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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한일장신대학교
호남신학대학교
제32과 절제로 열매가 완성된다

오늘은 성령님의 열매 중에 온유와 절제를 살펴본다. 성령님의 열매는 성령님이 충만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삶의 모습이다. 그러면 성령님이 가장 충만한 분이 누구신가?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예수님이 바로 온유하셨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예수님은 삶으로 온유한 모습을 보여주셨고 말씀으로 온유한 모습을 가르쳐주셨다. 온유는 거칠고 혈기부리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다정한 모습이다. 온유의 구체적인 모습은 예수님의 산상설교에 잘 나타나 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마 5:39-40) 온유는 상대방의 악한 모습을 소극적으로 참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감싸 안고 품어주는 것이다. 남의 부족한 모습을 교만하고 거칠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고쳐주는 것이다. 마치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안고 다정하게 가르치며 고쳐주는 모습과 같다. 어느 교회의 야학에서 배운 청년이 사회에 적개심 가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야학에서는 사회정의를 가르쳤지만 온유가 빠져서 이렇게 된 것이다. 온유가 빠진 사회정의는 적개심과 더 큰 혼란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예수님은 온유하게 정의를 이루어가셨다. 온유는 특별히 지도자에게 필요하다. 지도력의 핵심은 능력과 온유이다. 모세의 지도력이 이것을 잘 보여준다. 모세는 놀라운 권능도 있었고 남다른 온유도 있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 12:3) 지도자가 온유해야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고 그래야 사람들이 따르게 된다. 더욱이 지도자가 온유하면 공동체에서 쿠션 역할을 하여 공동체의 충돌을 줄일 수 있다. 지도자가 거친 사람들의 사나운 행동을 다 감싸 안고 흡수하기 때문이다.(이사할 때 그릇을 부드러운 재질로 싸는 것과 같다.) 성령님의 마지막 열매는 절제이다. 절제는 힘이나 지배력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온 말인데 자신을 지배하는 힘을 말한다. 자기의 욕심, 염려, 정욕을 지배하여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이 절제이다. 절제는 두 가지 방향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나쁜 것을 절제하는 것이다. 특히 악한 생각과 악한 말을 절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악한 생각을 절제하기 위해서는 악한 생각이 날 때 계속 그 생각에 빠지지 말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유익하다. 계속해서 그 생각에 빠져들면 말과 행동으로 발전하기 쉽다. 악한 말을 절제하는 것도 지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말이 우리의 행동과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말은 사람의 뇌에 작용해서 사람을 지배하게 되기도 하고, 하나님이 악한 말에 벌을 내리셔서 그 말대로 되기도 한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28) 우리가 특별히 절제해야 할 말은 저주의 말과 절망적인 말이다. 둘째, 선한 것이지만 지나쳐서 악한 것이 되지 않도록 절제하는 것이다. 좋은 음식도 과식하면 해가 되고 좋은 운동도 과하면 몸을 상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과유불급(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이라는 말이 있듯이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오히려 덕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부족해서 아무리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에게 무엇을 해줘도 실제로는 유익을 주지 못하고 해를 끼칠 때가 많이 있다. 합창단을 사랑해서 열심히 참여하고 열심히 노래해도 내 음량을 절제하지 않으면 오히려 해가 된다. 그러니까 단순한 마음으로 하는 사랑은 참 사랑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절제해야 진정한 사랑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성령님의 열매가 사랑으로 시작해서 절제로 끝나는 것은 참으로 적절한 모습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모습이고 모든 계명의 요약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열매도 사랑으로 시작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부족해서 어떤 것도 적절히 절제하지 않으면 진정한 사랑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반드시 나중에 절제로 모든 것을 적절하게 맞춰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자세를 먼저 가져야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절제의 미덕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헬라철학에서는 절제를 아주 귀하게 생각하고 강조했으나 성경에서는 그보다 훨씬 덜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절제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금욕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정욕을 절제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 금욕생활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우리는 자원하여 금욕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공덕처럼 되어 금욕하는 사람을 지나치게 높이거나 혹은 자기의 공덕을 쌓기 위해 금욕하고 그것으로 교만해지는 것을 옳지 않다. 왜냐하면 이렇게 되면 율법주의를 조장하거나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죄악시하는 잘못을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절제는 절제까지도 절제하는 것이다. 토의문제 1. 예수님의 온유한 모습이 잘 나타난 사건을 구체적으로 찾아보십시오.(죄인 용납, 체포되실 때 천사들을 부를 수 있으나 부르지 않은 모습[마 26:53], 등) 2. 온유한 사람은 쿠션처럼 자신이 상처를 받고 남의 상처를 감싸줍니다. 내가 가정에서 지극히 온유하게 행동하면 나는 어떻게 되고 가족들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3. 내가 절제하기 어려운 나쁜 행동이나 습관을 몇 가지 말씀해주십시오. 4. 구제, 친절, 온유도 절제해야 할까요? 예를 들어 말씀해주십시오.(과례는 무례?) 5. 우리가 온유하고 절제하여 좋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살도록, 우리교회의 부흥을 위해, 전도대상자들을 위해, 조원들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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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성경공부
작성자 오덕호
작성일 2007-10-21 10:54
분 류
성경 갈라디아서 5:22-24
ㆍ추천: 0  ㆍ조회: 755      
제32과 절제로 열매가 완성된다

오늘은 성령님의 열매 중에 온유와 절제를 살펴본다. 성령님의 열매는 성령님이 충만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삶의 모습이다. 그러면 성령님이 가장 충만한 분이 누구신가?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예수님이 바로 온유하셨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예수님은 삶으로 온유한 모습을 보여주셨고 말씀으로 온유한 모습을 가르쳐주셨다.

온유는 거칠고 혈기부리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다정한 모습이다. 온유의 구체적인 모습은 예수님의 산상설교에 잘 나타나 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마 5:39-40)

온유는 상대방의 악한 모습을 소극적으로 참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감싸 안고 품어주는 것이다. 남의 부족한 모습을 교만하고 거칠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고쳐주는 것이다. 마치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안고 다정하게 가르치며 고쳐주는 모습과 같다. 어느 교회의 야학에서 배운 청년이 사회에 적개심 가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야학에서는 사회정의를 가르쳤지만 온유가 빠져서 이렇게 된 것이다. 온유가 빠진 사회정의는 적개심과 더 큰 혼란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예수님은 온유하게 정의를 이루어가셨다.

온유는 특별히 지도자에게 필요하다. 지도력의 핵심은 능력과 온유이다. 모세의 지도력이 이것을 잘 보여준다. 모세는 놀라운 권능도 있었고 남다른 온유도 있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 12:3) 지도자가 온유해야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고 그래야 사람들이 따르게 된다. 더욱이 지도자가 온유하면 공동체에서 쿠션 역할을 하여 공동체의 충돌을 줄일 수 있다. 지도자가 거친 사람들의 사나운 행동을 다 감싸 안고 흡수하기 때문이다.(이사할 때 그릇을 부드러운 재질로 싸는 것과 같다.)

성령님의 마지막 열매는 절제이다. 절제는 힘이나 지배력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온 말인데 자신을 지배하는 힘을 말한다. 자기의 욕심, 염려, 정욕을 지배하여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이 절제이다. 절제는 두 가지 방향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나쁜 것을 절제하는 것이다. 특히 악한 생각과 악한 말을 절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악한 생각을 절제하기 위해서는 악한 생각이 날 때 계속 그 생각에 빠지지 말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유익하다. 계속해서 그 생각에 빠져들면 말과 행동으로 발전하기 쉽다.

악한 말을 절제하는 것도 지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말이 우리의 행동과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말은 사람의 뇌에 작용해서 사람을 지배하게 되기도 하고, 하나님이 악한 말에 벌을 내리셔서 그 말대로 되기도 한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28) 우리가 특별히 절제해야 할 말은 저주의 말과 절망적인 말이다.

둘째, 선한 것이지만 지나쳐서 악한 것이 되지 않도록 절제하는 것이다. 좋은 음식도 과식하면 해가 되고 좋은 운동도 과하면 몸을 상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과유불급(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이라는 말이 있듯이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오히려 덕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부족해서 아무리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에게 무엇을 해줘도 실제로는 유익을 주지 못하고 해를 끼칠 때가 많이 있다. 합창단을 사랑해서 열심히 참여하고 열심히 노래해도 내 음량을 절제하지 않으면 오히려 해가 된다. 그러니까 단순한 마음으로 하는 사랑은 참 사랑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절제해야 진정한 사랑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성령님의 열매가 사랑으로 시작해서 절제로 끝나는 것은 참으로 적절한 모습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모습이고 모든 계명의 요약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열매도 사랑으로 시작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부족해서 어떤 것도 적절히 절제하지 않으면 진정한 사랑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반드시 나중에 절제로 모든 것을 적절하게 맞춰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자세를 먼저 가져야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절제의 미덕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헬라철학에서는 절제를 아주 귀하게 생각하고 강조했으나 성경에서는 그보다 훨씬 덜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절제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금욕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정욕을 절제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 금욕생활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우리는 자원하여 금욕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공덕처럼 되어 금욕하는 사람을 지나치게 높이거나 혹은 자기의 공덕을 쌓기 위해 금욕하고 그것으로 교만해지는 것을 옳지 않다. 왜냐하면 이렇게 되면 율법주의를 조장하거나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죄악시하는 잘못을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절제는 절제까지도 절제하는 것이다.

토의문제

1. 예수님의 온유한 모습이 잘 나타난 사건을 구체적으로 찾아보십시오.(죄인 용납, 체포되실 때 천사들을 부를 수 있으나 부르지 않은 모습[마 26:53], 등)
2. 온유한 사람은 쿠션처럼 자신이 상처를 받고 남의 상처를 감싸줍니다. 내가 가정에서 지극히 온유하게 행동하면 나는 어떻게 되고 가족들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3. 내가 절제하기 어려운 나쁜 행동이나 습관을 몇 가지 말씀해주십시오.
4. 구제, 친절, 온유도 절제해야 할까요? 예를 들어 말씀해주십시오.(과례는 무례?)
5. 우리가 온유하고 절제하여 좋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살도록, 우리교회의 부흥을 위해, 전도대상자들을 위해, 조원들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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