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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교
한일장신대학교
호남신학대학교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행 5:33-42)    호남신학대학을 다니면서 “기뻐하는 사람들”이라는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동아리 활동중 한가지는 일주일에 한번씩 충장로 우체국앞에서 노방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노방전도는 전도사에게 당연하고 쉽게 보이지만 막상 수없이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래를 부르기도하고,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다 여러 번 경찰에 의해서 제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해태아줌마에 의해서 물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다보면 별의 별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얼마 전 우리교회에 등록한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너무 몸이 약해서 무당을 찾아갔는데 “당신은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병을 고칠 수 없다고”해서 등록했다고 합니다. 때론 무당이 전도를 하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청년을 등록시킨 무당은 청년을 교회에 가라고 전도를 했다고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그 사람이 수 십명의 사람을 교회에 가라고 권했을지라도 자신이 신앙의 고백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만나지 않으면 자신을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법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말리엘이라는 사람도 그런 종류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러합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 성령이 임하였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도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사도들은 계속 복음을 전하자 대제사장은  화를 내며 사도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둡니다.  오늘 본문 앞부분에는 감옥에 갇힌 사도들은 주의 사자가 옥문을 열어줌으로 다시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오늘 본문에서는 가말리엘이라는 율법교사의 도움으로 사도들이 죽음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예수님의 사도들을 건져준 가말리엘은 참 위대한 일을 한 것임에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가말리엘은 당시 바리새인의 탁월한 지도자로서, 당대에 가장  걸출한 지식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사도 바울도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부터 많은 거짓 메시야 운동이 있었지만 그 지도자가 죽으면 다 망해 버렸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의 활동도 거짓 메시야 운동이라면 그 지도자가 죽었으니 우리가 손대지 않아도 곧 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의 발언으로 인해 사도들은 채찍질만 당하고 놓임을 받았습니다. 율법교사 가말리엘은 좋은 일을 했습니다. 마치 무당이 자신을 찾아온 사람에게 교회에 나가라고 권면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가말리엘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의 신앙고백이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도들을 죽음에서 건지는 결정적인 일을 감당했지만 자신을 구원을 허락받지 못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원리를 발견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구원자라는 것을 아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알면서도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구원자라면 우리는 그 예수님을 믿고 섬겨야합니다.  모든 우선순위를 구원자 예수님께 두어서,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구원자 예수님께 의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구원자임을 알면서도, 믿지 않고,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행동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은 신앙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어쩌면 그 사람은 구원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자기 스스로 구원을 받았다고 착각하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구원자라는 의미는 나의 전부라는 것입니다.  나의 일부가 아닙니다.  나의 생애와 재산과 명예와 자녀와 미래와 영원의 주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가말리엘이  사도들을 석방시키는데 도움을 주기는 하였어도 그 자신은 구원을 받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을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은 예수님이 거짓 메시야라고 생각했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을 열심히 박해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줄로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즉시로 다메섹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했습니다. 바로 실천으로 옮겨서 이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것을  목숨을 다해 전했고, 섬겼습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의 자세입니다.    열왕기 18장은 하나님의 놀라운 불의 역사를 나타낸 갈멜산의 대결로 유명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를 하자 하나님께서는 3년6개월 동안 비를 내리지 않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백성들이 회개해야 옳음에도 왕은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합니다. 그때 참 신이 누군가 대결을 하자고 합니다. 백성들은 구름떼처럼 갈멜산에 구경왔습니다. 대결을 앞두고 엘리야가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왕상18:21“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엘리야가 우리에게도 말합니다. 어느 때까지 머뭇머뭇 거리려느냐? 하나님이 참 신이라면 하나님만 뜨겁게 사랑하라고요.        요한 계시록에서 예수님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보고 책망한 내용이 바로 그러한 내용입니다.  계3:15-16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미지근한 것은 사실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실로 믿고 예수님이 나의 전부라면 우리는 뜨거운 심장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만나주신 예수님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해야 바람직한 것입니다.  만일 차가워도 미지근해도 아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신앙은 지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실천이며, 결단이며, 삶의 전환 이어야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태어난 사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동방에서 별을 연구하는 박사들이 별을 따라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메시야를 찾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메시야를 찾을 때 당시 헤롯궁에 있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제사장과  서기관은 그 내용은 알았으나 메시야를 찾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야 되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자세가 아닙니다. 신앙이란 자기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섬기려는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을 알았다면 예수님을 예비하여야 마땅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 나서야 마땅했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행동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들으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아무리 자신이 하나님께 기도의 응답을 믿는다 할지라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결코 체험할 수 없는 법입니다. 내 자신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해야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기도로만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그것 뿐 이겠습니까? 우리 신앙생활의 모든 부분이 그러한 것입니다.    사실 신앙이 없는 사람보다 더 신앙생활에 장애가 되는 사람을 중간에 어중간히 끼어있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교회에 몇 번 다녀본 사람들, 예전에 성경을 조금 읽어보았다는 사람들, 기도해보았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며 외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들을 더 박해합니다.    그런 의미로 신앙생활이란 뜨거워야합니다. 주님만 향해 열려져야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 듣는 가말리엘과 제자들의 삶을 비교해보십시오. 중간지대에서 마치 하나님의 일을 옳게 여긴 가말리엘은 결국 미지근한 믿음, 아니 구원받지 못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반면에 고난 받으며 옥에 갇혔다가 매맞고 풀려난 제자들을 보십시오.  41-42절을 읽겠습니다. “41-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앞을  떠나니라 42-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제자들은 고난받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도 감격했습니다. 더 이상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진실로 사도행전 29장을 쓰기를 원합니까?  지식에 머무는 신앙에서 삶의 결단을 가지는 신앙을 가지십시오. 미지근한 신앙에서 뜨거운 신앙을 소유하십시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뜨겁게 사랑하십시다.

sermon_03
청소년설교
작성자 김중곤
작성일 2006-05-02 10:54
설교주제 뜨거운 신앙, 결단과 변화
설교대상 청년
성경본문 사도행전 5장 33-42
키워드 뜨겁게 사랑하라
ㆍ추천: 0  ㆍ조회: 780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행 5:33-42)

   호남신학대학을 다니면서 “기뻐하는 사람들”이라는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동아리 활동중 한가지는 일주일에 한번씩 충장로 우체국앞에서 노방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노방전도는 전도사에게 당연하고 쉽게 보이지만 막상 수없이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래를 부르기도하고,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다 여러 번 경찰에 의해서 제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해태아줌마에 의해서 물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다보면 별의 별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얼마 전 우리교회에 등록한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너무 몸이 약해서 무당을 찾아갔는데 “당신은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병을 고칠 수 없다고”해서 등록했다고 합니다. 때론 무당이 전도를 하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청년을 등록시킨 무당은 청년을 교회에 가라고 전도를 했다고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그 사람이 수 십명의 사람을 교회에 가라고 권했을지라도 자신이 신앙의 고백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만나지 않으면 자신을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법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말리엘이라는 사람도 그런 종류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러합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 성령이 임하였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도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사도들은 계속 복음을 전하자 대제사장은  화를 내며 사도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둡니다.  오늘 본문 앞부분에는 감옥에 갇힌 사도들은 주의 사자가 옥문을 열어줌으로 다시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오늘 본문에서는 가말리엘이라는 율법교사의 도움으로 사도들이 죽음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예수님의 사도들을 건져준 가말리엘은 참 위대한 일을 한 것임에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가말리엘은 당시 바리새인의 탁월한 지도자로서, 당대에 가장  걸출한 지식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사도 바울도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부터 많은 거짓 메시야 운동이 있었지만 그 지도자가 죽으면 다 망해 버렸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의 활동도 거짓 메시야 운동이라면 그 지도자가 죽었으니 우리가 손대지 않아도 곧 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의 발언으로 인해 사도들은 채찍질만 당하고 놓임을 받았습니다. 율법교사 가말리엘은 좋은 일을 했습니다. 마치 무당이 자신을 찾아온 사람에게 교회에 나가라고 권면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가말리엘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의 신앙고백이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도들을 죽음에서 건지는 결정적인 일을 감당했지만 자신을 구원을 허락받지 못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원리를 발견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구원자라는 것을 아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알면서도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구원자라면 우리는 그 예수님을 믿고 섬겨야합니다.  모든 우선순위를 구원자 예수님께 두어서,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구원자 예수님께 의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구원자임을 알면서도, 믿지 않고,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행동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은 신앙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어쩌면 그 사람은 구원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자기 스스로 구원을 받았다고 착각하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구원자라는 의미는 나의 전부라는 것입니다.  나의 일부가 아닙니다.  나의 생애와 재산과 명예와 자녀와 미래와 영원의 주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가말리엘이  사도들을 석방시키는데 도움을 주기는 하였어도 그 자신은 구원을 받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을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은 예수님이 거짓 메시야라고 생각했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을 열심히 박해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줄로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즉시로 다메섹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했습니다. 바로 실천으로 옮겨서 이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것을  목숨을 다해 전했고, 섬겼습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의 자세입니다.

   열왕기 18장은 하나님의 놀라운 불의 역사를 나타낸 갈멜산의 대결로 유명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를 하자 하나님께서는 3년6개월 동안 비를 내리지 않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백성들이 회개해야 옳음에도 왕은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합니다. 그때 참 신이 누군가 대결을 하자고 합니다. 백성들은 구름떼처럼 갈멜산에 구경왔습니다. 대결을 앞두고 엘리야가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왕상18:21“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엘리야가 우리에게도 말합니다. 어느 때까지 머뭇머뭇 거리려느냐? 하나님이 참 신이라면 하나님만 뜨겁게 사랑하라고요.
   
   요한 계시록에서 예수님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보고 책망한 내용이 바로 그러한 내용입니다.  계3:15-16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미지근한 것은 사실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실로 믿고 예수님이 나의 전부라면 우리는 뜨거운 심장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만나주신 예수님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해야 바람직한 것입니다.  만일 차가워도 미지근해도 아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신앙은 지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실천이며, 결단이며, 삶의 전환 이어야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태어난 사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동방에서 별을 연구하는 박사들이 별을 따라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메시야를 찾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메시야를 찾을 때 당시 헤롯궁에 있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제사장과  서기관은 그 내용은 알았으나 메시야를 찾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야 되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자세가 아닙니다. 신앙이란 자기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섬기려는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을 알았다면 예수님을 예비하여야 마땅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 나서야 마땅했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행동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들으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아무리 자신이 하나님께 기도의 응답을 믿는다 할지라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결코 체험할 수 없는 법입니다.
내 자신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해야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기도로만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그것 뿐 이겠습니까? 우리 신앙생활의 모든 부분이 그러한 것입니다.

   사실 신앙이 없는 사람보다 더 신앙생활에 장애가 되는 사람을 중간에 어중간히 끼어있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교회에 몇 번 다녀본 사람들, 예전에 성경을 조금 읽어보았다는 사람들, 기도해보았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며 외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들을 더 박해합니다.

   그런 의미로 신앙생활이란 뜨거워야합니다. 주님만 향해 열려져야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 듣는 가말리엘과 제자들의 삶을 비교해보십시오. 중간지대에서 마치 하나님의 일을 옳게 여긴 가말리엘은 결국 미지근한 믿음, 아니 구원받지 못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반면에 고난 받으며 옥에 갇혔다가 매맞고 풀려난 제자들을 보십시오.  41-42절을 읽겠습니다. “41-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앞을  떠나니라 42-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제자들은 고난받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도 감격했습니다. 더 이상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진실로 사도행전 29장을 쓰기를 원합니까?  지식에 머무는 신앙에서 삶의 결단을 가지는 신앙을 가지십시오. 미지근한 신앙에서 뜨거운 신앙을 소유하십시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뜨겁게 사랑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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