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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한일장신대학교
호남신학대학교
제19과 죄의 천적은 고난입니다

뱀이나 거미는 해롭게 보이지만 사실은 이로운 동물이다. 해로운 동물의 천적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뱀이나 거미가 기분 나쁘다고 몰살시키면 큰 해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 삶에 가장 해로운 게 무엇일까? 죄이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하나님의 축복을 그치게 만든다. 죄는 죄책감과 죄과에 대한 두려움을 일으켜 마음의 평안을 잃게 만든다. 그리고 실제의 삶에도 징계가 임하여 큰 해를 당하게 만든다. 더욱이 영원한 파멸에 빠지게 만든다. 죄는 우리에게 가장 해로운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죄를 제거해야 한다. 어떻게 죄를 제거할 수 있는가? 죄를 제거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1) 지은 죄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를 그냥 넘어가지 않으시므로 죄를 해결하려면 벌을 받아야 한다. 법을 어기고 도망 다니던 사람도 벌을 받고 나면 떳떳한 시민이 된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내가 벌을 받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벌을 받으면 완전히 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벌을 죄 없는 다른 분이 대신 받아줘야 한다. 이것을 해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대속의 고난이 내 죄를 용서받게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죄를 용서받으면 우리는 죄책감에 빠지지 말고 앞으로 죄를 멀리하면 된다.    2) 앞으로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죄의 세력을 이겨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한 후에 죄에 젖어버려서 자신의 힘으로는 죄를 이길 수 없다. 이것도 예수님이 도와주셔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멀어지도록 고쳐주셔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를 고쳐주셨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예수님의 고난으로 우리의 죄에 젖은 모습이 치유된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고난이 우리의 죄를 제거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연약하여 자꾸 죄를 짓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도록 돕기 위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다. 본문 1절이 이것을 가르쳐준다.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이 말씀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고난을 받으면 죄를 그치게 된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고난을 받는 것이 죄를 그친 증거라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의 고난도 우리를 죄에서 멀어지게 해주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자. 우리는 고난을 통해 거룩한 사람으로 성숙되며 죄에서 멀어진다. 여기에는 두 가지 고난이 있다. 1) 징계의 고난이다. 징계는 잘못을 제거하는 데 크게 유익하다.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잠 22:15) 우리의 영적 성장도 비슷하다. 우리는 징계의 고난을 통해 죄에서 멀어지고 훌륭한 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2) 훈련의 고난이다. 잘못이 없지만 고난을 통해 믿음을 굳세게 만들어 죄를 이겨내게 해주는 것이다. 어떤 집사님: “하나님이 어떤 축복을 주시려고 이런 고난을 주시나?” 이 집사님은 고난 후에 축복이 임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믿음이 자라 큰 고난도 이겨내는 것이다. 우리가 고난 받는다는 사실이 죄를 멀리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포로들을 고문하면서 한 사람만 고문하지 않으면 그는 반역자로 지목된다. 고난 받는 것이 죄를 멀리한 증거이다.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벧전 4:4) 성도들이 악에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것이다. 이들의 악행을 살펴보자.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벧전 4:3) 여기서 ‘방탕’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마을’이라는 단어에서 온 말이다. 마을 잔치가 그렇게 방탕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마을 잔치에는 네 가지가 모습이 있었다. 1) 우상에게 제사했다. 2) 술에 취하여 방탕한 잔치를 벌였다. 3) 잔치 뒤에 음행이 따랐다. 4) 로마를 대적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그래서 본문이 피하라고 하는 악행은 우상숭배, 술과 방탕, 음행, 폭동인 것이다. 우리사회의 우상숭배는 어떤가? 돼지머리 고사, 사주팔자, 관상, 손금, 등은 민족의 전통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우상숭배이다.(하나님 외의 영적 존재 섭리 인정) 종교다원주의도 우상숭배이다. 그러나 다른 종교를 폭동으로 몰아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본문은 폭동을 거부한다. 우리사회의 음란도 심각하다. 우리나라의 음란문제는 해외성매매나 이혼율이 세계 최고수준에 이른 것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술은 일인당 술 소비량이 세계 2위 수준이다. 폭동의 문제는 어떤가? 지금은 우리나라에 폭동이 많다고 볼 수 없지만 우리가 단체행동이 강한 나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해방 후 좌우대립, 매년의 노동투쟁, 월드컵 응원, 등) 이것은 선동의 위험이 크다는 위험을 알려준다. 성도들은 폭력적 선동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선한 목적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려는 시험을 극복해야 한다.(산상설교) 6절의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라는 말씀은 3:19와 연결된 내용으로 어려운 말씀이다. 이것은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뜻일 수도 있고, 단순히 죽기 전에 믿은 사람들이 지금 몸은 심판을 받아 죽었지만 영적으로는 살 것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본문이 고난을 무릅쓰고라도 선을 행하라는 것을 가르치므로 본문의 문맥에는 후자가 더 잘 맞는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고난과 우리의 고난이 우리 죄를 제거하고 우리를 죄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죄의 천적이다. 고난은 해롭게 보이지만 사실은 유익한 것이다.(하나님의 자녀에게) 토의문제 1. 오늘 말씀에서 내가 느낀 점을 자유롭게 나누십시오. 2. 우리교회 예배당에 있는 십자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나십니까? 혹시 십자가를 보며 용서의 기쁨이 아니라 죄를 멀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3. 죄 때문에 징계를 받고(징계의 고난) 죄를 멀리하게 된 경험이 있습니까? 4. 우상숭배, 술과 방탕, 음란, 폭동 중에 우리사회에서 걱정되는 모습을 말씀해주십시오. 그리고 성도들과 교회가 어떻게 하면 사회에 도움이 되겠는지 생각해보십시오. 5. 그리스도의 고난과 우리의 고난이 죄를 제거해주는 축복임을 알고 고난 속에서도 신앙의 유익을 얻도록, 교회와 나라를 위해, 조원들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bible_01
매주성경공부
작성자 오덕호
작성일 2008-08-23 15:32
분 류 벧전
성경 베드로전서 4:1-6
ㆍ추천: 0  ㆍ조회: 1170      
제19과 죄의 천적은 고난입니다

뱀이나 거미는 해롭게 보이지만 사실은 이로운 동물이다. 해로운 동물의 천적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뱀이나 거미가 기분 나쁘다고 몰살시키면 큰 해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 삶에 가장 해로운 게 무엇일까? 죄이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하나님의 축복을 그치게 만든다. 죄는 죄책감과 죄과에 대한 두려움을 일으켜 마음의 평안을 잃게 만든다. 그리고 실제의 삶에도 징계가 임하여 큰 해를 당하게 만든다. 더욱이 영원한 파멸에 빠지게 만든다. 죄는 우리에게 가장 해로운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죄를 제거해야 한다. 어떻게 죄를 제거할 수 있는가?

죄를 제거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1) 지은 죄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를 그냥 넘어가지 않으시므로 죄를 해결하려면 벌을 받아야 한다. 법을 어기고 도망 다니던 사람도 벌을 받고 나면 떳떳한 시민이 된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내가 벌을 받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벌을 받으면 완전히 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벌을 죄 없는 다른 분이 대신 받아줘야 한다. 이것을 해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대속의 고난이 내 죄를 용서받게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죄를 용서받으면 우리는 죄책감에 빠지지 말고 앞으로 죄를 멀리하면 된다.
   2) 앞으로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죄의 세력을 이겨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한 후에 죄에 젖어버려서 자신의 힘으로는 죄를 이길 수 없다. 이것도 예수님이 도와주셔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멀어지도록 고쳐주셔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를 고쳐주셨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예수님의 고난으로 우리의 죄에 젖은 모습이 치유된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고난이 우리의 죄를 제거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연약하여 자꾸 죄를 짓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도록 돕기 위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다. 본문 1절이 이것을 가르쳐준다.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이 말씀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고난을 받으면 죄를 그치게 된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고난을 받는 것이 죄를 그친 증거라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의 고난도 우리를 죄에서 멀어지게 해주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자.

우리는 고난을 통해 거룩한 사람으로 성숙되며 죄에서 멀어진다. 여기에는 두 가지 고난이 있다. 1) 징계의 고난이다. 징계는 잘못을 제거하는 데 크게 유익하다.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잠 22:15) 우리의 영적 성장도 비슷하다. 우리는 징계의 고난을 통해 죄에서 멀어지고 훌륭한 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2) 훈련의 고난이다. 잘못이 없지만 고난을 통해 믿음을 굳세게 만들어 죄를 이겨내게 해주는 것이다. 어떤 집사님: “하나님이 어떤 축복을 주시려고 이런 고난을 주시나?” 이 집사님은 고난 후에 축복이 임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믿음이 자라 큰 고난도 이겨내는 것이다.

우리가 고난 받는다는 사실이 죄를 멀리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포로들을 고문하면서 한 사람만 고문하지 않으면 그는 반역자로 지목된다. 고난 받는 것이 죄를 멀리한 증거이다.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벧전 4:4) 성도들이 악에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것이다.

이들의 악행을 살펴보자.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벧전 4:3) 여기서 ‘방탕’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마을’이라는 단어에서 온 말이다. 마을 잔치가 그렇게 방탕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마을 잔치에는 네 가지가 모습이 있었다. 1) 우상에게 제사했다. 2) 술에 취하여 방탕한 잔치를 벌였다. 3) 잔치 뒤에 음행이 따랐다. 4) 로마를 대적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그래서 본문이 피하라고 하는 악행은 우상숭배, 술과 방탕, 음행, 폭동인 것이다.

우리사회의 우상숭배는 어떤가? 돼지머리 고사, 사주팔자, 관상, 손금, 등은 민족의 전통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우상숭배이다.(하나님 외의 영적 존재 섭리 인정) 종교다원주의도 우상숭배이다. 그러나 다른 종교를 폭동으로 몰아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본문은 폭동을 거부한다. 우리사회의 음란도 심각하다. 우리나라의 음란문제는 해외성매매나 이혼율이 세계 최고수준에 이른 것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술은 일인당 술 소비량이 세계 2위 수준이다. 폭동의 문제는 어떤가? 지금은 우리나라에 폭동이 많다고 볼 수 없지만 우리가 단체행동이 강한 나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해방 후 좌우대립, 매년의 노동투쟁, 월드컵 응원, 등) 이것은 선동의 위험이 크다는 위험을 알려준다. 성도들은 폭력적 선동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선한 목적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려는 시험을 극복해야 한다.(산상설교)

6절의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라는 말씀은 3:19와 연결된 내용으로 어려운 말씀이다. 이것은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뜻일 수도 있고, 단순히 죽기 전에 믿은 사람들이 지금 몸은 심판을 받아 죽었지만 영적으로는 살 것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본문이 고난을 무릅쓰고라도 선을 행하라는 것을 가르치므로 본문의 문맥에는 후자가 더 잘 맞는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고난과 우리의 고난이 우리 죄를 제거하고 우리를 죄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죄의 천적이다. 고난은 해롭게 보이지만 사실은 유익한 것이다.(하나님의 자녀에게)

토의문제

1. 오늘 말씀에서 내가 느낀 점을 자유롭게 나누십시오.
2. 우리교회 예배당에 있는 십자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나십니까? 혹시 십자가를 보며 용서의 기쁨이 아니라 죄를 멀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3. 죄 때문에 징계를 받고(징계의 고난) 죄를 멀리하게 된 경험이 있습니까?
4. 우상숭배, 술과 방탕, 음란, 폭동 중에 우리사회에서 걱정되는 모습을 말씀해주십시오. 그리고 성도들과 교회가 어떻게 하면 사회에 도움이 되겠는지 생각해보십시오.
5. 그리스도의 고난과 우리의 고난이 죄를 제거해주는 축복임을 알고 고난 속에서도 신앙의 유익을 얻도록, 교회와 나라를 위해, 조원들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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