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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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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을 만나신 하나님

사울을 만나신 하나님(행 9:1-9)    심리학 가운데 발달심리학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이 것은 인간의 성장 과정을 몇 개의 단계로 나누어서 분석하는 것입니다. 연대에 따라 유아기(乳兒期)· 영아기(幼兒期)· 아동기· 청년기· 성인기· 노년기 등 각 발달기로 나누어 그 특색과 상호관계를 연구하는 종적인 구분과 지각· 감정· 언어· 지능· 인격 등 각 정신기능에 대해 그 발달양상이나 관련을 밝히는 횡적 구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삶을 두 단계로만 나눕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이전의 삶과  그리스도 이후의 삶입니다. 그리스도 이전의 시기는 나 자신만을 믿고 살아가는 시기입니다.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라고 믿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결정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 이후의 시기는 예수를 믿고 살아가기 시작한 시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자신의 결정이 완전하지 않음을 고백하고 주님으로 내 삶의 왕이 되시게 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런 의미로 오랫동안 교회에 출석했을지라도 그의 삶이 여전히 자신만을 믿고, 자신의 결정과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그리스도 이전의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그런 크리스챤이 너무나 많은 것이 아픈 일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교회는 다녀도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살고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그 사람은 크리스챤이 아닙니다.    한 목사님이 심방을 가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곳은 순에서 총무로 일하시는 집사님 집이었는데 거실에 들어서자 목사님은 거대한 달마도 그림을 보고 약간 놀랬답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다가 그 그림을 떼어낼 결단을 요청했답니다. 그런데 그분은 결코 그럴 수없다면서 조상이 나에게 주는 능력과 힘을 포기할 수 없노라고 했답니다.    순 총무를 맡아서 섬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여전히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지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순의 총무로 집사의 직분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달마도 하나 떼어내지 못하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신앙생활은 엄밀히 말해서 결단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믿음의 주님으로 고백한다는 의미는 이제까지 내가 의지하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만을 의지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신앙생활에서 중간지대란 있을 수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둘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믿고 세상도 믿는다는 말은 사실 거짓말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차든지 덥든지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마지막 부분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마음입니다. 15-16절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통하여 버리리라”사랑하는 청년들이여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갑시다.    사울의 신앙은 그런 면에서 참 부럽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 사울은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목숨 걸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자 그는 목숨 걸고 예수님을 위해 살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신앙생활입니다. 사울의 이러한 주님을 만나는 전환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다메섹 체험’이라는 과정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없이하려고 대제사장에게 가서 공문을 청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서 예수님은 거짓 메시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의 열심이 얼마나 특심했던지 외국에까지가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할 정도였습니다.    자기 자신이 가진 확신과 신념, 정의감, 의협심이 옳다고 생각했던 사울에게 다메섹에서의 체험은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자기 소신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우주의 생각이며 불변의 법칙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나약한 사람인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바로 사울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커다란 충격을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결국 자신이 옳다는 생각이 깨뜨려졌고 그의 인생은 변하게 된 것입니다.    잠14:12“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결정하고 걷는 걸음 속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대단히 잘못된 망상의 길, 자기 파멸의 길, 지옥의 길 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경이 계시해주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아니면 내 뜻, 내 생각, 내 고집대로 결단하는가만 남아있는 셈입니다.    사울은 자기가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고, 옳지 못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잡아서 심판을 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극히 잘못된 길을 걷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이전의 사울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열심으로 살던 사울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는데 가장 커다란 장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자아가 강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고집을 꺾고 신앙에 들어서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신앙이 성숙하지 못하는 가장 커다란 장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자기 자신의 고집입니다. 자신의 잘못된 고정관념이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됩니다. 사실 성령훼방죄가 가장 큰 죄잖습니까? 성령훼방죄는 무엇입니까? 성령님의 사역을 가로막는 행위 아닙니까?    사울은 드디어 자신이 핍박했던 주님의 모습을 보고,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다메섹에서 거꾸러졌습니다. 이때 사울이 얼마나 충격이었겠습니까? 자신의 열심과 생각으로 예수님은 메시야도 아니고, 거짓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외국에까지 가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 가두며 박해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라고 생각했는데 메시야시며 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예수님을 만난 경험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특히 자신이 세상에게 최고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불행합니다. 자신의 지식이 마치 완벽한 결정이라고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불쌍합니다. (한 교회 지도자의 말 - 100년 된 고목에서 어떻게 꽃피고 열매 맺는가? )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정말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만일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없이 직분을 얻고, 교회 다니는 횟수가 많아진다면 그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미지근하니 하나님을 만난 경험도 없으면서 만난 것처럼 하지 말고, 못 만났다면 만남을 위해서 간절히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우울증을 앓고 있던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 우울증으로 말미암아 심각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젊은이는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그는 면도칼을 꺼내어 자신의 동맥을 끊어버릴 결심으로 세면대 앞에 섰습니다. 그러나 면도칼을 손에 쥔 순간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그는 갑자기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고, 마음속으로 “하나님, 한번만 삶의 기회를 주시면 제가 복음을 위해서 살겠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의 마음 가운데 잔잔한 평화가 임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유명한 D.L 무디의 제자였고, 전 세계의 복음의 위대한 영향력과 충격을 주었던 토레이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위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늘로부터 빛이 사울을 둘러 비출 때 사울을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언제 사울이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예수님은 가짜고 거짓말쟁이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을 박해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네가 나를 박해했다고 말씀합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믿음 때문에 당한 박해의 현장에서 주님께서도 함께 박해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렵고 힘든 순간에도 주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너무 힘들어 우리와 함께 하신 주님을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지 않는 순간이 있다고 기억되는 순간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단 한번도 우리를 떠나지도, 우리를 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을 만났다면 이제 달려 나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sermon_03
청소년설교
작성자 김중곤
작성일 2006-06-18 21:07
설교주제 구원, 믿음
설교대상 청년
성경본문 사도행전9:1-9
키워드 구원, 믿음
ㆍ추천: 0  ㆍ조회: 509      
사울을 만나신 하나님
사울을 만나신 하나님(행 9:1-9)

   심리학 가운데 발달심리학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이 것은 인간의 성장 과정을 몇 개의 단계로 나누어서 분석하는 것입니다. 연대에 따라 유아기(乳兒期)· 영아기(幼兒期)· 아동기· 청년기· 성인기· 노년기 등 각 발달기로 나누어 그 특색과 상호관계를 연구하는 종적인 구분과 지각· 감정· 언어· 지능· 인격 등 각 정신기능에 대해 그 발달양상이나 관련을 밝히는 횡적 구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삶을 두 단계로만 나눕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이전의 삶과  그리스도 이후의 삶입니다. 그리스도 이전의 시기는 나 자신만을 믿고 살아가는 시기입니다.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라고 믿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결정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 이후의 시기는 예수를 믿고 살아가기 시작한 시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자신의 결정이 완전하지 않음을 고백하고 주님으로 내 삶의 왕이 되시게 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런 의미로 오랫동안 교회에 출석했을지라도 그의 삶이 여전히 자신만을 믿고, 자신의 결정과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그리스도 이전의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그런 크리스챤이 너무나 많은 것이 아픈 일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교회는 다녀도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살고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그 사람은 크리스챤이 아닙니다.

   한 목사님이 심방을 가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곳은 순에서 총무로 일하시는 집사님 집이었는데 거실에 들어서자 목사님은 거대한 달마도 그림을 보고 약간 놀랬답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다가 그 그림을 떼어낼 결단을 요청했답니다. 그런데 그분은 결코 그럴 수없다면서 조상이 나에게 주는 능력과 힘을 포기할 수 없노라고 했답니다.

   순 총무를 맡아서 섬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여전히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지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순의 총무로 집사의 직분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달마도 하나 떼어내지 못하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신앙생활은 엄밀히 말해서 결단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믿음의 주님으로 고백한다는 의미는 이제까지 내가 의지하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만을 의지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신앙생활에서 중간지대란 있을 수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둘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믿고 세상도 믿는다는 말은 사실 거짓말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차든지 덥든지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마지막 부분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마음입니다. 15-16절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통하여 버리리라”사랑하는 청년들이여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갑시다.

   사울의 신앙은 그런 면에서 참 부럽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 사울은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목숨 걸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자 그는 목숨 걸고 예수님을 위해 살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신앙생활입니다. 사울의 이러한 주님을 만나는 전환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다메섹 체험’이라는 과정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없이하려고 대제사장에게 가서 공문을 청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서 예수님은 거짓 메시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의 열심이 얼마나 특심했던지 외국에까지가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할 정도였습니다.

   자기 자신이 가진 확신과 신념, 정의감, 의협심이 옳다고 생각했던 사울에게 다메섹에서의 체험은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자기 소신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우주의 생각이며 불변의 법칙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나약한 사람인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바로 사울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커다란 충격을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결국 자신이 옳다는 생각이 깨뜨려졌고 그의 인생은 변하게 된 것입니다.

   잠14:12“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결정하고 걷는 걸음 속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대단히 잘못된 망상의 길, 자기 파멸의 길, 지옥의 길 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경이 계시해주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아니면 내 뜻, 내 생각, 내 고집대로 결단하는가만 남아있는 셈입니다.

   사울은 자기가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고, 옳지 못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잡아서 심판을 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극히 잘못된 길을 걷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이전의 사울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열심으로 살던 사울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는데 가장 커다란 장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자아가 강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고집을 꺾고 신앙에 들어서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신앙이 성숙하지 못하는 가장 커다란 장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자기 자신의 고집입니다. 자신의 잘못된 고정관념이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됩니다. 사실 성령훼방죄가 가장 큰 죄잖습니까? 성령훼방죄는 무엇입니까? 성령님의 사역을 가로막는 행위 아닙니까?

   사울은 드디어 자신이 핍박했던 주님의 모습을 보고,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다메섹에서 거꾸러졌습니다. 이때 사울이 얼마나 충격이었겠습니까? 자신의 열심과 생각으로 예수님은 메시야도 아니고, 거짓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외국에까지 가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 가두며 박해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라고 생각했는데 메시야시며 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예수님을 만난 경험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특히 자신이 세상에게 최고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불행합니다. 자신의 지식이 마치 완벽한 결정이라고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불쌍합니다. (한 교회 지도자의 말 - 100년 된 고목에서 어떻게 꽃피고 열매 맺는가? )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정말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만일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없이 직분을 얻고, 교회 다니는 횟수가 많아진다면 그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미지근하니 하나님을 만난 경험도 없으면서 만난 것처럼 하지 말고, 못 만났다면 만남을 위해서 간절히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우울증을 앓고 있던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 우울증으로 말미암아 심각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젊은이는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그는 면도칼을 꺼내어 자신의 동맥을 끊어버릴 결심으로 세면대 앞에 섰습니다. 그러나 면도칼을 손에 쥔 순간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그는 갑자기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고, 마음속으로 “하나님, 한번만 삶의 기회를 주시면 제가 복음을 위해서 살겠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의 마음 가운데 잔잔한 평화가 임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유명한 D.L 무디의 제자였고, 전 세계의 복음의 위대한 영향력과 충격을 주었던 토레이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위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늘로부터 빛이 사울을 둘러 비출 때 사울을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언제 사울이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예수님은 가짜고 거짓말쟁이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을 박해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네가 나를 박해했다고 말씀합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믿음 때문에 당한 박해의 현장에서 주님께서도 함께 박해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렵고 힘든 순간에도 주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너무 힘들어 우리와 함께 하신 주님을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지 않는 순간이 있다고 기억되는 순간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단 한번도 우리를 떠나지도, 우리를 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을 만났다면 이제 달려 나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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