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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한일장신대학교
호남신학대학교
제35과 예수님의 흔적이 있는가?

갈라디아서는 크게 두 가지 주제를 가지고 있다. 1)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인간의 업적을 의지하는 율법주의를 배격하고 예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믿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2) 구원받은 사람은 성령님을 따라 바르게 산다.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으니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다는 방탕주의를 배격하고 바른 삶을 강조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는 원래 율법주의적인 거짓교사들이 나타나 할례와 율법을 통해 구원이 완성되는 것처럼 가르쳐서 갈라디아의 교인들을 미혹했기 때문에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을 강조하는 것이 핵심주제이다. 그래서 서신의 양도 약 2/3(1-4장)가 은혜를 강조하고 1/3(5-6장)이 바른 삶을 강조한다. 오늘 본문은 갈라디아서의 결론 부분으로서 다시 한번 예수님의 은혜를 강조한 후에 바른 삶도 가르치며 글을 마친다. 우선 본문의 특징은 바울이 직접 큰 글자로 썼다는 것이다.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11절) 바울은 바쁘고 피곤해서 대서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곳은 직접 썼다. 왜 그랬을까?    1) 바울의 진짜 편지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당시에는 거짓교사들이 바울의 가짜 편지를 만들어 교회를 미혹하는 경우가 있었다.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살후 2:2) 그래서 직접 쓴 부분이 필요했다.    2) 바울이 갈라디아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갈라디아교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떠나 미혹되었지만 바울은 이들을 사랑하여 간곡히 편지를 썼는데 이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친필로 결론을 쓴 것이다. 로마서는 더디오가 끝까지 대서한 것을 볼 때 갈라디아교회를 향한 바울의 사랑을 볼 수 있다.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롬 16:22)    3) 결론 부분에서 직접 다시 한번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바울은 앞에서 믿음을 강조했지만 뒤에서 바른 삶을 강조하는 중에 은혜의 중요성이 약화되었을까봐 염려한 것 같다. 그래서 친필로 율법주의를 공격하며 은혜를 강조하고 아울러 방탕주의를 경계하는 교훈을 덧붙여 마무리하는 것이다. 바울은 율법주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거짓교사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거짓교사들이 바울의 복음을 공격하기 위해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고 인신공격한 것을 되받아치는 모습이다. 이들이 거짓교사라는 증거는 이들이 율법을 강조하는 이유가 자기들의 유익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자기 이익만 위하는 자는 진리를 전할 수도 없고 진리에 따라 살 수도 없다. 이들이 추구한 이익은 두 가지이다. 1) 박해를 면하는 것이다. 당시의 많은 유대인들이 기독교를 싫어하며 박해했다. 로마인들에게 처형당한 자를 메시야라고 하기 때문이다. 또한 율법을 무시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례와 율법을 강조하면 박해를 줄일 수 있었다. 2) 자기들의 업적을 자랑하는 것이다. 할례 받은 사람의 수를 늘려서 그것으로 자기의 업적을 높이고 자기가 영광을 받으려는 것이다. 오늘의 교회에서도 자기의 안전이나 업적을 추구하는 지도자는 거짓교사이다. 이런 자들은 율법주의를 가르칠 위험이 크다. 이런 사람은 자기를 위해 외형적인 업적을 키우려고 한다. 그러면 참된 헌신의 헌금을 가르치지 않고 율법주의적으로 헌금을 강요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교회 교인까지 자기가 섬기는 교회로 인도해오도록 강요하게 된다. 이런 거짓교사들은 대개 성도들에게는 강요하면서 자기는 하지 않는다.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마 23:4)(시한부종말론자가 성도에게는 헌금을 강조하며 자기는 호화주택 구입) 특히 자기에게 유리한 율법은 강조하고 자기에게 불편한 율법은 무시한다. 특히 종교의식법은 강조하고(자기는 잘 안 지킨다) 윤리법은 무시한다(자기와 교인 모두 안 지킨다). 그래서 이런 거짓교사는 종교의식에서는 율법주의(교회생활만 강조), 윤리에서는 방탕주의(바른 삶 무시)를 가르치게 된다. 오늘날 잘못된 교회지도자의 전형적인 모습 아닌가? 이에 반해 바울은 오직 십자가만 자랑한다. 율법주의를 배격하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강조하는 모습이다. 또한 바울이 세상에 대하여 못박혔다는 것은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것이다. 방탕주의를 배격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바울은 율법주의와 방탕주의를 모두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이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전혀 자기의 유익이나 명예를 구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래서 바울은 진짜 하나님의 종이며 그가 전하는 복음은 진짜 복음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자기에게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다고 하며 자기를 괴롭히지 말라고 한다. 여기서 흔적은 누구의 소유물이라는 표시로 찍은 낙인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바울이 예수님의 소유물이므로 예수님을 떠나면 괴로우니까 예수님을 떠나게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율법주의로 예수님의 은혜를 떠나게 하지 말고, 방탕주의로 예수님의 뜻을 떠나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토의문제 1. 오늘 읽은 말씀에서 느낀 점을 서로 나누십시오. 2. 갈라디아서 성경공부를 통해 특별히 나에게 기억나는 것을 말씀해주십시오. 3. 내가 신앙생활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활동을 구체적으로 몇 가지 들어보십시오. 이것은 종교의식에 속합니까, 바른 삶에 속합니까?(둘 다 좋은 것입니다) 4. 성도들이 교회에서 자기의 업적이나 명예를 높이려고 할 때 많이 나타나는 잘못된 모습을 몇 가지 찾아보십시오. 5. 우리가 오직 예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믿음과 성령님을 따라 사는 삶으로 참 신자가 되도록, 교회의 부흥을 위해, 조원들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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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성경공부
작성자 오덕호
작성일 2007-11-16 11:48
분 류
성경 갈라디이서 6:11-18
ㆍ추천: 0  ㆍ조회: 852      
제35과 예수님의 흔적이 있는가?


갈라디아서는 크게 두 가지 주제를 가지고 있다. 1)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인간의 업적을 의지하는 율법주의를 배격하고 예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믿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2) 구원받은 사람은 성령님을 따라 바르게 산다.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으니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다는 방탕주의를 배격하고 바른 삶을 강조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는 원래 율법주의적인 거짓교사들이 나타나 할례와 율법을 통해 구원이 완성되는 것처럼 가르쳐서 갈라디아의 교인들을 미혹했기 때문에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을 강조하는 것이 핵심주제이다. 그래서 서신의 양도 약 2/3(1-4장)가 은혜를 강조하고 1/3(5-6장)이 바른 삶을 강조한다.

오늘 본문은 갈라디아서의 결론 부분으로서 다시 한번 예수님의 은혜를 강조한 후에 바른 삶도 가르치며 글을 마친다. 우선 본문의 특징은 바울이 직접 큰 글자로 썼다는 것이다.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11절) 바울은 바쁘고 피곤해서 대서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곳은 직접 썼다. 왜 그랬을까?
   1) 바울의 진짜 편지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당시에는 거짓교사들이 바울의 가짜 편지를 만들어 교회를 미혹하는 경우가 있었다.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살후 2:2) 그래서 직접 쓴 부분이 필요했다.
   2) 바울이 갈라디아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갈라디아교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떠나 미혹되었지만 바울은 이들을 사랑하여 간곡히 편지를 썼는데 이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친필로 결론을 쓴 것이다. 로마서는 더디오가 끝까지 대서한 것을 볼 때 갈라디아교회를 향한 바울의 사랑을 볼 수 있다.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롬 16:22)
   3) 결론 부분에서 직접 다시 한번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바울은 앞에서 믿음을 강조했지만 뒤에서 바른 삶을 강조하는 중에 은혜의 중요성이 약화되었을까봐 염려한 것 같다. 그래서 친필로 율법주의를 공격하며 은혜를 강조하고 아울러 방탕주의를 경계하는 교훈을 덧붙여 마무리하는 것이다.

바울은 율법주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거짓교사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거짓교사들이 바울의 복음을 공격하기 위해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고 인신공격한 것을 되받아치는 모습이다. 이들이 거짓교사라는 증거는 이들이 율법을 강조하는 이유가 자기들의 유익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자기 이익만 위하는 자는 진리를 전할 수도 없고 진리에 따라 살 수도 없다.

이들이 추구한 이익은 두 가지이다. 1) 박해를 면하는 것이다. 당시의 많은 유대인들이 기독교를 싫어하며 박해했다. 로마인들에게 처형당한 자를 메시야라고 하기 때문이다. 또한 율법을 무시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례와 율법을 강조하면 박해를 줄일 수 있었다. 2) 자기들의 업적을 자랑하는 것이다. 할례 받은 사람의 수를 늘려서 그것으로 자기의 업적을 높이고 자기가 영광을 받으려는 것이다.

오늘의 교회에서도 자기의 안전이나 업적을 추구하는 지도자는 거짓교사이다. 이런 자들은 율법주의를 가르칠 위험이 크다. 이런 사람은 자기를 위해 외형적인 업적을 키우려고 한다. 그러면 참된 헌신의 헌금을 가르치지 않고 율법주의적으로 헌금을 강요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교회 교인까지 자기가 섬기는 교회로 인도해오도록 강요하게 된다.

이런 거짓교사들은 대개 성도들에게는 강요하면서 자기는 하지 않는다.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마 23:4)(시한부종말론자가 성도에게는 헌금을 강조하며 자기는 호화주택 구입) 특히 자기에게 유리한 율법은 강조하고 자기에게 불편한 율법은 무시한다. 특히 종교의식법은 강조하고(자기는 잘 안 지킨다) 윤리법은 무시한다(자기와 교인 모두 안 지킨다). 그래서 이런 거짓교사는 종교의식에서는 율법주의(교회생활만 강조), 윤리에서는 방탕주의(바른 삶 무시)를 가르치게 된다. 오늘날 잘못된 교회지도자의 전형적인 모습 아닌가?

이에 반해 바울은 오직 십자가만 자랑한다. 율법주의를 배격하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강조하는 모습이다. 또한 바울이 세상에 대하여 못박혔다는 것은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것이다. 방탕주의를 배격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바울은 율법주의와 방탕주의를 모두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이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전혀 자기의 유익이나 명예를 구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래서 바울은 진짜 하나님의 종이며 그가 전하는 복음은 진짜 복음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자기에게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다고 하며 자기를 괴롭히지 말라고 한다. 여기서 흔적은 누구의 소유물이라는 표시로 찍은 낙인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바울이 예수님의 소유물이므로 예수님을 떠나면 괴로우니까 예수님을 떠나게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율법주의로 예수님의 은혜를 떠나게 하지 말고, 방탕주의로 예수님의 뜻을 떠나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토의문제

1. 오늘 읽은 말씀에서 느낀 점을 서로 나누십시오.
2. 갈라디아서 성경공부를 통해 특별히 나에게 기억나는 것을 말씀해주십시오.
3. 내가 신앙생활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활동을 구체적으로 몇 가지 들어보십시오. 이것은 종교의식에 속합니까, 바른 삶에 속합니까?(둘 다 좋은 것입니다)
4. 성도들이 교회에서 자기의 업적이나 명예를 높이려고 할 때 많이 나타나는 잘못된 모습을 몇 가지 찾아보십시오.
5. 우리가 오직 예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믿음과 성령님을 따라 사는 삶으로 참 신자가 되도록, 교회의 부흥을 위해, 조원들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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