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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한일장신대학교
호남신학대학교
제26과 다툼을 피하라

육체의 일을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하면 음행, 우상숭배, 다툼, 방탕이다. 이것들의 순서를 보면 전통적으로 가장 큰 죄인 우상숭배가 두 번째로 나오고 음행이 첫 번째로 나와서 둘의 중요성을 대등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다툼은 무려 8가지나 나와 역시 중요성에서 뒤지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마지막에 나오는 방탕은 처음에 음행의 모습으로 나온 ‘호색’과 깊은 관계가 있어 역시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모두 심각한 죄이다. 오늘은 다툼의 일들을 살펴본다. 원수를 맺는 것은 원한을 풀지 않고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용서와 구원을 잃게 만들며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는 무서운 죄이다. 독사에게 물리면 독사를 잡는 것보다 치료가 급선무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원수를 맺지 말고 예수님의 보혈로 그를 용서하여 우리 자신이 치료를 받아야 한다. 또한 분노나 원망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하게 하여 몸도 상하게 한다. 분쟁은 서로 더 잘났다고 싸우는 것이다. 이런 분쟁은 대부분 시기와 깊은 관계가 있다. 시기는 경쟁심을 가지고 자기가 남보다 더 잘 되기를 바라고 남이 잘 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시기하면 분쟁하게 되고 분쟁하면 시기하게 된다. 그래서 성경에도 분쟁이란 말은 시기라는 말과 같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본문도 그렇다. 사람이 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세상의 재화나 명예가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1등은 한 명 아닌가? 재물은 근대에 대량생산 되면서 좀 덜해졌지만 그래도 한 사람이 많이 얻으면 다른 사람은 적게 얻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분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는 다르다. 하나님이 제한 없이 축복해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내가 1등이 못 되어도 1등 이상의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게 해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경쟁, 시기, 분쟁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분냄(분노)은 화를 터뜨리는 것이다. 말이나 행동을 폭력적으로 터뜨리는 것은 물론이고 속으로 씩씩거리는 것도 분내는 것이다. 사람이 화를 터뜨리는 것은 자기 성질을 절제하지 못해서 그런 것인데 사람의 성질은 죄에 젖어 있다. 그래서 분냄은 육체의 일인 것이다. 분노가 무서운 것은 앞뒤 생각을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화가 나면 눈에 보이는 게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분노는 잘못된 판단을 하게 하거나 절제를 잃게 하여 큰 실수를 저지르게 만든다. 그러면 먼저 자신을 해친다. 건강도 해치고 인격도 해친다. 존경받던 목사가 제직회에서 버릇없이 말하는 집사에게 화를 내며 거친 말을 하는 바람에 성도들의 존경을 크게 잃은 경우도 있다. 더욱이 분노는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준다. 그래서 사람 상호간에 원한이 쌓이고 악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분노를 절제하려면 평소에 사람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평소에 존중하던 사람에게는 함부로 화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항상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절제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절제만으로는 부족하다. 분노는 사랑으로 녹여버려야 한다. 많은 사람이 분노는 묻어두면 안 된다고 말하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이 말이 분노를 화로 폭발시키라는 뜻이어서는 안 된다. 분냄은 육체의 일이고 우리와 이웃을 망하게 하는 것이다.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속에 숨은 것을 끄집어내어 기도나 대화를 통해 사랑으로 녹여버리기 위한 것이어야지 결코 화를 내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당 짓는 것은 진정한 명예나 영생 같은 것은 추구하지 않고 당장 눈앞의 이익만 얻으려고 하는 야비한 모습을 의미한다. 이 말은 이기심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원래적인 의미에 가깝다. 하지만 이런 야비한 이기심은 자기 이권만 챙기며 공동체 안에 파당을 만들게 되므로 당 짓는 것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저급 정치인들이 원대한 이상을 생각하지 않고 당장의 이권을 위해 이합집산 하는 모습과 잘 맞는다. 이렇게 자기 이권만을 위해 파당을 만들면 공동체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 분리함은 뜻을 달리하여 나뉘는 것이다. 사람이 성령님을 따르면 뜻이 달라도 성령님의 하나 되게 하심을 지킨다. 그러나 육체의 소욕을 따르면 나뉜다. 왜냐하면 성령님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먼저 생각하므로 자기 뜻을 포기할 수 있지만 자기 욕심을 따르는 사람은 끝까지 자기 뜻을 관철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단은 분파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 말은 지금 우리가 말하는 이단만이 아니라 파당을 일으키는 모든 행위를 가리킨다.(이단의 기준?) 이것은 고린도교회에 있었던 바울파 아볼로파의 파당을 가리킬 때도 쓰인 단어이다. 사람이 왜 파당을 만드는가? 자기와 뜻이 같은 사람이나 좋아하는 사람끼리 모이느라고 만든다. 이것이 세상에서는 있을 수 있을지 몰라도 교회에서는 있을 수 없다. 교회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서로 다투는 육체의 일은 사람들이 자기 입장만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님의 감동 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면 자기중심의 생각에서 벗어나 이웃과의 다툼을 없애고 진정한 사랑과 평강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토의문제 1. 원한을 품는 것과 분노하는 것 중에 어느 게 피하기 더 어렵다고 생각하십니까? 2. 성도들이 가장 경쟁심을 많이 느끼는 사람의 모습을 세 가지 찾아보십시오.(나보다 더 경건한 사람, 나보다 못해야 하는데 더 유능한 사람, 잘난 척하는 사람, 등) 3. 교회에서 성도들이 하나 되지 못하는 이유를 몇 가지 찾아보십시오. 4. 이웃이 어떻게 행동할 때 가장 화목하기 어렵습니까?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함께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5.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원한과 다툼 없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우리 가정과 교회가 화목하고 부흥하도록, 조원들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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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성경공부
작성자 오덕호
작성일 2007-09-11 23:03
분 류
성경 갈라디아서 5:19-21
ㆍ추천: 0  ㆍ조회: 636      
제26과 다툼을 피하라

육체의 일을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하면 음행, 우상숭배, 다툼, 방탕이다. 이것들의 순서를 보면 전통적으로 가장 큰 죄인 우상숭배가 두 번째로 나오고 음행이 첫 번째로 나와서 둘의 중요성을 대등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다툼은 무려 8가지나 나와 역시 중요성에서 뒤지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마지막에 나오는 방탕은 처음에 음행의 모습으로 나온 ‘호색’과 깊은 관계가 있어 역시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모두 심각한 죄이다.

오늘은 다툼의 일들을 살펴본다. 원수를 맺는 것은 원한을 풀지 않고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용서와 구원을 잃게 만들며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는 무서운 죄이다. 독사에게 물리면 독사를 잡는 것보다 치료가 급선무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원수를 맺지 말고 예수님의 보혈로 그를 용서하여 우리 자신이 치료를 받아야 한다. 또한 분노나 원망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하게 하여 몸도 상하게 한다.

분쟁은 서로 더 잘났다고 싸우는 것이다. 이런 분쟁은 대부분 시기와 깊은 관계가 있다. 시기는 경쟁심을 가지고 자기가 남보다 더 잘 되기를 바라고 남이 잘 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시기하면 분쟁하게 되고 분쟁하면 시기하게 된다. 그래서 성경에도 분쟁이란 말은 시기라는 말과 같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본문도 그렇다.

사람이 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세상의 재화나 명예가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1등은 한 명 아닌가? 재물은 근대에 대량생산 되면서 좀 덜해졌지만 그래도 한 사람이 많이 얻으면 다른 사람은 적게 얻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분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는 다르다. 하나님이 제한 없이 축복해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내가 1등이 못 되어도 1등 이상의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게 해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경쟁, 시기, 분쟁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분냄(분노)은 화를 터뜨리는 것이다. 말이나 행동을 폭력적으로 터뜨리는 것은 물론이고 속으로 씩씩거리는 것도 분내는 것이다. 사람이 화를 터뜨리는 것은 자기 성질을 절제하지 못해서 그런 것인데 사람의 성질은 죄에 젖어 있다. 그래서 분냄은 육체의 일인 것이다. 분노가 무서운 것은 앞뒤 생각을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화가 나면 눈에 보이는 게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분노는 잘못된 판단을 하게 하거나 절제를 잃게 하여 큰 실수를 저지르게 만든다. 그러면 먼저 자신을 해친다. 건강도 해치고 인격도 해친다. 존경받던 목사가 제직회에서 버릇없이 말하는 집사에게 화를 내며 거친 말을 하는 바람에 성도들의 존경을 크게 잃은 경우도 있다. 더욱이 분노는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준다. 그래서 사람 상호간에 원한이 쌓이고 악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분노를 절제하려면 평소에 사람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평소에 존중하던 사람에게는 함부로 화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항상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절제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절제만으로는 부족하다. 분노는 사랑으로 녹여버려야 한다. 많은 사람이 분노는 묻어두면 안 된다고 말하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이 말이 분노를 화로 폭발시키라는 뜻이어서는 안 된다. 분냄은 육체의 일이고 우리와 이웃을 망하게 하는 것이다.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속에 숨은 것을 끄집어내어 기도나 대화를 통해 사랑으로 녹여버리기 위한 것이어야지 결코 화를 내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당 짓는 것은 진정한 명예나 영생 같은 것은 추구하지 않고 당장 눈앞의 이익만 얻으려고 하는 야비한 모습을 의미한다. 이 말은 이기심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원래적인 의미에 가깝다. 하지만 이런 야비한 이기심은 자기 이권만 챙기며 공동체 안에 파당을 만들게 되므로 당 짓는 것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저급 정치인들이 원대한 이상을 생각하지 않고 당장의 이권을 위해 이합집산 하는 모습과 잘 맞는다. 이렇게 자기 이권만을 위해 파당을 만들면 공동체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

분리함은 뜻을 달리하여 나뉘는 것이다. 사람이 성령님을 따르면 뜻이 달라도 성령님의 하나 되게 하심을 지킨다. 그러나 육체의 소욕을 따르면 나뉜다. 왜냐하면 성령님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먼저 생각하므로 자기 뜻을 포기할 수 있지만 자기 욕심을 따르는 사람은 끝까지 자기 뜻을 관철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단은 분파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 말은 지금 우리가 말하는 이단만이 아니라 파당을 일으키는 모든 행위를 가리킨다.(이단의 기준?) 이것은 고린도교회에 있었던 바울파 아볼로파의 파당을 가리킬 때도 쓰인 단어이다. 사람이 왜 파당을 만드는가? 자기와 뜻이 같은 사람이나 좋아하는 사람끼리 모이느라고 만든다. 이것이 세상에서는 있을 수 있을지 몰라도 교회에서는 있을 수 없다. 교회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서로 다투는 육체의 일은 사람들이 자기 입장만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님의 감동 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면 자기중심의 생각에서 벗어나 이웃과의 다툼을 없애고 진정한 사랑과 평강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토의문제

1. 원한을 품는 것과 분노하는 것 중에 어느 게 피하기 더 어렵다고 생각하십니까?
2. 성도들이 가장 경쟁심을 많이 느끼는 사람의 모습을 세 가지 찾아보십시오.(나보다 더 경건한 사람, 나보다 못해야 하는데 더 유능한 사람, 잘난 척하는 사람, 등)
3. 교회에서 성도들이 하나 되지 못하는 이유를 몇 가지 찾아보십시오.
4. 이웃이 어떻게 행동할 때 가장 화목하기 어렵습니까?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함께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5.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원한과 다툼 없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우리 가정과 교회가 화목하고 부흥하도록, 조원들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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