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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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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만 믿으라

하나님만 믿으라(행 4:13-22)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살아나신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교회가 생겼기 때문에 부활주일은 교회의 생일과 같습니다. 그렇기에 생일에 사람들이 기뻐하며 잔치를 하듯이 오늘은 우리 교회와 공동체에 가장 행복한 날이어야 합니다.    부활은 잠시잠간 잠들었다가 깨어난 수준이 아닙니다. 단순히 죽었다가 얼마 후에 다시 살아난 것도 아닙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깨어났습니다. 저희 외할머님도 그런 예입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알파에 오시면 제가 소개하겠습니다.    성경에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왕상17장 사렙다 과부의 아들을 엘리야가 살렸습니다. 왕하4장 수넴여인의 아들이 죽었다가 엘리사가 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도 3명의 사람을 살렸습니다. 야이로의 딸을 살렸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렸습니다. 죽은지 4일된 나사로를 살렸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 과부 도르가를 베드로가 살렸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영원히 살겠습니까? 죽었다가 주님의 은혜로 살아났지만 결국은 다 죽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사람을 부활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부활이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살아나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로는 표현이 다 되지 않기에 성경은 ‘신령한 존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신령한 존재 -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고, 시공을 초월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세상역사상 처음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미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을 본 사람들입니다. 죽은 지 얼마되지 않았던 야이로의 딸을 보았고, 관에 담아서 장례를 치르고 있던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예수님의 말 한마디에 살아남을 본 사람들입니다. 더더구나 무덤안에 있는 죽은 지 4일된 나사로를 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이러한 죽음에서 단지 살아난 사람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시공을 초월하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부활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그 부활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에 제자들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늘 보십시오. 종교지도자들이 얼마나 표독스럽게 제자들을 바라봅니까?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협박하고, 거짓을 강요하고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예수님도 거짓증언으로 죽인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죽이는 것이 뭐 어렵겠습니까? 제자들을 보면서 더 무시하는 눈길과 깔보는 마음으로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종교지도자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제자들은 종교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9-20절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을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우리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아멘입니까? 그러면 우리도 부활할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이 부활의 신앙을 간직하면 오늘 본문의 제자들처럼 우리도 담대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제자들이 이렇게 담대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님으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부활신앙으로 무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는데, 무엇이 두려움이겠습니까? 사실 사람에게서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입니다.    남자들은 군에 입대한 것을 큰 두려움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울기도합니다. 시험에 떨어지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병듦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두려움은 역시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부활신앙은 죽음을 뛰어넘는 신앙입니다.    이 세상에 부와 권세를 가졌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노초를 구하거나, 영생을 찾아 헤메였습니다. 만리장성을 쌓았던 중국의 왕이 진시왕입니다. 그는 처음으로 황제(皇帝)의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겨우 열세살의 나이에 왕이되고 親政(친정)에 들어가 본격적인 영토 확장작업에 착수한 것은 23세였고, 39세의 젊은 나이에 드디어 천하를 평정하여 중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통일 국가를 건설하였다.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진시황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어떻게든 죽음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진시황은 서시(徐市)에게 어린 소년 소녀 3천명과 많은 보물을 실은 배들을 거느리게하여 동해에 있다는 신선이 사는 섬에 가서 불로장생의 약초와 약을 구해오도록 하였다. 그러나 서시는 몇 년이 지나도록 약을 구하지 못하자 돌아와 거짓말로 둘러댔다. 그러나 서시일행은 끝내 영약을 구하지 못하고 일본쪽으로 도망쳐 버렸다. 그 후 진시황은 스스로 신선이라 자칭하는 노생과 후생이라는 사람들을 불러들여, 자신의 거처를 모르게 하였다. 그러나 필사적인 진시황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생과 후생은 불로장생의 약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있다가는 틀림없이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진시황을 비방하고 도망쳐 버렸다. 진시황은 자신을 비방했을 것으로 자신을 비방한 사람들은 주로 유생들이었다. 결국 460여명이나 되는 유생들을 붙잡아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해버렸다. 이것이 바로 갱유(坑儒)사건이다.    이집트의 엄청난 피라밋을 보십시오. 가장 큰 것은 쿠푸왕의 피라미드로 높이가 148미터에 이릅니다. 이 피라밋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3톤짜리 석재가 250만개에서 280만개 가량 투입됐고, 무게는 무려 770만 톤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이 피라밋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연10만명의 인원이 30년 투입되었을 거라고 추산합니다. 왜 이런 엄청난 피라밋을 만들었겠습니까?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이집트의 왕들은 영생할 것을 고대하면서 자신의 다음세대를 준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아무리 견고하게 지었어도 여전히 무덤일 뿐입니다. 우리는 부활신앙으로 굳게 신앙생활을 해야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죽음을 뛰어넘는 신앙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여러분에게는 이미 부활신앙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심처럼 나도 부활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부활신앙으로 무장해버리자 종교지도자들은 더 이상 제자들을 비난하거나 힐난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세상이 우리를 향해서 더 이상 믿음을 가졌다고 비난하거나 힐난하지 못하도록 부활신앙으로 똘똘 무장하십시오.    저도 승선할 때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수없는 박해를 받았습니다. 용왕이 고기를 보내주는데 내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용왕이 노한다는 것입니다. 바다에 오면 고기를 보내주는 용왕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많이 맞기도 하고, 고사할 때 절하지 않는다고 엄청 욕도 먹고, 머리채를 수없이 잡혀 끌려 나가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내 안에 계시는데 어떻게 고사하면서 절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끝내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배의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기도해달라고 선장이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우리가 미지근한 신앙을 가지면 계속해서 타협하라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뜨거운 신앙으로 똘똘 무장하고 타협하지 않으면 세상은 우리를 두려워합니다. 우리를 통해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했던 종교지도자들이 베드로와 요한앞에서 힐난할 말이 없었던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사도들이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담대하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이 내안에 계십니다. 요한일서5:13-14절을 보겠습니다. “13-내가 하나님의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14-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한복음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려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베드로와 요한이 어떤 사람입니까? 갈릴리에서 그물 던져 고기 잡던 촌부들 아닙니까? 그들이 무슨 유식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데 학문으로는 당시의 최고라던 종교지도자들이 더 이상 할말이 없도록 만들 만큼이나 담대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지식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이 있어야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대학 나와야 전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해서 담대함을 가진다면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 될 것입니다.    둘째, 베드로와 요한이 이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인 것을 알고 힐난할 말이 없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은 좋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좋아하면서도 교회는 싫어합니다. 예수님이 나와함께 함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전도자가 예수님의 모습을 닮고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보여준다면 선교에서 큰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그대를 보는 사람들이 그대를 통해서 예수님을 볼 수 있도록 하십시오.    셋째, 병 나은 사람이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도우신다는 증거가 있으면 사람들이 교회를 비난하거나 대적하지 못하고 오히려 칭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의 체험도 중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베풀어주는 많은 사랑의 행위도 우리 믿음의 증거로 보일 것입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은 베드로와 요한의 모습은 하나님만 믿은 모습입니다. 새벽 이슬같은 청년들이여! 하나님을 믿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뭡니까? 오직 하나님만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계명에서 제1계명이 가르쳐주는 게 이것 아닙니까? 만일 우리가 하나님 외에 믿는 게 있다면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나 하나님이 믿으라고 하는 것을 믿는 것뿐입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거지요. 그 외에 하나님께 반대되는 것은 절대 믿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뜻에 어긋나는 것을 따르지 않습니다. 누가 말해도 따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강하게 압박해도 따르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따릅니다. 본문에서 사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지금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과 불신앙입니다. 우리는 이것도 이겨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대상을 정하고 마음을 강하게 하여 담대히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 속에 지혜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 주님께서는 지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하나님만 믿으라!

sermon_03
청소년설교
작성자 김중곤
작성일 2006-04-17 06:41
설교주제 부활, 임마누엘, 담대함
설교대상 청년
성경본문 사도행전4:13-22
키워드 담대함, 역사, 부활신앙
ㆍ추천: 0  ㆍ조회: 708      
하나님만 믿으라
하나님만 믿으라(행 4:13-22)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살아나신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교회가 생겼기 때문에 부활주일은 교회의 생일과 같습니다. 그렇기에 생일에 사람들이 기뻐하며 잔치를 하듯이 오늘은 우리 교회와 공동체에 가장 행복한 날이어야 합니다.

   부활은 잠시잠간 잠들었다가 깨어난 수준이 아닙니다. 단순히 죽었다가 얼마 후에 다시 살아난 것도 아닙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깨어났습니다. 저희 외할머님도 그런 예입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알파에 오시면 제가 소개하겠습니다.

   성경에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왕상17장 사렙다 과부의 아들을 엘리야가 살렸습니다. 왕하4장 수넴여인의 아들이 죽었다가 엘리사가 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도 3명의 사람을 살렸습니다. 야이로의 딸을 살렸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렸습니다. 죽은지 4일된 나사로를 살렸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 과부 도르가를 베드로가 살렸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영원히 살겠습니까? 죽었다가 주님의 은혜로 살아났지만 결국은 다 죽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사람을 부활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부활이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살아나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로는 표현이 다 되지 않기에 성경은 ‘신령한 존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신령한 존재 -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고, 시공을 초월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세상역사상 처음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미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을 본 사람들입니다. 죽은 지 얼마되지 않았던 야이로의 딸을 보았고, 관에 담아서 장례를 치르고 있던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예수님의 말 한마디에 살아남을 본 사람들입니다. 더더구나 무덤안에 있는 죽은 지 4일된 나사로를 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이러한 죽음에서 단지 살아난 사람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시공을 초월하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부활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그 부활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에 제자들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늘 보십시오. 종교지도자들이 얼마나 표독스럽게 제자들을 바라봅니까?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협박하고, 거짓을 강요하고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예수님도 거짓증언으로 죽인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죽이는 것이 뭐 어렵겠습니까? 제자들을 보면서 더 무시하는 눈길과 깔보는 마음으로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종교지도자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제자들은 종교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9-20절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을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우리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아멘입니까? 그러면 우리도 부활할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이 부활의 신앙을 간직하면 오늘 본문의 제자들처럼 우리도 담대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제자들이 이렇게 담대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님으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부활신앙으로 무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는데, 무엇이 두려움이겠습니까? 사실 사람에게서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입니다.

   남자들은 군에 입대한 것을 큰 두려움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울기도합니다. 시험에 떨어지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병듦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두려움은 역시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부활신앙은 죽음을 뛰어넘는 신앙입니다.

   이 세상에 부와 권세를 가졌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노초를 구하거나, 영생을 찾아 헤메였습니다. 만리장성을 쌓았던 중국의 왕이 진시왕입니다. 그는 처음으로 황제(皇帝)의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겨우 열세살의 나이에 왕이되고 親政(친정)에 들어가 본격적인 영토 확장작업에 착수한 것은 23세였고, 39세의 젊은 나이에 드디어 천하를 평정하여 중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통일 국가를 건설하였다.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진시황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어떻게든 죽음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진시황은 서시(徐市)에게 어린 소년 소녀 3천명과 많은 보물을 실은 배들을 거느리게하여 동해에 있다는 신선이 사는 섬에 가서 불로장생의 약초와 약을 구해오도록 하였다.

그러나 서시는 몇 년이 지나도록 약을 구하지 못하자 돌아와 거짓말로 둘러댔다. 그러나 서시일행은 끝내 영약을 구하지 못하고 일본쪽으로 도망쳐 버렸다. 그 후 진시황은 스스로 신선이라 자칭하는 노생과 후생이라는 사람들을 불러들여, 자신의 거처를 모르게 하였다. 그러나 필사적인 진시황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생과 후생은 불로장생의 약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있다가는 틀림없이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진시황을 비방하고 도망쳐 버렸다. 진시황은 자신을 비방했을 것으로 자신을 비방한 사람들은 주로 유생들이었다. 결국 460여명이나 되는 유생들을 붙잡아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해버렸다. 이것이 바로 갱유(坑儒)사건이다.

   이집트의 엄청난 피라밋을 보십시오. 가장 큰 것은 쿠푸왕의 피라미드로 높이가 148미터에 이릅니다. 이 피라밋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3톤짜리 석재가 250만개에서 280만개 가량 투입됐고, 무게는 무려 770만 톤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이 피라밋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연10만명의 인원이 30년 투입되었을 거라고 추산합니다. 왜 이런 엄청난 피라밋을 만들었겠습니까?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이집트의 왕들은 영생할 것을 고대하면서 자신의 다음세대를 준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아무리 견고하게 지었어도 여전히 무덤일 뿐입니다. 우리는 부활신앙으로 굳게 신앙생활을 해야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죽음을 뛰어넘는 신앙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여러분에게는 이미 부활신앙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심처럼 나도 부활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부활신앙으로 무장해버리자 종교지도자들은 더 이상 제자들을 비난하거나 힐난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세상이 우리를 향해서 더 이상 믿음을 가졌다고 비난하거나 힐난하지 못하도록 부활신앙으로 똘똘 무장하십시오.

   저도 승선할 때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수없는 박해를 받았습니다. 용왕이 고기를 보내주는데 내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용왕이 노한다는 것입니다. 바다에 오면 고기를 보내주는 용왕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많이 맞기도 하고, 고사할 때 절하지 않는다고 엄청 욕도 먹고, 머리채를 수없이 잡혀 끌려 나가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내 안에 계시는데 어떻게 고사하면서 절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끝내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배의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기도해달라고 선장이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우리가 미지근한 신앙을 가지면 계속해서 타협하라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뜨거운 신앙으로 똘똘 무장하고 타협하지 않으면 세상은 우리를 두려워합니다. 우리를 통해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했던 종교지도자들이 베드로와 요한앞에서 힐난할 말이 없었던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사도들이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담대하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이 내안에 계십니다. 요한일서5:13-14절을 보겠습니다. “13-내가 하나님의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14-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한복음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려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베드로와 요한이 어떤 사람입니까? 갈릴리에서 그물 던져 고기 잡던 촌부들 아닙니까? 그들이 무슨 유식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데 학문으로는 당시의 최고라던 종교지도자들이 더 이상 할말이 없도록 만들 만큼이나 담대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지식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이 있어야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대학 나와야 전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해서 담대함을 가진다면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 될 것입니다.

   둘째, 베드로와 요한이 이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인 것을 알고 힐난할 말이 없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은 좋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좋아하면서도 교회는 싫어합니다. 예수님이 나와함께 함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전도자가 예수님의 모습을 닮고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보여준다면 선교에서 큰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그대를 보는 사람들이 그대를 통해서 예수님을 볼 수 있도록 하십시오.

   셋째, 병 나은 사람이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도우신다는 증거가 있으면 사람들이 교회를 비난하거나 대적하지 못하고 오히려 칭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의 체험도 중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베풀어주는 많은 사랑의 행위도 우리 믿음의 증거로 보일 것입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은 베드로와 요한의 모습은 하나님만 믿은 모습입니다. 새벽 이슬같은 청년들이여! 하나님을 믿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뭡니까? 오직 하나님만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계명에서 제1계명이 가르쳐주는 게 이것 아닙니까? 만일 우리가 하나님 외에 믿는 게 있다면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나 하나님이 믿으라고 하는 것을 믿는 것뿐입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거지요. 그 외에 하나님께 반대되는 것은 절대 믿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뜻에 어긋나는 것을 따르지 않습니다. 누가 말해도 따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강하게 압박해도 따르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따릅니다. 본문에서 사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지금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과 불신앙입니다. 우리는 이것도 이겨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대상을 정하고 마음을 강하게 하여 담대히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 속에 지혜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 주님께서는 지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하나님만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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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Just do as I am 김중곤 2005-10-02 832
102 처음사랑 끝까지 김중곤 2005-09-20 591
101 구름기둥 불기둥 김중곤 2005-09-12 960
100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김중곤 2005-09-04 550
99 민족을 구원한 드보라 김중곤 2005-08-16 603
98 나를 따르라 김중곤 2005-07-31 567
97 순종의 사람들 김중곤 2005-07-26 707
96 선봉에 서라 김중곤 2005-06-20 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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