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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누가2:1-7    오늘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한 모든 청년들에게 큰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 빕니다. 요즘 거리거리마다 내온싸인이 더 빛을 발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은 소비를 하는 시기이며,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도 성탄카드를 보내는 시기입니다. 산타클로스가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오늘의 시대에 선물을 받기위해 커다란 양말을 준비한 아이들의 기대와 설렘이 있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정작 성탄절의 주인이신 예수님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게 보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도 동일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로마의 황제인 아우구스토 시저는 점령 지역민들에게 인두세라는 세금을 거두어 드리기 위하여 호적을 정리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고향이 베들레헴이므로 만삭이 된 몸으로 고향에 가게 됩니다.      고향에 도착하였으나 유숙 할 곳이 없어서 마구간에 거쳐를 정하였는데 이미 해산달이었으므로 아이를 낳게 됩니다. 그러나 마땅히 누울 자리가 없어서 말의 밥그릇인 구유에 뉘었다는 이야기가 오늘의 본문입니다. 이 내용만 보면 태어난 아이를 축하 할 일이 전혀 없게 보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낮고 천한 곳에 오신 예수님을 온 세상 사람들이 축하하고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이겠습니까?  성탄이 주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4가지를 믿어야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 탄생 - 십자가 죽음 - 부활 - 재림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만으로 우리가 축하하거나 축제의 분위기를 갖는다는 것은 모순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는 구원이라는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은 구원의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십시오.  이 땅에 태어나신 예수님이 자신을 바라보면서 생각할 때 예수님은 이 땅에 왜 오신 것입니까?    예수님은 죽으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마가복음10:45절에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그렇기에 우리가 성탄을 생각할 때 주님의 죽음까지 생각할 수 있어야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생명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성탄절은 예수님의 말할 수 없는 희생의 날이면서 동시에 큰 기쁨의 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기쁜 성탄절에 큰 슬픔에 빠지실 수도 있습니다. 언제 그렇겠습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스스로 큰 희생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희생으로 사람들이 구원 받을 것을 생각하며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아 그 희생이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리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성탄이 주님께 진정한 기쁨이 되려면 우리가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지못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커다란 축제를 하고 잔치를 열고, 좋은 선물을 주고 받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예수님께서 보셨을 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성탄이 기쁨이 될 수없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성탄의 기쁜 소식이 아니라 고통과 절망의 소식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은 심판의 자리에 서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로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분 중에서 아직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드립니다만 저의 기도제목중의 하나는 저와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는데 구원의 모든 축복을 함께 누리십시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셨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며 살아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답게 살아가는 삶이 있어야합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 살아가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을 받은  크리스챤의 삶이란 구원을 허락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결단과도 같습니다. 구원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내공을 키우는 것이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삶인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를 생각해보십시오. 노아는 타락한 백성들 사이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구원받고 방주안에서 했던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타치며 “예수님찬양”노래부르며 아무런 부담없이 살지 않았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안의 수많은 짐승들의 먹이를 주고, 배설물을 치우는 사역을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배설물처럼 범죄하고 타락할 때 우리가 그들의 연약함을 감당하며,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것이 구원받은 꿈쟁이들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탄절에 예수님을 찬양하며 기쁘게 잔치를 하면서도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삶을 살지 않으면 예수님의 기쁜 성탄절을 슬픔으로 만드는 것 아닙니까? 성탄절은 항상 우리의 구주로 오신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결단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주님과 우리에게 기쁜 성탄이 됩니다. 그런 의미로 어제 오후에 청년들이 독거노인의 집을 방문하여 함께 하는 시간을 실천한 것은 너무나 자랑스럽고 귀한 일입니다. 잘 하셨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친히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오심 그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심입니다. 그런 의미로 예수님은 높고 높은 하늘영광을 버리시고, 가장 낮고 천한 자리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머물 곳이 없으셔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누우실 곳이 없으셔서 짐승의 밥통에 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낮아지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낮아지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낮아진 삶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왕이 세상을 변화시키셨다면 예수님은 왕궁에서 태어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낮은 곳에 태어나셔서 낮은 삶을 살아가셨기에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우리는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낮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용서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낮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해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낮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참고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낮은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세상을 품을 수 있습니다. 낮은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먼저 손을 내밀어 이웃을 만들 수 있습니다.    과학으로 세상이 많이 변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겸손하지 못하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악한 결과를 초래할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황우석교수의 사건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철저하게 겸손하게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낮아진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처럼 희생과 겸손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예수님처럼 살겠다는 마음으로 주님 닮아가는 삶으로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희생이 없는 것은 낮아진 삶이 될 수없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희생하여야 이웃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희생이 없이 세상을 변화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버려 희생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의 희생과 헌신과 사랑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주님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길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로 내년에 성탄츄리에는 특별한 행사를 하기를 제안합니다. 고아원 한곳을 연결하여 그들이 갖고싶어하는 선물을 알아서 카드를 츄리에 주렁주렁달고 우리가 기도하면서 하나씩 택하여 그것에 기록된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이 갖고 싶어하는 선물을 준비해서 보내십시다.

sermon_03
청소년설교
작성자 김중곤
작성일 2005-12-25 21:06
설교주제 성탄, 섬김, 희생
설교대상 청년
성경본문 누가복음 2:1-7
키워드 성탄, 겸손, 희생
ㆍ추천: 0  ㆍ조회: 489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누가2:1-7

   오늘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한 모든 청년들에게 큰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 빕니다. 요즘 거리거리마다 내온싸인이 더 빛을 발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은 소비를 하는 시기이며,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도 성탄카드를 보내는 시기입니다. 산타클로스가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오늘의 시대에 선물을 받기위해 커다란 양말을 준비한 아이들의 기대와 설렘이 있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정작 성탄절의 주인이신 예수님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게 보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도 동일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로마의 황제인 아우구스토 시저는 점령 지역민들에게 인두세라는 세금을 거두어 드리기 위하여 호적을 정리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고향이 베들레헴이므로 만삭이 된 몸으로 고향에 가게 됩니다.  

   고향에 도착하였으나 유숙 할 곳이 없어서 마구간에 거쳐를 정하였는데 이미 해산달이었으므로 아이를 낳게 됩니다. 그러나 마땅히 누울 자리가 없어서 말의 밥그릇인 구유에 뉘었다는 이야기가 오늘의 본문입니다. 이 내용만 보면 태어난 아이를 축하 할 일이 전혀 없게 보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낮고 천한 곳에 오신 예수님을 온 세상 사람들이 축하하고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이겠습니까?  성탄이 주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4가지를 믿어야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 탄생 - 십자가 죽음 - 부활 - 재림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만으로 우리가 축하하거나 축제의 분위기를 갖는다는 것은 모순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는 구원이라는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은 구원의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십시오.  이 땅에 태어나신 예수님이 자신을 바라보면서 생각할 때 예수님은 이 땅에 왜 오신 것입니까?

   예수님은 죽으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마가복음10:45절에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그렇기에 우리가 성탄을 생각할 때 주님의 죽음까지 생각할 수 있어야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생명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성탄절은 예수님의 말할 수 없는 희생의 날이면서 동시에 큰 기쁨의 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기쁜 성탄절에 큰 슬픔에 빠지실 수도 있습니다. 언제 그렇겠습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스스로 큰 희생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희생으로 사람들이 구원 받을 것을 생각하며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아 그 희생이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리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성탄이 주님께 진정한 기쁨이 되려면 우리가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지못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커다란 축제를 하고 잔치를 열고, 좋은 선물을 주고 받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예수님께서 보셨을 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성탄이 기쁨이 될 수없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성탄의 기쁜 소식이 아니라 고통과 절망의 소식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은 심판의 자리에 서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로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분 중에서 아직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드립니다만 저의 기도제목중의 하나는 저와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는데 구원의 모든 축복을 함께 누리십시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셨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며 살아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답게 살아가는 삶이 있어야합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 살아가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을 받은  크리스챤의 삶이란 구원을 허락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결단과도 같습니다. 구원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내공을 키우는 것이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삶인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를 생각해보십시오. 노아는 타락한 백성들 사이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구원받고 방주안에서 했던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타치며 “예수님찬양”노래부르며 아무런 부담없이 살지 않았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안의 수많은 짐승들의 먹이를 주고, 배설물을 치우는 사역을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배설물처럼 범죄하고 타락할 때 우리가 그들의 연약함을 감당하며,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것이 구원받은 꿈쟁이들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탄절에 예수님을 찬양하며 기쁘게 잔치를 하면서도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삶을 살지 않으면 예수님의 기쁜 성탄절을 슬픔으로 만드는 것 아닙니까? 성탄절은 항상 우리의 구주로 오신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결단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주님과 우리에게 기쁜 성탄이 됩니다. 그런 의미로 어제 오후에 청년들이 독거노인의 집을 방문하여 함께 하는 시간을 실천한 것은 너무나 자랑스럽고 귀한 일입니다. 잘 하셨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친히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오심 그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심입니다. 그런 의미로 예수님은 높고 높은 하늘영광을 버리시고, 가장 낮고 천한 자리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머물 곳이 없으셔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누우실 곳이 없으셔서 짐승의 밥통에 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낮아지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낮아지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낮아진 삶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왕이 세상을 변화시키셨다면 예수님은 왕궁에서 태어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낮은 곳에 태어나셔서 낮은 삶을 살아가셨기에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우리는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낮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용서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낮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해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낮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참고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낮은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세상을 품을 수 있습니다. 낮은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먼저 손을 내밀어 이웃을 만들 수 있습니다.

   과학으로 세상이 많이 변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겸손하지 못하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악한 결과를 초래할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황우석교수의 사건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철저하게 겸손하게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낮아진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처럼 희생과 겸손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예수님처럼 살겠다는 마음으로 주님 닮아가는 삶으로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희생이 없는 것은 낮아진 삶이 될 수없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희생하여야 이웃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희생이 없이 세상을 변화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버려 희생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의 희생과 헌신과 사랑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주님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길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로 내년에 성탄츄리에는 특별한 행사를 하기를 제안합니다. 고아원 한곳을 연결하여 그들이 갖고싶어하는 선물을 알아서 카드를 츄리에 주렁주렁달고 우리가 기도하면서 하나씩 택하여 그것에 기록된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이 갖고 싶어하는 선물을 준비해서 보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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