선교여행중간에 떠나버린  요한 마가의 문제로 크게 싸움을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바울은 중도에 하나님의 일을 소홀히 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여겼지만, 바나바는 한번의 기회를 더 주어  데려가자고 합니다. 비록 마가가 비록 실패한 사람이지만 바나바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변화시키셔서 사용하실 것을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두 사람은 따로 선교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렇게 충성스럽게 보이지 않았던 마가는 나중에  교회의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었고, 마가복음을 저술한  일꾼이 됩니다. 실수를 하였어도 그에게 용기를 주어서 다시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게 사람을 믿어주었던 바나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바나바는 그 이름대로 위로하는 사람으로 일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실수를 한 번 더 용납해주고 기회를 줄 수 있는 사람이 교회에서는 필요합니다.    세 번째로 바나바가 등장하는 것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예루살렘에 핍박이 일어나자 성도들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흩어지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유대인에게만 전파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방인들은 구원이 없다고 보았고, 이방인에게는 영혼도 없고, 이방인이 죽으면 지옥에 불쏘시개로 쓴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디옥에 이르러 몇몇 사람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믿는 사람이 생겼다는 소문이 예루살렘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누군가를 보내어 그들을 지도하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 지역은 어렵고,  힘들고 아무도 가기 싫어하는 곳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들려오는 것은 소문뿐이었기에 더더욱 사람을 보내는 것이 모험처험 보였습니다.      그때 사도들은 바나바를 지목하게 되었고, 바나바를 그곳에 보냅니다. 바나바는 평상시의 삶에서 언제든지 순종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도자가 안심하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바나바는 아무런 불평이나 원망없이 순종하며 그곳에 갔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통로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일이 어렵고 힘든 것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름으로 그 일을 맡게되면 순종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바나바의 순종은 안디옥교회를 세우게 되었고, 안디옥교회를 세계선교의  전초기지가 되게하는 축복이 임하였던 것입니다.      구약성경 사무엘 상15:22절에서도 “순종은 제사보다 낫다고” 말씀하며, 신명기 26장 16절은“ 마음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고 말씀하며 우리들에게 순종을 강조합니다. 때론 나와 생각이 다르고 이해가 다를지라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순종으로 앞장서서 일하는 바나바와 같은 청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어떻게 이방인 지역에 사람을 보낼 수 있게 되었는지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도록 미리 10장 고넬료 사건을 통하여 베드로에게 계시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 또한 이방인에게  구원이 있다는 것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도자에게 먼저 하나님의 계획을 보이사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계시를 보고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에 바나바를 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계시로 보여주신 하나님은 오늘도 교회 지도자 목사님에게 먼저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고  교회가 바르게 가야할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런 의미로 우리 성도님들은 목사님들을 위해 기도해야하며, 하나님께서 목사님께 부여하신 하나님의 방법을 바나바처럼 믿음으로 순종하여 아름다운 하나님의 교회를 만들어가는 축복이 임하길 원합니다. 이런 순종은 결국 사도행전 1장 8절“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예언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 서게 된 것입니다.    바나바가 간 것이 소문만 듣고 간 것이기에 그 길이 너무나 힘들게 보입니다. 그럼에도 23절은 보면 그는 [23절-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방인 지역 처음으로 가자마자  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황무지 같은 그 곳에서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습니다. 여러분 구원의 복음이 한번도 주어지지 않았던 이방인지역에 처음으로 신앙공동체가 생겼으니 얼마나 문제가 많았겠습니까? 예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니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러나 바나바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본다면  우리가 하는 어떤 일이 힘이 들고 어렵겠습니까?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하나님의 은혜에 붙잡혀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매일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매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본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의 모든 일을  기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보면 우리의 일이 아무리 어려워도 기쁨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 못하면 아무리 작고, 쉬운 일에도 불평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쁨이 있으면 그곳이 천국이 됩니다. 모두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면  어떤 좋은 일이 있어도, 지옥처럼 따분하고 괴롭게 느껴집니다.    [24절-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는 성경에 몇 번 기록되지 않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를 극찬하고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다고 말입니다. 그는 삶에서 착한 모습이 있었고, 일을 할 때도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였습니다. 그의 이러한 삶은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는 복을 경험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우리도 이런 칭찬 듣는 사람이 됩시다.  “형제님은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시고 너무나 착한 분입니다”   바나바는 열심히 일하여 안디옥 교회가 부흥을 하였습니다.    바나바의 탁월한 점이 또 나옵니다. 바로 동역의 힘을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었으나 자신의 고향에 묻혀 사는 사울을 찾아서 자신의 동역자로 삼았습니다.  보통사람이 실수하기 쉬운 것 중의 하나가 자신이 맡은 일이 성공을 하면 다른 사람과 나누려고 하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자신보다 훨씬 탁월한 사람을 찾아 동역자로 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유능한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함께 동역하기보다  경쟁대상으로 여기기 쉽고, 자신의 인기나 권위가 손상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사울의 가능성을 알았고, 그의 유능함을 높여주었습니다.   이 수고가 결국 사울을 바울로 만든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협력하여 열심히 일하여 안디옥 교회는 1년이 지나자 하나의 이름을 듣습니다. [26절에 보면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 칭함-]  이 별명은 안디옥의 교인들이 무언가  다르기에 붙혀진 것입니다. 이것은 두 사람이 예수님에 대하여 가르친 것이 안디옥교회 성도들의 삶에 드러나게 나타났음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 별명은 예수믿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 이름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안디옥 교회 성도들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한번도 본적도 없지만 그들의 삶의 모습을 통하여 예수님이 그런 분이시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예수님을 닮은 사람, 예수같은 사람이라 칭해준 것입니다. 바로 이 모습이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갈 모습이며, 모본입니다.   우리 양림교회 성도들을 보고 불신자들이 예수님을 볼 수 있다면 이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바나바가 등장하는 곳이 13장입니다. 13장은 안디옥교회가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하는 내용입니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의 핵심 일꾼입니다. 그는 말로만 선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자신이 그 말씀대로 살겠다는 결단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결단이 결국 바나바가 선교사로 나가게 된 것입니다. 물론 성령님께서 지도하시지만 평소의 삶에서 주님 앞에 철저한 고백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평소에 주님 말씀을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실천하는 삶의 열매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실천이 있을 때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에서 하시고 싶어 하시는 일을 마음껏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바나바의 이름은 15장까지 나옵니다. 처음 바나바가 등장한 후에 계속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이름은 바나바가 먼저 나옵니다. 성서에 먼저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바나바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13장13절 이후부터는 갑자기 바울의 이름이 먼저 나오고 바나바는 조연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13:13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13: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13: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15장 2바울과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15장 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로 결정하니 곧 형제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15: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바나바는 바울이 자신보다 더 크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을 결코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쓰임 받도록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서서히 무대 뒤에서 바울을 지켜보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이름처럼 철저히 다른 사람의 권위를 세워주는 역할을 하면서 성서에서 조용히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화려하게 자신을 나타내지도 않았으면서도, 주님께서 맡겨준 일에 최선을 다하여 순종하고, 그 주위의 사람을 철저하게 세워주는 위로의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바나바와 같은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청지기 정신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바나바를 찾습니다. 사람을 믿어주며, 협력하여 함께 일해 나가는 바나바를 찾습니다.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일에도 순종하며 기쁨으로 일하는 바나바를 찾습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는 바나바를 찾습니다. 자신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을 보여줄 수 있는 바나바를 찾습니다. 작지만 커다란 능력으로 헌신할 바나바를 찾습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수고와 일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바나바를 찾습니다. 동역자를 높여주면서 자신의 모습을 감출 수 있는 바나바를 찾습니다. 우리 양림교회에 이런 바나바가 많아져서 안디옥교회처럼 “큰 무리가 주께 더함” 과 같은 축복이 임하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sermon_03
청소년설교
작성자 김중곤
작성일 2006-07-09 17:44
설교주제 동역자, 헌신, 섬김, 순종
설교대상 청년
성경본문 사도행전11장 19-26절
키워드 격려, 헌신, 순종
ㆍ추천: 0  ㆍ조회: 1198      
바나바를 찾습니다.
(행11장 19 - 26절)  바나바를 찾습니다.

   제가 양림교회에 오기 전에 사역하던 곳은 배를 타고 동남아시아 태평양을 순회하며 복음전도사역을 하던 한나호입니다. 2001년 하나님의 은혜로 1800톤의 커다란 배를 일본으로부터 인수하여 지금은 남태평양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에는 배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단체가 몇 군데 있습니다.  예수전도단에는 머쉬십이라고 하여, 가는 곳마다 환자들을 돌보는 사역을 하고, O.M이라는 선교단체에서는 둘러스, 로고스라는 배를 통해 복음전도와 서적판매 등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나 선교회의 대표목사님께서도 O.M에 속한 둘러스에서 처음 선교사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한국교회에서 목사로써 선교사로 파송 받았을 때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많은 환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둘러스 배에서 하던 사역은 식당에서 감자 깎는 일이었습니다.  배가 정지해 있을 때는 해볼만한데 항해를 하면, 멀미 때문에 도저히 식당에 들어가는 것이 쉽질 않았다고 합니다.  그 날도  항해가 힘이 들어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을 만큼이나 힘이 들고  쉴 새 없이 구토가 나와서 견딜 수가 없어서 침대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얼마 후 식당에서 함께 일하는 아프리카의 한 청년이 욕설을 하면서 빨리 와서 네 임무를 감당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도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어서, 침대에 있는데 두 번째로 침실로 온 이 흑인 청년은 목사님의 멱살을 잡아끌면서 식당으로 끌고 가더랍니다. 그리고는 산더미처럼 쌓인 감자를 빨리 깍으라고 감자더미에 던져버렸습니다.  
 
   베드로처럼 설교할 때마다 3000명 & 5000명이 회개하고 돌아올 줄 알았던 선교현장은  하루에 3천개의 감자를 깎는 일을 해야 한다는 설음과 고된 일로 날마다 눈물과 슬픔으로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자를 깎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속에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지금 누구를 위해 감자를 깍고 있느냐?”  그 음성을 듣는 순간 그는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됨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감자를 깎을 때마다 찬양이 절로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는 모든 일에 기쁨으로 사역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 영어 이름이 바나바입니다.

   그렇게 감자를 깍던 선교사를 훈련시키셔서, 하나님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복음 선교선의 대표로 일하게 하셨고 현재는 남태평양 팔라우라는 조그만 나라에서 70여명의 선교사를 책임지고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바나바에 대해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바나바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곳은  사도행전 4: 36-37입니다.
 [사도행전4장 36-37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그 이름의 뜻이 “위로의 아들”이라고 풀이되어있는데, 바로 그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위로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즉 다른 사람의 권위를 세워주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바나바는 당시 유무상통하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밭을 팔아서 사도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5장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통해 잘 알 듯이 초대교회 모든 사람이 자신의 것을 다 내어놓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바나바는 자신이 가진 것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알았습니다. 바로 청지기 정신을 소유했다는 것입니다. 청지기 정신이란 내가 소유하고 있다고 내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또한 철저하게 청지기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의 건강도, 사역도, 돈도 지식도,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주심을 그것을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도록 기쁨을 주신 것입니다.   바나바처럼 우리도 자신의 것을 나눌 수 있는  청지기 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바나바가 나오는 곳은 행 9: 27입니다. [9장27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바나바가 사도들에게 사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울이 누구였습니까?  몇일 전까지 예수 믿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고, 죽이고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기가 예수를 만났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접근을 합니다.  이럴 경우 대개는  그런 사람을 의심하면서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습니다. 당시에 예수님의 사도들도 그를 의심하였습니다.  사울이 다가 갈수록 제자들은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빈 라덴이 예수를 믿겠다고 다가온다면 그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어제 우리 집에 도둑질을 했던 사람이 오늘 나에게 예수님을 믿는다고 접근한다면 그를 믿어줄 수 있겠습니까?  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그런 것처럼 갑자기 그렇게 핍박하던 사울을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게 보입니다. 그럼에도  바나바는 사도들에게 사울을 데리고 가서 소개합니다.  

   바나바는 사람의 가능성을 믿는 순수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 바나바의 소개로 핍박자였던 사울이 사도들에게  인정받는 기회가 되었고, 사울이 바울로서 복음전하는 최전방에 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사도행전 15장 36-40은 제 2차 선교여행을 떠나기 전에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선교여행중간에 떠나버린  요한 마가의 문제로 크게 싸움을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바울은 중도에 하나님의 일을 소홀히 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여겼지만, 바나바는 한번의 기회를 더 주어  데려가자고 합니다. 비록 마가가 비록 실패한 사람이지만 바나바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변화시키셔서 사용하실 것을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두 사람은 따로 선교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렇게 충성스럽게 보이지 않았던 마가는 나중에  교회의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었고, 마가복음을 저술한  일꾼이 됩니다. 실수를 하였어도 그에게 용기를 주어서 다시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게 사람을 믿어주었던 바나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바나바는 그 이름대로 위로하는 사람으로 일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실수를 한 번 더 용납해주고 기회를 줄 수 있는 사람이 교회에서는 필요합니다.

   세 번째로 바나바가 등장하는 것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예루살렘에 핍박이 일어나자 성도들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흩어지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유대인에게만 전파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방인들은 구원이 없다고 보았고, 이방인에게는 영혼도 없고, 이방인이 죽으면 지옥에 불쏘시개로 쓴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디옥에 이르러 몇몇 사람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믿는 사람이 생겼다는 소문이 예루살렘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누군가를 보내어 그들을 지도하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 지역은 어렵고,  힘들고 아무도 가기 싫어하는 곳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들려오는 것은 소문뿐이었기에 더더욱 사람을 보내는 것이 모험처험 보였습니다.  

   그때 사도들은 바나바를 지목하게 되었고, 바나바를 그곳에 보냅니다. 바나바는 평상시의 삶에서 언제든지 순종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도자가 안심하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바나바는 아무런 불평이나 원망없이 순종하며 그곳에 갔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통로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일이 어렵고 힘든 것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름으로 그 일을 맡게되면 순종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바나바의 순종은 안디옥교회를 세우게 되었고, 안디옥교회를 세계선교의  전초기지가 되게하는 축복이 임하였던 것입니다.  

   구약성경 사무엘 상15:22절에서도 “순종은 제사보다 낫다고” 말씀하며, 신명기 26장 16절은“ 마음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고 말씀하며 우리들에게 순종을 강조합니다. 때론 나와 생각이 다르고 이해가 다를지라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순종으로 앞장서서 일하는 바나바와 같은 청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어떻게 이방인 지역에 사람을 보낼 수 있게 되었는지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도록 미리 10장 고넬료 사건을 통하여 베드로에게 계시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 또한 이방인에게  구원이 있다는 것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도자에게 먼저 하나님의 계획을 보이사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계시를 보고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에 바나바를 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계시로 보여주신 하나님은 오늘도 교회 지도자 목사님에게 먼저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고  교회가 바르게 가야할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런 의미로 우리 성도님들은 목사님들을 위해 기도해야하며, 하나님께서 목사님께 부여하신 하나님의 방법을 바나바처럼 믿음으로 순종하여 아름다운 하나님의 교회를 만들어가는 축복이 임하길 원합니다. 이런 순종은 결국 사도행전 1장 8절“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예언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 서게 된 것입니다.

   바나바가 간 것이 소문만 듣고 간 것이기에 그 길이 너무나 힘들게 보입니다. 그럼에도 23절은 보면 그는 [23절-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방인 지역 처음으로 가자마자  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황무지 같은 그 곳에서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습니다. 여러분 구원의 복음이 한번도 주어지지 않았던 이방인지역에 처음으로 신앙공동체가 생겼으니 얼마나 문제가 많았겠습니까? 예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니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러나 바나바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본다면  우리가 하는 어떤 일이 힘이 들고 어렵겠습니까?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하나님의 은혜에 붙잡혀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매일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매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본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의 모든 일을  기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보면 우리의 일이 아무리 어려워도 기쁨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 못하면 아무리 작고, 쉬운 일에도 불평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쁨이 있으면 그곳이 천국이 됩니다. 모두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면  어떤 좋은 일이 있어도, 지옥처럼 따분하고 괴롭게 느껴집니다.

   [24절-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는 성경에 몇 번 기록되지 않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를 극찬하고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다고 말입니다. 그는 삶에서 착한 모습이 있었고, 일을 할 때도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였습니다. 그의 이러한 삶은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는 복을 경험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우리도 이런 칭찬 듣는 사람이 됩시다.  “형제님은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시고 너무나 착한 분입니다”   바나바는 열심히 일하여 안디옥 교회가 부흥을 하였습니다.

   바나바의 탁월한 점이 또 나옵니다. 바로 동역의 힘을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었으나 자신의 고향에 묻혀 사는 사울을 찾아서 자신의 동역자로 삼았습니다.  보통사람이 실수하기 쉬운 것 중의 하나가 자신이 맡은 일이 성공을 하면 다른 사람과 나누려고 하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자신보다 훨씬 탁월한 사람을 찾아 동역자로 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유능한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함께 동역하기보다  경쟁대상으로 여기기 쉽고, 자신의 인기나 권위가 손상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사울의 가능성을 알았고, 그의 유능함을 높여주었습니다.   이 수고가 결국 사울을 바울로 만든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협력하여 열심히 일하여 안디옥 교회는 1년이 지나자 하나의 이름을 듣습니다. [26절에 보면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 칭함-]  이 별명은 안디옥의 교인들이 무언가  다르기에 붙혀진 것입니다. 이것은 두 사람이 예수님에 대하여 가르친 것이 안디옥교회 성도들의 삶에 드러나게 나타났음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 별명은 예수믿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 이름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안디옥 교회 성도들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한번도 본적도 없지만 그들의 삶의 모습을 통하여 예수님이 그런 분이시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예수님을 닮은 사람, 예수같은 사람이라 칭해준 것입니다. 바로 이 모습이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갈 모습이며, 모본입니다.   우리 양림교회 성도들을 보고 불신자들이 예수님을 볼 수 있다면 이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바나바가 등장하는 곳이 13장입니다. 13장은 안디옥교회가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하는 내용입니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의 핵심 일꾼입니다. 그는 말로만 선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자신이 그 말씀대로 살겠다는 결단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결단이 결국 바나바가 선교사로 나가게 된 것입니다. 물론 성령님께서 지도하시지만 평소의 삶에서 주님 앞에 철저한 고백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평소에 주님 말씀을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실천하는 삶의 열매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실천이 있을 때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에서 하시고 싶어 하시는 일을 마음껏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바나바의 이름은 15장까지 나옵니다. 처음 바나바가 등장한 후에 계속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이름은 바나바가 먼저 나옵니다. 성서에 먼저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바나바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13장13절 이후부터는 갑자기 바울의 이름이 먼저 나오고 바나바는 조연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13:13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13: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13: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15장 2바울과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15장 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로 결정하니 곧 형제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15: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바나바는 바울이 자신보다 더 크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을 결코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쓰임 받도록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서서히 무대 뒤에서 바울을 지켜보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이름처럼 철저히 다른 사람의 권위를 세워주는 역할을 하면서 성서에서 조용히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화려하게 자신을 나타내지도 않았으면서도, 주님께서 맡겨준 일에 최선을 다하여 순종하고, 그 주위의 사람을 철저하게 세워주는 위로의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바나바와 같은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청지기 정신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바나바를 찾습니다.
사람을 믿어주며, 협력하여 함께 일해 나가는 바나바를 찾습니다.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일에도 순종하며 기쁨으로 일하는 바나바를 찾습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는 바나바를 찾습니다.
자신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을 보여줄 수 있는 바나바를 찾습니다.
작지만 커다란 능력으로 헌신할 바나바를 찾습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수고와 일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바나바를 찾습니다.
동역자를 높여주면서 자신의 모습을 감출 수 있는 바나바를 찾습니다.
우리 양림교회에 이런 바나바가 많아져서 안디옥교회처럼 “큰 무리가 주께 더함” 과 같은 축복이 임하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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