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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한일장신대학교
호남신학대학교
제29과 모든 사람과 화평을 누리라

지난주에 성령님의 열매에 대해 살펴보면서 성령님의 열매는 특정한 행동이 아니라 삶의 기본적인 자세라고 했다. 그래서 성령님의 열매는 모든 사람을 향해서 나타나야지 특정인을 향해서만 나타나면 안 된다. 오늘은 화평과 오래 참음을 살펴보자. 화평은 평화나 평강과 같은 말이고 히브리어의 샬롬에서 온 말이다. 샬롬은 원래 온전한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화평은 온전한 상태에서 오는 것이다. 개인이라면 몸이나 마음에 조금의 상처도 없는 것이 화평이다. 사실 우리는 손가락에 가시만 하나 박혀도 평화를 잃지 않는가? 마음에 한 가지 염려만 있어도 평화롭지 않지 않은가? 공동체의 경우에는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은 것이 화평이다. 100명 중에 99명이 서로 화목해도 한 사람이 따돌림을 당한다면 그 공동체는 샬롬이 없는 공동체이다. 심지어 한 사람도 고통을 당하지 않는 것이 샬롬의 공동체이다. 100명 중 99명이 아무 어려움 없이 행복하게 살아도 한 사람이 궁핍하다면 그 공동체는 화평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화평이고 성령님의 열매인데 사실 이것은 우리가 지난 주에 살펴본 내용과 잘 맞는다. 지난 주에 살펴본 대로 성령님의 열매는 특정한 행동이 아니라 기본적인 삶의 자세이기 때문에 특정인에게만 나타나는 화평은 성령님의 열매가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화평만 성령님의 열매이다. 그러니까 공동체에서 모두가 화평해야 진짜 화평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공동체 전체가 온전한 관계일 때 화평인 것이다. 공동체가 이런 상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회원 간에 극진히 서로 사랑해야 한다. 싸우지 않는 정도로는 절대 안 된다. 회원들이 서로 싸우지 않는 정도라면 어려운 사람이 있을 때 그 어려움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서로 극진히 사랑해야 어려움을 해결해준다. 그래서 성령님의 열매인 화평은 싸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서로 극진히 사랑하는 상태인 것이다. 세상이 말하는 평화와 성경이 말하는 평화는 이렇게 다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화평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    1) 내 자신이 화평 속에 있어야 한다. 내가 불편하면 남과의 관계도 파괴되기 쉽다.(시어머니가 가장 짜증을 많이 내는 때?)(착한 아이가 울며 보채는 때?).    2) 나의 화평은 어디서 얻는가? 어린 아이는 부모님과 함께 있어야 마음도 편하고 실제로 어려움도 해결하여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우리는 세상에서 어린 아이와 같이 연약한 존재이다. 그래서 완전한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화평이 우리에게 화평을 주는 것이다.    3) 하나님과의 화평은 어디서 얻는가? 우리는 죄인이라 자신의 힘으로는 이 화평을 얻을 수 없다. 예수님을 통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얻을 수 있다.    4)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 죄책감(가책)과 죄과(징계)에서 해방된다. 삶의 어려움도 하나님의 도움으로 해결될 것으로 믿어 염려와 욕심을 극복하고 마음에 평안을 누린다. 이렇게 염려가 없어지면 이웃과 화평을 누리게 된다.(폭설로 일용품 사쟁기려고 다툼) 욕심이 없어져도 이웃과 화평을 누린다.(서로 가지려고 다툼) 또한 하나님을 믿고 이웃을 도와야 하나님의 상급이 있다는 것을 바라보면 더욱 이웃과 평화를 누리게 된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과의 화평을 얻고 나의 화평을 얻고 이웃과 화평을 누리게 되는 것이 성령님의 열매인 화평이다. 오래 참음은 시간이나 횟수로 오래 참는 게 아니라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참는 것이다. 하나님의 참으심이 바로 이 오래 참음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오래 참으시는가? 우리와의 화목(구원)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우리도 이웃과의 화목을 얻기 위해 오래 참아야 한다. 달리 말하면 이웃과 화목할 때까지 참는 게 오래 참음인 것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오래 참아주시는가?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 103:13-14) 하나님은 우리를 아픈 자녀 대하듯이 대하시기에 오래 참으신다. 우리도 이웃에게 오래 참으려면 이웃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아픈 자녀 대하듯이 대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래 참음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하다.    1) 구원의 삶이다. 우리가 이웃의 잘못을 참아주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의 잘못을 참아주지 않으신다.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가 취소되는 것과 같다.    2) 지혜로운 삶이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 14:29) 참지 않고 쉽게 화를 내면 실수를 많이 한다.(인지위덕)    3) 오래 참으면 화목할 때까지 참으므로 화평과 하나 됨을 지킬 수 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9대에 걸쳐 300명이 한 집에 산 가정) 토의문제 1. 내 몸이나 마음이 불편하여 가정, 교회, 사회의 평안에 해를 끼친 적이 있습니까?(내가 짜증을 내서, 남들이 나를 염려하느라고, 등) 2. 다른 사람에게 화평이 없는 것을 보고 내가 평안을 잃고 괴로워한 적이 있습니까? 3. 내가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어떤 것입니까?(부정, 교만, 의견충돌, 등) 내가 끝까지 참았던 경험이나 다른 사람의 잘 참은 모습을 소개해주십시오. 4. 내가 가정과 교회의 화평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보십시오. 5. 나에게 주님의 평강이 충만하도록, 우리교회가 화목하도록, 우리 모두가 오래 참을 수 있도록, 조원들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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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성경공부
작성자 오덕호
작성일 2007-09-30 18:35
분 류
성경 갈라디아서 5:22-24
ㆍ추천: 0  ㆍ조회: 700      
제29과 모든 사람과 화평을 누리라

지난주에 성령님의 열매에 대해 살펴보면서 성령님의 열매는 특정한 행동이 아니라 삶의 기본적인 자세라고 했다. 그래서 성령님의 열매는 모든 사람을 향해서 나타나야지 특정인을 향해서만 나타나면 안 된다. 오늘은 화평과 오래 참음을 살펴보자.

화평은 평화나 평강과 같은 말이고 히브리어의 샬롬에서 온 말이다. 샬롬은 원래 온전한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화평은 온전한 상태에서 오는 것이다. 개인이라면 몸이나 마음에 조금의 상처도 없는 것이 화평이다. 사실 우리는 손가락에 가시만 하나 박혀도 평화를 잃지 않는가? 마음에 한 가지 염려만 있어도 평화롭지 않지 않은가?

공동체의 경우에는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은 것이 화평이다. 100명 중에 99명이 서로 화목해도 한 사람이 따돌림을 당한다면 그 공동체는 샬롬이 없는 공동체이다. 심지어 한 사람도 고통을 당하지 않는 것이 샬롬의 공동체이다. 100명 중 99명이 아무 어려움 없이 행복하게 살아도 한 사람이 궁핍하다면 그 공동체는 화평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화평이고 성령님의 열매인데 사실 이것은 우리가 지난 주에 살펴본 내용과 잘 맞는다. 지난 주에 살펴본 대로 성령님의 열매는 특정한 행동이 아니라 기본적인 삶의 자세이기 때문에 특정인에게만 나타나는 화평은 성령님의 열매가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화평만 성령님의 열매이다. 그러니까 공동체에서 모두가 화평해야 진짜 화평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공동체 전체가 온전한 관계일 때 화평인 것이다.

공동체가 이런 상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회원 간에 극진히 서로 사랑해야 한다. 싸우지 않는 정도로는 절대 안 된다. 회원들이 서로 싸우지 않는 정도라면 어려운 사람이 있을 때 그 어려움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서로 극진히 사랑해야 어려움을 해결해준다. 그래서 성령님의 열매인 화평은 싸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서로 극진히 사랑하는 상태인 것이다. 세상이 말하는 평화와 성경이 말하는 평화는 이렇게 다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화평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
   1) 내 자신이 화평 속에 있어야 한다. 내가 불편하면 남과의 관계도 파괴되기 쉽다.(시어머니가 가장 짜증을 많이 내는 때?)(착한 아이가 울며 보채는 때?).
   2) 나의 화평은 어디서 얻는가? 어린 아이는 부모님과 함께 있어야 마음도 편하고 실제로 어려움도 해결하여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우리는 세상에서 어린 아이와 같이 연약한 존재이다. 그래서 완전한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화평이 우리에게 화평을 주는 것이다.
   3) 하나님과의 화평은 어디서 얻는가? 우리는 죄인이라 자신의 힘으로는 이 화평을 얻을 수 없다. 예수님을 통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얻을 수 있다.
   4)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 죄책감(가책)과 죄과(징계)에서 해방된다. 삶의 어려움도 하나님의 도움으로 해결될 것으로 믿어 염려와 욕심을 극복하고 마음에 평안을 누린다. 이렇게 염려가 없어지면 이웃과 화평을 누리게 된다.(폭설로 일용품 사쟁기려고 다툼) 욕심이 없어져도 이웃과 화평을 누린다.(서로 가지려고 다툼) 또한 하나님을 믿고 이웃을 도와야 하나님의 상급이 있다는 것을 바라보면 더욱 이웃과 평화를 누리게 된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과의 화평을 얻고 나의 화평을 얻고 이웃과 화평을 누리게 되는 것이 성령님의 열매인 화평이다.

오래 참음은 시간이나 횟수로 오래 참는 게 아니라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참는 것이다. 하나님의 참으심이 바로 이 오래 참음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오래 참으시는가? 우리와의 화목(구원)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우리도 이웃과의 화목을 얻기 위해 오래 참아야 한다. 달리 말하면 이웃과 화목할 때까지 참는 게 오래 참음인 것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오래 참아주시는가?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 103:13-14) 하나님은 우리를 아픈 자녀 대하듯이 대하시기에 오래 참으신다. 우리도 이웃에게 오래 참으려면 이웃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아픈 자녀 대하듯이 대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래 참음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하다.
   1) 구원의 삶이다. 우리가 이웃의 잘못을 참아주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의 잘못을 참아주지 않으신다.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가 취소되는 것과 같다.
   2) 지혜로운 삶이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 14:29) 참지 않고 쉽게 화를 내면 실수를 많이 한다.(인지위덕)
   3) 오래 참으면 화목할 때까지 참으므로 화평과 하나 됨을 지킬 수 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9대에 걸쳐 300명이 한 집에 산 가정)

토의문제

1. 내 몸이나 마음이 불편하여 가정, 교회, 사회의 평안에 해를 끼친 적이 있습니까?(내가 짜증을 내서, 남들이 나를 염려하느라고, 등)
2. 다른 사람에게 화평이 없는 것을 보고 내가 평안을 잃고 괴로워한 적이 있습니까?
3. 내가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어떤 것입니까?(부정, 교만, 의견충돌, 등) 내가 끝까지 참았던 경험이나 다른 사람의 잘 참은 모습을 소개해주십시오.
4. 내가 가정과 교회의 화평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보십시오.
5. 나에게 주님의 평강이 충만하도록, 우리교회가 화목하도록, 우리 모두가 오래 참을 수 있도록, 조원들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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