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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한일장신대학교
호남신학대학교
제30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친절해야 한다

신자들이 비판적으로 듣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예수쟁이는 말이 많다.” “예수쟁이가 더 깍쟁이다.” 물론 이 말이 신자가 실제로 더 말이 많거나 깍쟁이어서가 아니라 신자는 더 말없이 양보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온 말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말을 듣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은 외적으로는 그럴 듯하게 보이면서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위선) 혹은 신자가 사회의 정의를 추구하다보니까 이런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은 불의를 보고 그냥 넘어가는데 신자는 따지다보니까 이렇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위험한 모습이다. 말이 많거나 깍쟁이로 보이면 사랑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기 쉽고, 실제로 자꾸 따지다보면 사랑이 식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에베소 교회: 진리 지키고 처음 사랑 잃음) 그러면 진짜 깍쟁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신자에게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신자는 우선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잘못을 지적하는 것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과 약자들을 위해서 해야 한다. 잘못을 따질 때에도 부드럽고 따뜻한 모습을 지켜야 한다. 신자의 기본적인 모습은 깍쟁이가 아니라 친절하고 따뜻한 모습이어야 한다. 이런 모습이 자비와 양선이다. 자비는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온유’라고 번역된 단어인데 둘 다 영어성경(NRSV)에서는 친절(kind)로 번역하고 있다. 원래 이 말은 ‘유용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용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능력 있고 친절한 사람이다. 친절해야 도움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친절한 사람을 찾는다. 그래서 상인들이 손님을 친절하게 대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 단어가 ‘유용하다’는 의미에서 친절하다는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하나님을 보라.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유익만 주신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지극히 친절하고 자비로운 분이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입었고 또한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자연히 자비로운(친절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면 이웃의 사랑을 받게 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어린 시절에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워 가신 것도 하나님의 친절한 모습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비의 열매를 맺으려면 이웃에게 친절하고 유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1.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는 것이 사랑의 전제인데(알지 못하면 사랑하지 못한다) 알려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심이 없으면 기억도 못하고 형편도 모르지만, 관심이 있으면 형편을 알고 기억하며 유익을 주게 된다.    2. 도와줄 마음을 가져야 한다. 호기심으로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니라 실제로 도와주려고 해야 한다. 진심으로 도와주려고 하면 형편을 알 때 돕게 되는 것이다.    3. 존중하며 겸손히 도와야 한다. 돕는 사람이 독단적으로 돕거나 거칠게 도우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이사를 도우며 자기 마음대로 짐을 배치하는 사람) 양선은 ‘착함’이나 ‘선함’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이 단어도 ‘유용하다’는 의미와 함께 ‘친절하다’는 뜻이 있다. 그러니까 자비와 비슷한데 차이가 있다면 자비는 상대적으로 유용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다르게 친절을 베푸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에 양선은 절대적이고 이상적으로 유용한 것이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모습이 많이 들어 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10:17-18에서 한 부자가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르자 예수님은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대답하신다. 사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선하시다. 그런데도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부자가 예수님을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선하다고 함으로써 사람이 선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쳐주시기 위해서이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선해질 수 없다. 오직 선하신 하나님의(성령님) 역사 속에서만 선해질 수 있다. 그러면 선한 모습은 어떤 것인가? 성경 전체가 가르쳐주지만 한 구절만 살펴보자.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즉, 바르게 사는 것, 친절하게 사는 것,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사는 것이다. 친절은 앞에서 살펴봤으니까 나머지 둘을 살펴보자.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반대하는 우상이나 미신 같은 것을 떠나 하나님만 믿고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과 친밀해야 한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면 정의의 삶을 살게 된다. 정의는 인간 형편의 변화에 따라 꾸불꾸불하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똑바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경건과 정의를 버리고 사람에게 친절한 것은 참된 친절이 아니다. 성령님의 열매에 정의가 없지만 사랑 안에도 정의가 있고(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양선 안에도 정의가 있다. 사실 이런 정의로운 자비와 양선만이 진정으로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참된 친절이 되는 것이다. 토의문제 1. 특별한 친절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그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2. 내가 직원을 뽑는다면 선함과 능력 중에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보시겠습니까? 3.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로 넓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가족 중에서[4촌, 8촌, ...], 교우 중에서[구역, 교회, ...], 사회생활에서는, 지역에서는?) 4.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해를 끼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대하시겠습니까?(친절, 자비, 양선, 경건, 정의를 고려하며 생각해보십시오) 5. 우리가 친절하고 선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전도대상자들을 위해서, 조원들을 위해서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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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성경공부
작성자 오덕호
작성일 2007-10-10 09:46
분 류
성경 갈라디아서 5:22-24
ㆍ추천: 0  ㆍ조회: 769      
제30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친절해야 한다

신자들이 비판적으로 듣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예수쟁이는 말이 많다.” “예수쟁이가 더 깍쟁이다.” 물론 이 말이 신자가 실제로 더 말이 많거나 깍쟁이어서가 아니라 신자는 더 말없이 양보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온 말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말을 듣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은 외적으로는 그럴 듯하게 보이면서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위선)

혹은 신자가 사회의 정의를 추구하다보니까 이런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은 불의를 보고 그냥 넘어가는데 신자는 따지다보니까 이렇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위험한 모습이다. 말이 많거나 깍쟁이로 보이면 사랑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기 쉽고, 실제로 자꾸 따지다보면 사랑이 식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에베소 교회: 진리 지키고 처음 사랑 잃음) 그러면 진짜 깍쟁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신자에게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신자는 우선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잘못을 지적하는 것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과 약자들을 위해서 해야 한다. 잘못을 따질 때에도 부드럽고 따뜻한 모습을 지켜야 한다. 신자의 기본적인 모습은 깍쟁이가 아니라 친절하고 따뜻한 모습이어야 한다. 이런 모습이 자비와 양선이다.

자비는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온유’라고 번역된 단어인데 둘 다 영어성경(NRSV)에서는 친절(kind)로 번역하고 있다. 원래 이 말은 ‘유용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용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능력 있고 친절한 사람이다. 친절해야 도움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친절한 사람을 찾는다. 그래서 상인들이 손님을 친절하게 대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 단어가 ‘유용하다’는 의미에서 친절하다는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하나님을 보라.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유익만 주신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지극히 친절하고 자비로운 분이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입었고 또한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자연히 자비로운(친절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면 이웃의 사랑을 받게 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어린 시절에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워 가신 것도 하나님의 친절한 모습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비의 열매를 맺으려면 이웃에게 친절하고 유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1.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는 것이 사랑의 전제인데(알지 못하면 사랑하지 못한다) 알려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심이 없으면 기억도 못하고 형편도 모르지만, 관심이 있으면 형편을 알고 기억하며 유익을 주게 된다.
   2. 도와줄 마음을 가져야 한다. 호기심으로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니라 실제로 도와주려고 해야 한다. 진심으로 도와주려고 하면 형편을 알 때 돕게 되는 것이다.
   3. 존중하며 겸손히 도와야 한다. 돕는 사람이 독단적으로 돕거나 거칠게 도우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이사를 도우며 자기 마음대로 짐을 배치하는 사람)

양선은 ‘착함’이나 ‘선함’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이 단어도 ‘유용하다’는 의미와 함께 ‘친절하다’는 뜻이 있다. 그러니까 자비와 비슷한데 차이가 있다면 자비는 상대적으로 유용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다르게 친절을 베푸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에 양선은 절대적이고 이상적으로 유용한 것이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모습이 많이 들어 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10:17-18에서 한 부자가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르자 예수님은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대답하신다. 사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선하시다. 그런데도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부자가 예수님을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선하다고 함으로써 사람이 선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쳐주시기 위해서이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선해질 수 없다. 오직 선하신 하나님의(성령님) 역사 속에서만 선해질 수 있다.

그러면 선한 모습은 어떤 것인가? 성경 전체가 가르쳐주지만 한 구절만 살펴보자.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즉, 바르게 사는 것, 친절하게 사는 것,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사는 것이다.

친절은 앞에서 살펴봤으니까 나머지 둘을 살펴보자.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반대하는 우상이나 미신 같은 것을 떠나 하나님만 믿고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과 친밀해야 한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면 정의의 삶을 살게 된다. 정의는 인간 형편의 변화에 따라 꾸불꾸불하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똑바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경건과 정의를 버리고 사람에게 친절한 것은 참된 친절이 아니다. 성령님의 열매에 정의가 없지만 사랑 안에도 정의가 있고(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양선 안에도 정의가 있다. 사실 이런 정의로운 자비와 양선만이 진정으로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참된 친절이 되는 것이다.

토의문제

1. 특별한 친절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그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2. 내가 직원을 뽑는다면 선함과 능력 중에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보시겠습니까?
3.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로 넓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가족 중에서[4촌, 8촌, ...], 교우 중에서[구역, 교회, ...], 사회생활에서는, 지역에서는?)
4.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해를 끼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대하시겠습니까?(친절, 자비, 양선, 경건, 정의를 고려하며 생각해보십시오)
5. 우리가 친절하고 선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전도대상자들을 위해서, 조원들을 위해서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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